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기후회의가 남긴 과제

2009.12.26 | 기후위기대응

전 세계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던 코펜하겐 기후회의는 구속력 있는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나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애써 평가하지만 이에 동의하는 국가나 지도자들은 거의 없다. 기후 위기를 알리는 시계는 계속 가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합의 도출은 1년 뒤에 열릴 멕시코시티 총회로 미루어졌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다음 회의에서도 기후위기를 해결할만한 근본적인 합의에 이를 것이란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서 그를 위한 분명한 담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국이나 스웨덴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이번 회의를 실패 또는 재앙으로 규정하고 있고 수단 대표는 이번 회의 결과가 홀로코스트(대학살)나 마찬가지라고 강력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반해 한국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자체 목표 이상을 달성했다고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다. 정부가 염려했던 선진국 수준의 의무감축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또한 온실가스감축 등록부 설치 제안을 통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중간 다리역할도 어느 정도 수행하면서 협상장에서의 한국의 위상도 조금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진정한 성공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당연히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근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한국은 녹색성장으로 포장된 녹색세탁(그린 워시)을 통해 세계인의 눈을 잠시 속일 수 있었을지 모르나 그 때문에 위기는 더 심화되고 있다.

인류전체와 지구 생태계의 생존을 놓고 논의하는 기후회의장에서 4대강 사업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여는 추태를 보인 것이 한국정부이다. 한국정부가 내놓은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4% 감축하는 수준으로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전 세계가 산업화 이전에 비해 2도씨 이상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막아야 된다는데 합의했지만 현재 각국이 내놓은 모든 감축목표를 다 달성한다 해도 지구 온도는 3도씨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이 이러한 위기 상황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중국 등 모든 국가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더 적극성을 보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총회에 참석하기 전 한국 시민단체들이 제시한 2005년 대비 25% 감축요구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님을 정부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코펜하겐에서 기후회의가 열리는 동안 한국의 전기사용량은 최고 기록을 거듭 갱신했다. 정부가 기후회의에서 말장난을 하고 있는 동안 한국의 상황은 정부 정책이 얼마나 현실성이 없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에너지 사용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위한 수요관리를 하지 않고 원자력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성장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한 한국에서의 에너지 소비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그만큼 온실가스 배출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2012년 기후회의를 유치하겠다고 선언했다. 환경관련 국제회의 유치가 의미있는 일이 되려면 그만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4대강 토목사업과 원자력 발전 등을 녹색성장으로 포장하여 세계인의 눈을 속이려 한다면 2012년 한국은 국제사회의 망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녹색세탁이 아닌 제대로 된 녹색 비전과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이번 코펜하겐 기후회의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2월 25일자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