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숲길을 걸으며

2009.08.18 | 산양

# 지난 8월 15~16일, 녹색연합은 경상북도 울진 숲길과 왕피천 탐방로(속사~상천) 조성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여름휴가 인파로 고속도로가 새벽부터 꽉 막힌 주말, 귀한 시간을 내어 녹색연합 자원활동에 참여한 이상훈씨의 참가 후기입니다. 녹색연합은 생태가치를 보호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새로운 산행, 여행문화 확산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전국에서 벌어지는 ‘길’조성 사업이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북적대고 정신없는 일상을 벗어나 가방하나 둘러메고 경치 좋은 곳으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건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거기에다 많은 의미까지 담을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을 터. 그런 점에 있어서 녹색연합 자원활동은 이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지 않나 싶다. 그렇지만 출발 전 8월달의 도로사정을 생각하니 갑갑해지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역시나 얼마가지 않아 꼬리를 무는 긴 행렬이 시작되었다. 무수히 많은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정한 휴가다운 휴가를 누리지 못하고 사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은 불편해도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면 더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을 텐데. 암만 여행지에서 재충전을 한다해도 되돌아 오는길에 기력을 다 소비해 버린다면 여행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이런 것들을 느끼면서 예정보다 늦은 시각에 울진에 도착했다.

산길의 시작점이 되는 두천리 마을까지 걸어가며 바람에 익어가고있는 벼들의 냄새가 실려왔다. 사람의 오감중에 후각이 가장 오랫동안 기억을 간직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나보다. 내가 어릴적 자라온 시골마을에서 맡았던 바로 그 냄새가 옛 시절을 떠올리게끔 만들었다.

아직은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이 숲길의 초입에는 옛 상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불망비가 세워져있다. 바로 이 길이 옛날 그들이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지나다녔던 길임을 알 수 있다. 자연스레 한가득 등짐을 짊어지고 물건을 팔러나가는 상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길을 좀 더 걷다 보니 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고 풀이 조금밖에 자라지 않은 넓은지역이 눈에 띄는데 다름 아니라 화전민들이 살았던 터란다. 그들의 삶이 어땠을까 머릿속에 나만의 상상이 또 한번 펼쳐진다. 길을 걷는데 있어서 경치를 감상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그 길의 역사와 배경을 알고 걸으면 산보의 재미가 더 배가된다는 생각을 한다. 계속 길을 따라 걸으니 시원시원하게 뻗은 금강송 군락이 나를 반긴다. 특유의 붉은빛깔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또한 이곳은 국내에 얼마 남지 않은 산양의 서식지로 유명하단다. 이날 나는 아쉽게도 마주치지는 못했지만 이제 이곳이 일반인들에게 개방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물을 먹으러 내려온 산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숲길 끝자락에 이르렀을 때 이미 해는 넘어가고 하늘의 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차가막혀 너무늦게 울진에 도착해서 속보로 산길을 걷는 바람에 천천히 음미하지 못했음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무언가 번쩍하고 빛이 났다. 반딧불이었다. 이 얼마만에 보는 광경인지 너무도 놀라웠다.

포장길을 한참 걷다가 일을 보러 시내로 나가시는 마을분의 차를 운좋게 얻어타고서 편하게 내려갈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것도 모자라 차까지 대접해 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다. 이것이 시골 인심인가 보다. 이제는 너무나 각박해져 버려서 모르는 사람에게 제대로 말붙이기도 불편한 도시의 사람들이 이러한 넉넉한 인심이 그리워 그렇게 여행을 다니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울진에서의 하루가 무수한 별들과 함께 저물어갔다.

다음날 아침 왕피천이 흐르는 탐방로를 걷기위해 이동했다. 국내 최대의 생태경관보전지역이기도한

이곳은 우리나라 청정 지역의 최후의 보루가 아닐까 생각들 정도로 절경이었다.  왕피라는 이름의 유래는 글자 그대로 왕의 피난처로 쓰였다는 역사적 배경으로 생겨난 것이란다. 그만큼 적들도 쉽사리 찾지 못했을 곳이니 개발주의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도 살아남았으리라.

탐방로 코스는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다. 중간중간에 큰 바위들도 건너뛰어 넘어야 하고 깍아지는 듯 한 가파른 경사도 올라가야 한다. 위험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미지의 탐험가가 된 듯한 기분을 줘서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숲길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보이는 계곡물과 거대한 바위절벽이 만들어 내는 멋들어진 풍경은 가히 예술적이었다.

옥의 티는 길을 걷다가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버젓이 취사행위를 하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탐방로 개방이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오게 될텐데 철저한 감시가 이루어져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곳곳에 처음보는 야생화들이나 수목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 아쉽다. 이번 울진숲길을 걸으며 오래간만에 마음의 평온을 찾을수 있었고 앞으로 관광객들이 늘어나도 이 아름다운 산림을 잘 유지시킬 수 있는 대책들이 잘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 이상훈 (녹색연합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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