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시론]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일주일

2009.12.15 | 기후위기대응

이건 분명 3년 전 약속이었다.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회의장으로 급히 돌아와 선진국과 개도국을 한자리에 앉혀놓고, 교토의정서를 대신할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논의를 2009년까지 마무리 짓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막상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새로운 의정서 탄생은커녕 ‘정치적인 합의문’ 하나 작성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선진국은 선진국대로 ‘중국’과 ‘인도’ 같은 온실가스 다배출 개도국을 끌어들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개도국들은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2020년까지 40%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오로지 투발루, 몰디브, 네팔, 방글라데시와 같이 기후변화로 인해 국가 존립의 위기에 처해 있는 나라들만이 선진국의 책임을 촉구하면서도 개도국 또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 국가는 이번 회의에 국민들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나라들이 협상의 분위기를 바꾸거나 내용을 진전시킬 만큼 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10일, 이보 더부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은 현재 교토의정서 연장과 새로운 협약에 대한 논의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말은 이번 회의에서 구속력 있는 합의가 사실상 불가능하며, 당분간 교토의정서 체제를 유지시켜 가면서 새로운 협약에 대한 논의를 2~3년 더 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숙제를 미루는 것이다. 그만큼 인류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시간을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이번 회의에서는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합의문’이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합의문에 표시될 선진국과 개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16일부터 세계 각국 정상들이 속속 덴마크에 도착해 고위급 회담이 시작된다. 회의의 중요성을 반영하듯 유럽연합 대다수 정상들과 미국, 중국, 일본 등 100여 국가 정상들이 참여한다.

그중에서도 미국과 중국의 결정이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을 합치면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0%를 차지한다. 물론 선진국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교토의정서에서 박차고 뛰쳐나간 미국은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17%를 감축한다는 방침이다. 개도국들은 교토의정서 수준에 불과한 미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중국은 선진국끼리 작성한 ‘덴마크 문건’에 발끈한 상태이지만 기후변화 취약 그룹을 대표하는 투발루와도 좋은 사이가 아니다.

혼돈의 코펜하겐 협상장에서 확실한 것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안정화 수준인 350ppm을 넘어서 이미 초과상태라는 점이다. 한 나라라도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배출하려고 한다면 지구는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협상의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기후변화를 막고 지구를 구하겠다는 진정 어린 의지이다. 12일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 집회에는 무려 10만여명이 참석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16일에도 이곳 현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세계 시민들이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면 각국 대표들의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지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일주일’을 남겨두고 있다.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 국장

<한겨레신문 12월 15일자에 실린 시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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