[기고] 탄저균 조사 이대로 안 된다

2015.08.06 | 군기지

신수연 (녹색연합 평화생태팀 활동가)

‘살아있는 탄저균 배달 사고’가 보도된 지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시민사회에서는 한미 양국 정부에 주한미군의 탄저균 국내 반입 및 실험에 대한 여러 의혹을 제기하며 진상을 밝히라는 요구를 했지만, 지난달 23일에 발표된 미국 국방부의 조사결과와 그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미국 국방부는 최근 10년 동안 총 7개국(한국 호주 캐나다 영국 일본 이탈리아 독일)과 86개 실험실에 살아있는 상태의 탄저균을 배달한 사실을 확인했으며, 이 사고의 주체와 근본 원인을 밝힐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방사선을 쪼이는 과정 등을 거쳐 완벽히 비활성화 된 상태로 배달했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러한 수준의 과학기술 정보가 부족하다는 설명도 덧붙어 있다. 완벽히 비활성화 시키는 과학기술이 없다면서, 왜 미 국방부는 위험한 탄저균 실험을 세계 각지에서 진행했던 것인가. 규정을 표준화하라는 권고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미국 내에서조차 고위험체 실험 시설에 대한 감시 관리에 실패하였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한국 내 미군기지 실험실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여러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런데 탄저균 문제에 가장 민감해야할 우리 정부는 별 반응이 없다. 사건 초기에 미국이 자체 조사를 마치고 5일이 지나서야 배달 사고를 발표하는 등 늑장 통보를 했을 때도, 주한미군 측이 해당 시설의 폐쇄를 이유로 오산미군기지 내부의 현장 접근을 거부하였을 때도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그저 미군 측의 설명을 듣고, 들은 대로 내용을 전달했을 뿐이다. 정부 주요 국무위원들은 탄저균 반입사건에 어떻게 대처할 건지 묻는 국회 질의에 대해 “미국과 우리는 군사동맹 관계라서 제약이 있다”거나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에 대한 입장은 없다. 권고사항 정도로 처리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동맹관계를 이유로 미국 측에 정보를 요구하지 않으니, 국민의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할 정보가 없다. 사고가 발생한지 한 달을 훨씬 넘겨서 구성된 한미합동실무단(JWG)에 대한 기대치가 애초에 낮은 이유다.

합동실무단에서 이번 배달사고의 본질이 ‘주한미군의 훈련 관련 사항’임을 감안하여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양측 단장을 맡는다고 밝힌 것도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이다. 고위험 병원체를 이용한 주한미군의 훈련을 통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일이다.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할 수 있는 조치가 취해지는지 판단하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구속력 있는 제도의 개정까지 얻어내도록 하려면 생물무기 관리를 맡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감염병예방 업무를 맡은 질병관리본부 등이 주요 역할을 맡아야 했다.

이번 미국 측 조사보고서에 담기지 않은, 합동실무단이 꼭 확인해야할 중요한 의혹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평택의 오산미군기지에서 22명이 탄저균에 노출되었는데, 어떤 훈련 과정으로 인한 건지 상세히 파악해야 한다. 탄저균 배달사고로 전 세계에서 31명이 피해를 봤는데 유독 한국에서 22명이나 노출된 이유를 알아야 한다. 과연 주한미군은 국내에서 어떤 수준의 실험을 어느 단계까지 진행한 것인지 영영 모른 채 넘어갈 것인가.

두 번째는 생물무기를 활용한 실험 및 훈련을 하는 주한미군 실험실이 용산, 평택(오산 공군기지 및 캠프험프리), 군산 미군기지에 있다고 특정한 미 육군 화생방어합동참모국(JPEO-CBD) 자료의 사실여부와 관련 정보이다. 인구 1,000만의 도시 서울 중심에 위치한 용산 기지를 비롯 평택, 군산의 미군기지 모두 주거지역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한다. 더 이상 한미합동실무단이 탄저균 배달사고에 대한 미국 측 조사를 받아쓰기 하며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책무를 방기하지 않길 바란다.

 

▶ 이 글은 8월 3일자 한국일보 오피니언란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ww.hankookilbo.com/v/fbefb2940ca2467b9e95a47cc41c04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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