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커(back-packer)가 되자.

2013.06.24 | 행사/교육/공지

열다섯 되던 해 여름 학교 선생님들을 따라서 지리산 종주를 하게 되었는데, 뱀사골, 벽소령, 장터목에서 3번의 야영을 경험하게 되었다. 큰 산을 알게 되었고, 자연속에서 머무름은 불편하였지만 신비롭고 황홀한 경험들이었다. 그 추억들 덕분에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산을 다니게 되었고, 가급적이면 산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서 다니게 되었다. 산속에서 야영을 하게 되면 풍부한 산소량에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로워 진다. 날씨가 좋은 날엔 밤하늘 초롱초롱한 별빛에 눈이 호사스럽고, 비가 오는 날엔 타프 지붕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귀가 즐겁다.

[사진]_계곡텐트_정재한여름이 다가왔다. 성큼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머쓱할 정도로 이미 여름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여름이 되면 캠핑을 즐긴다. TV 프로그램에서부터 신문기사 심지어 시시콜콜한 수다중에도 캠핑에 관련된 정보가 넘쳐난다. 서울 근교의 이름난 근사한 캠핑장에 가보자. 아파트를 옮겨 놓은 듯한 거대한 텐트들과 주방기구들, 그리고 휘황찬란한 조명아래 고기를 구울때 피어오르는 연기는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은하수를 가려버린다. 밤새 술마시며 떠들다보면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를 놓치고 만다. 버려진 음식쓰레기는 풋풋한 들꽃향기와 싱그러운 나무냄새를 뭍어 버린다.

캠핑이 유행을 넘어서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어 “녹색캠핑”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자유와 편안함을 동시에 누리고 싶은 욕망이 꼭 필요하지도 않은 캠핑용품들을 만들고 있으며, 자동차에 한가득 실어놓은 욕망을 과시하기 위해 난민촌 같은 캠핑장을 누비고 있다. 굳이 “녹색캠핑”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캠퍼들에게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고 아름답게 자연에 머무르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첫째, 자동차는 최소한으로 이용하고, 나의 능력을 믿어 본다.

내가 지탱할 수 있는 정도만 가지고 내가 갈수 있는 곳까지 오로지 내 힘으로 간다. 텐트, 타프, 침낭, 메트리스, 여벌옷, 취사도구, 음식물 등만 있으면 충분하다. 자연의 품속을 잠시 빌리는데 크고 화려한 도구보다는 작고 꼭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와 가벼운 먹을거리 몇가지만 준비하면 그만이다. 사람도 적당한 체중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캠핑도 군살과 지방을 빼고 다이어트가 필요한 것이다.

 

둘째,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풀 한포기, 나뭇가지 하나라도 함부로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자연속에는 많은 동식물이 함께 머무른다. 캠퍼들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곳은 그들의 보금자리이다. 세수, 양치질, 설거지 등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음식쓰레기는 당연히 가져가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자연에게서 잠시 빌려 쓰고 있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째, 옥상텃밭과 평상캠핑을 즐겨보자.

바쁜 일상에 캠핑을 떠날 여건이 힘들다면 주택가 옥상에서 텃밭을 가꾸고 평상을 설치해 보는 건 어떨까? 열대야로 집안이 푹푹 찔때는 에어컨을 끄고 평상에 텐트를 쳐서 캠핑을 즐겨보자.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보기, 음악듣기 등도 가능하지 않은가? 텃밭에서 직접 가꾼 상추, 고추 등으로 소박한 음식을 만들어 이웃들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다보면 우리 동네가 녹색캠핑촌이 될 것이다.

자연이 보여주는 색은 녹색만 있는 것이 아닐진데, 언제부턴가 녹색은 자연을 대변하는 색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자연친화적 캠핑이라는 뜻을 “녹색캠핑”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겠지. 진정한 녹색캠핑은 자연과 하나됨을 의미한다. 한겨울 눈속에서의 캠핑은 “화이트캠핑”, 눈부신 봄날 진달래능선에서의 캠핑은 “핑크캠핑”, 파도가 일렁이는 바닷가에서의 캠핑은 “블루캠핑”, 불타는 가을 단풍숲에서의 캠핑은 “레드캠핑”이라 불러도 좋다.

자연에 들고 머무름에 있어 나를 낮추고 주변을 둘러 볼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녹색캠핑의 정신이며,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바로 오토캠퍼에서 백패커로의 전환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_울릉도_정재한

 

글과 사진 / 녹색친구들 정재한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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