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칼럼] 산업계는 “지구인”이 아닌가?

2009.11.10 | 기후위기대응

산업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축소 로비 중단해야

지난달 17일, 남태평양 몰리브 공화국의 대통령과 장관들이 스쿠버다이빙 차림으로 국민들 앞에 섰다. 해수면 상승으로 위기에 처한 몰디브를 알리기 위해 수심 6미터 바다 속에서 국무회의를 한 것이었다. 이달 말 네팔 정부는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에베레스트 산 베이스캠프에서 각료회의를 연다고 한다. 두 나라는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선진국의 강도 높은 온실가스 감축을 촉구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위원회(IPCC)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2020년까지 선진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25∼40% 줄여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 9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이자, 내년 G20회의를 주최하는 한국은 얼마를 줄여야 할까. 지난 8월 녹색성장위원회는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8%증가, 현상유지, 4% 감축이라는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였다. 녹색위가 좁혀놓은 3가지 시나리오를 받아든 환경NGO들은 난감했다. 가장 높게 설정했다는 4% 감축안조차도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결국 2020년에도 현재 배출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녹색위는 유럽이 개발도상국에 요구하는 감축목표치를 만족시킨다고 주장하지만 전 세계 동네방네 ‘저탄소녹색성장’과 ‘얼리무버’를 떠들어댄 것치고는 낯부끄러운 목표치이다. 일본은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5% 감축을 선언했고, 우리와 같이 개도국으로 분류되어 있는 브라질도 현재 대비 20~40% 감축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민주당 김재윤, 김상희 의원은 녹색위 내부 자료를 토대로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최소로 잡기 위해 감축여력을 의도적으로 축소했다”고 밝혔다. 축소된 감축목표 설정 시나리오에는 산업계의 입김이 작용했다. 녹색위는 시나리오 도출과정에서 산업계가 제시한 제조업 신증설 계획을 그대로 반영해 배출전망은 과대 산정하고, 감축량은 보수적으로 잡았다. 게다가 유가전망은 2020년 배럴당 60달러를 반영하고, 배출증가율도 연평균 2.1%로 높게 잡았다. 녹색위는 내부검토를 통해 산림흡수원까지 고려하면 2005년 대비 10%까지 감축여력이 있는 것으로 전망했다.

녹색위는 환경NGO들에게는 3가지 시나리오를 통보하고, 산업계와는 업종별로 30차례나 토론을 진행했다. 환경NGO들은 제한된 정보 속에서 스톡홀름환경연구소가 지구온난화 대응에 대한 책임과 감축능력을 분석해 수치화한 책임역량지수(RCI)를 토대로 우리나라가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25%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녹색위가 제시한 3가지 시나리오에 갇혀 더 많은 양을 감축하자는 목소리가 논의될 리 만무했다. 결국 녹색위의 시나리오는 산업계의, 산업계에 의한, 산업계를 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계는 8% 증가 시나리오를 고집하며 로비를 하고 있다. 산업계는 온실가스감축은 한국경제에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감축 목표를 높게 잡으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하고 있다. 기후변화위기 앞에 너무나 이기적인 태도이다. 스턴보고서는 기후변화 대응이 늦으면 늦을수록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이미 기후변화가 초래한 이상기후로 인명피해와 경제적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산업계는 고유가와 자원고갈에 대비해 경쟁력 확보차원에서라도 에너지소비를 줄이고 효율을 높여야 한다. 게다가 녹색위가 제시한 감축목표 달성 정책을 살펴보면 산업계의 부담 보다 건물·교통·가정 부문에서 감당해야 할 몫이 더 크다. 정책수단 중에 하이브리드-전기자동차, 바이오연료 보급, 최첨단 고효율 제품 확대 등은 산업계가 이미 ‘녹색성장’에  발맞춰 자체 투자하거나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이다. 정부도 R&D 투자와 정책지원을 발표하고 있는 분야이다.

산업계는 지금 당장 온실가스 감축 목표 축소를 위한 로비를 중단하고, 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해야 한다. 한국의 산업계도 위기에 처한 지구 공동체의 어엿한 구성원이 아닌가. 정부도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다시 채워야한다. 지금까지 산업계에 끌려 다니면서 턱없이 낮은 감축목표 제시로 면피하기에 바빴다면 이제부터라도 국제사회와 미래 세대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감축목표를 다시 제시해야 한다.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 국장)

내일신문 11월 10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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