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강대국들의 패권속에 전 세계가 방향 잃어

2009.12.29 | 기후위기대응

-모두가 떠난 범죄현장, 누더기 뿐인 협정문만 남아-

코펜하겐회의의 허무한 결말에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지고 있다. 세계 105개국 정상, 약 5000여 명의 취재진, 4만 7000여명의 공식 등록자들이 몰려들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역사적인 기후회의는 너무나 맥없이 끝이 났다. 기대되었던 전 세계 감축 목표, 각 나라별 감축 할당량, 교토 메커니즘에 대한 발전된 방향의 새로운 이정표에 대한 관심은 철저하게 강대국들의 패권과 국가이기주의에 짓밟혔다. 각국은 철저하게 자국의 목소리만을 반복했을 뿐, 결국 지구를 구하기 위한 인류 공동의 과제를 풀지 못한 채 협상은 다음번 회의로 미뤄졌다.

‘코펜하겐 협정문(Copenhagen Accord)’에 명시된 이번 회의의 성과는 ‘지구 온도 2도 상승 이하로 제한하자는 합의’와 ‘기후변화 취약국에 대한 재정지원금으로 2010~2012년 까지 300억 달러, 2020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를 제공한다’는 것을 합의한 정도로 사실상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껍데기뿐인 수준이다. 여기에 선진국들이 2010년 1월 31일 까지 추가로 자국의 감축목표를 결정해서 UNFCCC사무국에 통보하기로 한 점, 탄소 흡수원인 산림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REDD)이 강화된 점, 개도국은 자발적으로 감축 계획을 세워 탄소감축에 나서기로 한 점 등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2도 상승 이하 제한’에 대한 명시는 지난 시기 IPCC를 비롯한 과학단체와 과학자들이 이미 제시해왔던 수준이라는 점에서 새로울 것이 없는데다, 구체적인 온실가스 농도에 대한 제한이 없는 상태에서 온도상승만을 제한했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 또한 기후변화 취약국가에 대한 지원금인 연간 1000억달러 역시 개도국이 주장한 2000억~3000억달러에 못 미치는 수준이며, 합의된 재정지원금마저도 어떻게 마련할지 결정되지 않아서 앞으로 남아있는 논의과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내년 1월말까지 선진국들이 감축 목표를 추가로 제시하기로 한 것도 역시 시원찮은 결론이다. 이에 대한 핵심은 개도국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선진국들의 감축 목표치’ 제시이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준비하여 2주간 치열하게 토론한 후에도 합의되지 못했던 선진국 감축 목표가 예정된 기간동안 획기적으로 제시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빗대어 그린피스 사무총장인 쿠미 나이두는 ‘코펜하겐 회의를 마친 각국의 지도자들이 범죄현장을 떠나고 있다’고 묘사했다. 눈앞에 거대한 재앙이 예견되고 있는데 각국은 팔짱이나 끼고 남 탓만 했고 그렇게 회의는 예정된 시간을 지나 맥없이 끝이 났다.   

-기후변화를 둘러싼 국제정치판의 치열한 주도권 다툼-

모두가 주목했던 코펜하겐 회의가 왜 이리 만신창이가 됐을까. 이는 새로운 기후협상에 관한 국제정치 속에서 벌어진 각국의 치열한 주도권 다툼에 원인이 있다. 누군가는 이를 ‘총성없는 전쟁’이라 표현했다. 코펜하겐 기후회의를 만신창이로 만든 나라들의 주요한 전략은 ‘눈치보기’와 ‘남탓하기’다. 그들 국가들의 주요한 사상적 무기는 모 연예 프로그램에서 유행되었던 ‘나만 아니면 돼’ 정신이다.

기후변화의 주도권 다툼의 큰 축은 유럽연합과 미국, 그리고 중국이다. 기후변화 국제회의에서 결정되는 사안이 자국의 정치·경제·안보 등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막강해졌기 때문에, 각 나라가 펼치는 기후변화 외교정치는 지독하도록 냉정하고 살벌하다. 이 과정에서 각국은 철저한 자국의 이익에 기반한 치열한 두뇌게임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군도 없고 적군도 없다.어제의 동맹은 오늘의 적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이 회의 초반에 덴마크,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과 함께 ‘의장서 초안’ 작성에 함께 했지만, 후반부에는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공 등과 함께 ‘코펜하겐 협정문 초안’을 제출했다는 점이 그러하다. 2주간 진행되었던 협상의 과정에서 각국은 자국의 필요에 의해 공동 연합 전선을 꾸려 상대를 맹공격하거나 비난해댔다. 그 사이 진정한 논의나 협상은 멀어져만 갔다.

기후변화 협상장이 전쟁터라면, 각 국은 포탄을 자기 머리위로 수십개를 던지고 떨어질려면 시간이 남았으니까 누가 몇개를 더 많이 던졌는지 서로 따져보자고 있는 꼴이다. 이곳 기후변화 전쟁터에서는 적군이 없고 아군만 있다. 지금 각 나라들은 지구라는 적군없는 전쟁터 위에서 아군에게 총을 쏘고 모두가 다 같이 죽자는 식이다. 폭탄이 땅으로 떨어져 내려오면 그 피해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덴마크 문건 공개, 책임지지 않으려는 선진국들의 진심 드러나-

회의 초반에 제시되었던 이른바 ‘덴마크 문건(Danish text)’은 덴마크와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의 합작품이었다. 이는 개도국들에게도 선진국과 동일한 감축의무를 져야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선진국들의 협상 카드가 담긴 문서였다. 그러나 개도국과 선진국 간의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는 불평등한 조항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개도국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이 문서는 의장국인 덴마크 정부의 ‘의장 합의서 초안’으로 제출될 예정이었는데 사실상 등장과 함께 폐기되었다. 문건에 따르면 모든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이 1990년 대비 205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을 50% 줄여야 한다. 이 경우 2050년에는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선진국은 2.67t, 개도국은 1.44t으로 제한받게 되어있어 선진국이 더 많은 배출 허용량을 가지게 되어 논란이 되었다.

문건이 공개되기 전의 과정은 더욱 문제가 되었다. 선진국은 개도국들에게도 감축의무를 부과하기 위해서 개도국을 배제한 채 작업을 진행해 민주주의의 원칙과 평등주의의 원칙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건이 공개된 후 G77그룹(중국 등 135개 개도국 국가모임)은 즉각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며 맹렬하게 반발했다. 덴마크 의장 합의서는 선진국이 먼저 책임있고 선도적인 행동을 제시하지 않은 채 개도국에게 선진국과 동일한 감축 의무를 일방적으로 강요했기 때문에 도저히 개도국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확고하게 자리잡은 ‘공공의 적’. 미국과 중국-

이번 회의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은 중국과 미국, 즉 G2 국가의 확고한 부상이다. 그러나 이는 기후회의를 방해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과시한 것일 뿐 어떠한 긍정적인 효과도 나타내지 못했다. 이로 인해 중국과 미국은 전 세계 NGO 활동가들의 ‘공공의 적’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중국과 미국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의 40%를 넘어간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 1위와 2위를 나란히 달리고 있는 두 나라는 공교롭게도 어떠한 감축 의무도 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두 나라는 매우 닮아있다.

미국의 전략적 의도는 유럽 중심의 기후변화 정치판도의 패권을 자국으로 옮겨오는 것이며, 이를 위한 전술적 방법은 기존에 구성되고 합의된 정치판도에 합류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 협상에서도 그러한 전술은 철저하게 지켜졌다. 미국은 이를 위해 BASIC(브라질, 남아공, 인도, 중국) 국가들을 새롭게 집결시켜 ‘코펜하겐 협정문’을 관철시켰다. ‘코펜하겐 협정문(Copenhagen Accord)’의 초안이 이들 국가에 의해 도출되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점이다. 초반에 협상을 주도했던 유럽연합이 후반부에 코펜하겐 협정문 초안 작성에서 배제됨으로서 기후변화에 관한 세계 패권의 판도가 유럽에서 미국 중국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중국은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새로운 공적이자 막강한 강적으로 부상했다. 중국은 기존의 교토의정서의 틀을 강력히 고수하면서 어떠한 추가적인 논의의 틀도 거부했다. 이는 중국이 개도국으로 분류되어 감축 의무를 지지 않고 있는 현재의 틀을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이번 회의에서 중국이 한 역할은 연신 ‘안된다’는 말을 외쳐대는 것뿐이었다.

유럽연합의 입장에서도 미국과 중국이 참여하지 않는 감축 논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여 어떻게든 두 나라의 눈치를 보며 두 나라를 새로운 감축 의무 틀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역시 이러한 자국의 위치를 역 이용해서 전 세계 감축 목표 등을 인질로 코펜하겐 회의를 전략적으로 방해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2년 마다 유엔에 보고하도록 한 개도국들의 자발적인 감축에 대해서도 중국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자국의 주권’을 존중한다는 절충안이 선택되었다. 이로써 개도국의 감축에 대한 국제적인 검증은 어정쩡한 결과로 남게 되었다.

이에 유럽연합은 EU 이사회 순번의장국인 스웨덴의 안드레아스 환경장관의 입을 통해 ‘코펜하겐 기후변화 정상회의는 재앙이었으며 엄청난 실패’였다고 말했다. 또한 뢰트겐 독일 환경장관은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회의가 구속력있는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한 것은 미국과 중국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중국은 기후 보호를 선도할 의지가, 미국은 선도할 능력이 없다고 맹비난하고 나섰다. 또한 영국 기후변화 담당 장관 에드 밀리밴드는 중국이 기후변화 협상을 ‘납치’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G77의 의장인 수단의 루뭄바 디아핑 대표 역시 ‘나치가 유럽에서 600만 명을 소각로로 몰아넣은 것과 같은 생각에서 나온 합의’라며 맹비난했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술을 끊기보다는 간 이식을 위해 돈을 모으기로 한 것이나 같다’라고 밝혔다.

-세계시민사회(NGO) 역량과 결합해 부상하는 최빈국가들-

이러한 선진국들의 주도권 싸움 속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국가들의 의견은 거의 묵살되거나 반영되지 않는 것이 그간의 정치 판도였다. 이 또한 철저한 국제외교정치의 냉정한 한 면이었다. 그러나 코펜하겐 회의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들 최빈국가들의 새로운 정치적 부상이다. 물론 이들 국가들의 요구가 정치적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주목해야 할 지점은 분명히 있다.

이들 국가들은 다양한 형태로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요구를 제시하고 있다. 해수면 상승의 아이콘이 된 투발루는 기후변화 취약 국가군(V11)과 군서도시국가연합(AOSIS)의 지지를 받아 공식적으로 지구온도 ‘1.5℃ 이상 상승 억제’ 안건을 제출했다. 이들 국가가 제한한 1.5도 상승 제한에 관한 논의는 2015년에 중간 점검 차원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해 일부 성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한편 몰디브 대통령은 전 세계 환경네트워크인 350.org와 함께 전 세계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350ppm(백만분율)로 안정화해야 한다는 국제적인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387ppm이다. 그는 전 세계 시민사회 NGO들이 기후변화당사국총회의 대안사회 포럼으로 개최한 ‘클리마 포럼09(Klima Forum 09)’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세 글자는 바로 3(쓰리), 5(파이브), 0(제로)이다’라는 연설을 하며 새로운 기후변화 정치 리더로 급부상했다. 이들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최빈국가들이 어떻게 향후에 정치적이며 대중적인 운동을 주도할지가 다음번 회의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선진국들이 기후부채를 갚아야-

이번 코펜하겐에서 또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전 세계 시민사회 NGO 들의 연대이다. 12일 있었던 전 세계 공동행동의 날에는 코펜하겐 시내에만 약 6만명의 시위대가 집결했다. 16일 집회에서는 회의장소였던 벨라센터를 가득히 에워쌓았다. 이들 전 세계 NGO들의 연대가 향후 정치 협상에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의미있는 것은 NGO들이 내건 구호 중 가장 빈번하게 눈에 띈 구호가 바로 ‘기후정의(Climate Justice)’와 ‘기후부채(Climate Debt)’라는 점이다.

이는 선진국이 만들어놓은 지금의 상황을 아무 죄 없는 최빈국의 가난한 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빚대어 만든 구호로, 선진국은 기후정의의 관점으로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선진국들은 자신들의 편하고 안락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난한 나라사람들에게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다. 기후변화의 진정한 해결은 선진국들이 자신들이 빚지고 있는 기후부채를 어떻게 갚는지에 대해, 선진국들이 명확한 역사적 책임을 나눠지는 것이다. 이렇게 명쾌하고 단순한 방법 말고 또 다른 해법이 있을까. 기후정의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느냐가 향후 멕시코에서 열리게 될 16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의 성패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 손형진)
* 위 글은 민중의 소리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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