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를 보는 어떤 방식

2009.12.18 | 산양

이 겨울, 멧돼지를 보도하는 풍경
매년 겨울, 무엇보다 현안이 되어 버리는 것은 다름 아닌 멧돼지이다. 2009년 겨울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이, 마치 올해의 가장 큰 환경현안이 멧돼지인 냥 이삼일에 한 번씩 뉴스에 보도되기가 벌써 두세 달이다.

멧돼지로 인해 인명피해가 생기고 농작물 피해가 크다 보니 이를 위한 어떤 대책의 마련이 되어야 하는 상황임은 분명한 듯하다. 이를 해결하고자 환경부는 지난 11월 ‘유해조수’에 대한 ‘어떤 대책’을 들고 나왔다. 환경부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17만 마리 정도의 멧돼지가 서식하고, 56억 원 정도의 농작물 피해가 멧돼지로 인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천적이 없는 생태계에서 번식률이 높은 멧돼지가 늘어나면 피해를 더 늘일 것임으로 개체수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조금 있는 말로 표현해서 그렇지 평소 말버릇처럼 하자면 멧돼지를 19개 정도 지역에서 반절 정도 때려잡아야 한다는 내용이 환경부 대책의 요이다.

환경부가 발표한 정책의 적절성에 대한 왈가왈부가 채 끝나기도 전에, 본격 멧돼지 논쟁이 시작된 계기는 쌀집아저씨 김영희 PD가 기획한 ‘일요일 일요일 밤’의 생태구조단 <헌터스> 때문이다. <헌터스>는 농민들의 애환을 듣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멧돼지에 대한 고민을 던지겠다며 “멧돼지를 필두로 인간의 삶을 위협하게 만든 생태계 파괴에 대해 경고하고…. 생태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앞장선다” 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멧돼지를 등에 업은 농민의 시름
농민의 시름을 듣고 해결방법을 찾겠다는 프로그램이 생태계 ‘구조’와 농촌문제의 해법을 사냥에서 찾는 신기한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런 태도가 불편한 이유는 멧돼지의 생태적 특성에 대한 설명 없이 그저 난동을 부리고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에 멧돼지를 향해 총을 겨누는 내용을 복사하듯 내보내는 방송의 문법도 문법이지만, 무엇보다도 멧돼지 자체가 농촌의 피폐함의 유일한 이유인 듯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사료 만도 못한 쌀값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들이 자기 자식 같다는 논밭을 뒤집어엎던 풍경을 본 것만 해도 벌써 몇 번째인가. 저 넓은 농촌의 들이 기업도시에 군기지에 골프장에 뺏겨버린 사례가 어디 한두 번인가. 사람도 그렇게 내쫒기는 데 짐승이야 더 할 말이 있을까.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상을 줄때는 언제고 4대강을 어쩐다 하며 다 나가가라는 판국에 자꾸만 농민들은 길거리로 나선다. 평생 농사짓고 살고 싶다는 농민들의 소망을 논밭과 함께 멧돼지보다 더한 불도저로 뒤집어 갈아 엎어버리는 정책을 펼치는 나라가 바로 여기다. 판로 걱정에 쌀값 걱정에 농산물 시장을 개방에 깊어지는 농민의 시름은 겨울에 첫눈 보도 하듯 내보내면서 멧돼지는 연일 뉴스도 모자라 예능프로그램의 소재까지 되어버렸다.

농민들이 대규모로 상경해서 농민집회를 하는 와중에도 언론들은 농민을 울리는 멧돼지를 더 비중 있게 보도했다. 언론의 힘이다. 멧돼지를 등에 업고 너무나 쉽게 농민의 시름을 이야기 해버린다. 정말 그네들 말처럼 멧돼지를 다 없애면 농민이 살만해질까. 농민들이 정말 눈물을 닦을 수 있을까.

지금의 농촌과 그곳의 멧돼지
일제 강점기에는 반달가슴곰도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유해조수’였다. ‘헌터스’들이 사냥개를 앞세워 산속을 누비며 총탄을 날리고 난 뒤, 우리가 물려받은 것은 몇 년째 수백억을 들여 반달곰을 방사했지만 정말 반달가슴곰이 지리산에서 복원이 될지 말지 모르는 생태계이다. 게다가 그렇게 공들여 방사한 반달가슴곰이 정작 몇 해 살지도 못한 채 누군가 쳐놓은 올무에 걸려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공존’의 방식이다. 그리고 천적이 사라져 개체수 조절이 안 된다는 멧돼지가 남았다.

‘유해조수’에 대한 떠들썩한 보도를 내보내고 나면 드러나지도 않던 참 많은 것들이 사라져 버리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는 것은 아직도 농민의 시름일 것이다. 여전히 바뀌지 않는 농업정책일 것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은 수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던 멧돼지와 같은 ‘유해조수’로 인한 피해보상 방식의 적절성에 대한 논의 일 것이다.

모르겠다. 요즘처럼 한 번에 훅 가는 세상에서는 오히려 농촌소득정책으로 멧돼지 사냥에 농민이 나설 수 있게 해주고 멧돼지를 멸종시키고 난 뒤, 멧돼지 복원 사업에 몇 백억을 투자하는 ‘녹색산업’을 육성시키자고 하는 것이 설득력 있을지.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