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녹색통신 4] 독일의 녹색띠, 생태축으로 다시 태어나다

2014.04.30 | 행사/교육/공지

동.서독을 가르며 죽음의 골을 형성했던 DMZ.
독일의 녹색띠, 생태축으로 다시 태어나다.

0429-band독일 DMZ의 새로운 이름 – 다스 그뤼네 반트 Das Grüne Band 냉전의 그늘 속에 신음하던 곳. 생명을 위협하는 지뢰와 철조망으로 막혀있던 경계지. 역설적이게도 이곳은 인간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난 덕에 희귀동식물의 안식처로서 자신만의 고유한 생태계 다양성을 간직할 수 있었다.

동서독 통일 직후 죽음의 경계선이었던 국경선을 평화와 생명의 녹색선으로 가꾸기 위해 이곳을 <다스 그뤼네 반트 Das Grüne Band 녹색띠, 그린벨트> 라 이름하고, 생태보전운동을 시작했다. 동서독 간 분계선이 처음부터 단단한 빗장을 채우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45년 2차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의 영토는 승전국인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에 의해 4개점령지역으로 분할 편성된다. 49년 서독과 동독정부가 수립되면서, 동서독 국경이 형성되었지만, 타국 사이의 국경선처럼 경계 감시가 심하지는 않았다. 52년 서독이 유럽방위공동체에 가입하자 동독은 1.5미터 높이의 철책선과 10미터 폭의 통제로, 500미터 이내 군사보호선, 5킬로미터까지를 출입통제구역으로 편성해서 국경시설을 강화한다.

당시만 해도 베를린 내 동서독 경계선 통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베를린을 떠나 서베를린으로 가는 사람들의 수가 점차 많아지면서, 61년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었고, 동서독 간 경계선은 죽음의 차단막을 두르게 된다. 동독 접경지의 숲은 감시를 위해 대규모로 벌채되고, 3,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철조망 70만 톤, 200킬로미터의 장벽, 1,800킬로미터의 국경 순찰로를 위해 콘크리트 120만 톤이 부어졌다. 차량진입방지참호 800킬로미터, 감시탑 850개가 세워졌고, 지뢰 130만 개가 매설되었다. 부비트랩 6만 개까지 설치되었기 때문에 이곳은 죽음의 지대로 불리게 되었다. 500여 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동독은 83년부터 경계지역 내 지뢰와 부비트랩을 모두 자진 철거했다. 매설위치를 정확히 기록해두었기 때문에 제거에는 문제가 없었다.

 SAM_03-horz           (왼)감시초소 사진.(오른) 동독을 탈출하려다 사망한 청년의 십자가 사진

 SAM_05           동독과 서독 사이에 놓인 철조망. 아직 부분적으론 철거되지 않은 채로 있다.

SAM_09           국경박물관 – 타이스퉁엔에 위치, 과거 국경세관건물. SAM_10           1989년 11월 10일까지 독일과 유럽이 분단되어 있던 곳이라고 쓰여 있다.
그뤼네스 반트는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노천박물관이자 독일 재통일의 살아있는 기념물이다. 통독 후 독일은 당시 분단의 현장을 일부 보전하고 박물관으로 개조, 독일 분단의 상징이자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람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동물들이 지뢰지대에서 숨을 거두었고, 경계지 내에 서식하고 있던 포유동물들은 생활공간과 이동거리에 제한을 받았다. 수생동물 역시 강과 하천에 드리워진 차단 막 때문에 번식과 생장에 어려움을 겪었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경계지 내의 농지는 집중영농과 살충제로부터 해방되어 덤불 숲으로 천이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원시림지대로 변모한다. 특히 생태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았던 지역들이 동독정부의 경작 및 관리금지 지침에 따라,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태서식지 유형을 창조해낸다. 접근하기 어려운 단절성 덕분에 자신만의 고유한 습지생태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리게 되는 등, 멸종위기 적색리스트에 등재되어 있는 수많은 동식물들의 은둔과 휴식을 위한 긴 서식공간이 된다.

통일 전 접경지역의 생태적 독보성을 기록한 작업들

75년 최초로 서독지역 경계선을 따라 코부르크 Coburg 지역 내 조류조사가 실시되는데, 이는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프로벨이란 청년에 의해서이다. 그는 이곳에서 수많은 멸종위기종들 – 가시검은딱새 야생때까치, 붉은등때까치, 자작나무검은방울새, 도요새, 암염소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을 관찰, 기록했다. 프로벨은 바이에른 환경단체 회원이었고 이후 지질생태학 박사를 취득하며 생물종보호운동가로 활동하며, 독일과 유럽의 그뤼네스 반트 프로젝트를 이끌게 된다. 또한 촬영감독 하인츠 지엘만 Heinz Sielmann은 82년부터 86년까지 촬영한 필름 <경계지대의 동물들 Tiere im Schatten der Grenze> 을 상영했고, 이 필름은 그뤼네스 반트의 독보적인 가치를 알리는 귀한 자산이 된다.

그뤼네스반트를 위한 구상과 결의

1989년 동서독 장벽이 무너지자 그 해 12월 환경보호단체 분트 BUND의 발의로 이 지대의 보전을 위해 독일 내 환경단체들 (NABU, WWF, 그뤼네 리가 등)과 민간재단, 독일연방환경재단, 동독지역 내 자연보호청 관계자들이 모이게 된다. 애초 서른 명 정도가 모일 것으로 예상했던 자리였지만 400여명 이나 참석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다스 그뤼네 반트> 라는 이름으로 이 공간을 전국적 규모의 거대 생태축으로 보전하자는 결의가 이루어진다. ‘죽음의 경계지대를 평화를 위한 녹색공간으로 만드는’ 그뤼네스 반트 구상이 탄생 한 것이다. 이는 독일 최초의 전국적 자연보호프로젝트라는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

동서독은 16개의 주정부로 구성된 독일연방공화국으로 통일 되었는데, 그뤼네스 반트는 9개의 주정부, 38개 군, 2개 자치시를 잇고 있다.

SAM_11           그뤼네스 반트 표지판

본격적인 그뤼네스 반트 현황조사

그뤼네스 반트는 동서독간 국경선에서 군경순찰로까지의 폭을 지칭한다. 폭 50 – 200미터 (평균 127미터), 길이 1,393킬로미터, 면적 177km² (17,656헥타르)의 다스 그뤼네 반트는 전체 면적의 60%가 강과 호수, 초지, 덤불, 숲으로 이루어져있다. 환경단체 분트는 연방환경청의 위탁을 받아 2001년 그뤼네스 반트 환경실태를 조사했다. 109개의생물종 서식지 유형으로 분류, 5,200종의 다양한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었고, 그 중 600종 이상이 멸종위기 적색리스트에 등재된 생물 종인 것이 확인되었다. 85%가 파괴되지 않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15%는 농지와 산업용지, 도로, 영업활동 등으로 훼손도를 나타냈고, 도로 450개가 이곳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유럽연합 자연생태계와 동식물서식지 보호지침 (FFH)에 해당하는 지역이 38%, 자연보호구역은 28%에 이르렀는데, 국립공원 1곳, 생물권보호지구 3곳, 150개의 자연보호구역이 존재했다. 향후 40개의 자연보호구역과 경계지 5킬로미터 주변지역에 125개 구역이 추가될 계획이라고 한다. 2012년부터 환경단체 분트는 2차 그뤼네스 반트 현황조사를 진행 중에 있고, 2014년 최종 완성, 발표 예정이다.

 

SAM_12-horz              그뤼네스 반트 산책로 – 과거 국경순찰로가 탐방로로 바뀌었다

그뤼네스 반트 땅을 둘러싼 소유권 처리와 보호관리

독일 DMZ의 거의 모든 땅은 통일협정과 함께 연방정부의 소유로 전환되었다. 이 땅은 과거 동독에 설치된 통제시설구역이었고, 일부를 제외하곤 대체로 보상과 함께 몰수된 땅들이다. 동독법에 따르면 국경 경비목적이 사라진 이상 원소유자들에게 반환되어야 하는 땅이다. 동. 서독 통일 협정에서도 베를린 장벽과 접경지 보호를 위해 공적으로 필요한 곳을 제외하곤 배상보다는 반환을 원칙으로 합의한 바 있다. 절차와 방식에 관한 논란과 함께 오래도록 지연된 토지반환은 96년 6월 제정된 접경지 토지관리법 (MauerG)을 제정되면서 제 절차를 밟게 된다. 이전 소유자와 후손들은 연방정부가 공공의 목적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시가의 25%를 내고 과거 자신의 토지를 재 매입할 수 있도록 한 것. 97년 초까지 재 매입 신청기간을 두었고, 2003년까지 처리, 완료되었다.

연방정부는 이 지역의 토지를 판매해서, 통일 재정으로 사용하려 했기 때문에, 반환대상지가 아닌 땅 역시 매각을 시도했고, 결국 전체 면적의 30% 정도가 개인소유지가 되었다. 그러나 개인소유가 된 땅들은 종종 집약적 농지로 쓰여서 그뤼네스 반트의 생태계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환경단체와 그뤼네스 반트 관할 주정부들은 연방정부에 의한 토지 매매행위를 중단할 것과, 당해 주정부로의 무상양도를 요구했다. 결국 전체 면적의 65%를 소유하고 있던 연방정부는 2003년 연방소유의 그뤼네스 반트의 보호와 소유를 해당 주정부에 이양하기로 결정, 이행했다.

그뤼네스 반트를 보호하기 위한 연방국가차원의 제반 절차를 간략히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2005년 연방정부에 의해 그뤼네스 반트를 국가 자연유산으로 등재.
2007년 연방정부는 생물종 다양성을 위한 국가전략의 일환으로 그뤼네스 반트를 등대프로젝트로 격상, 추진.
2009년 개정된 연방자연보호법 BNatSchG에 그뤼네스 반트를 전국생태서식지네트워크의 하나로 지정.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연방정부 소유지가 무상으로 각 주정부 또는 자연보호재단으로 소유와 관리의 양도 완료.

이로써 그뤼네스 반트는 생태보전과 경관보호를 위한 구체적 행동전략아래 놓이게 되었고, 역사와 생태, 문화를 결합한 교육과 관광이 지역경제활성화 전략과 결합되어 진행되고 있다. 그뤼네스 반트 보호 단체들은 2009년 독일정부 연정협약에서 제기한 바대로 이 지역을 독일내 첫번째 국가자연기념물로 등극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을 위한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정부와 자치단체, 마을, 기관, 재단, 환경단체가 하나 되어 지키는 그뤼네스 반트

독일의 생태축으로서 그뤼네스반트에서 확고하게 지켜지고 있는 중요한 원칙은 경계를 넘는, 즉 주정부와 시, 동 단위가 포괄된, 주민과 환경단체, 행정의 구분을 뛰어넘는 다차원적 보전전략 구상이다.
그뤼네스 반트 보호를 위한 단체 및 기관명을 보더라도 정부, 자치단체, 기관, 주민 등 민관이 함께 보전하는 전국적 프로젝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독일자연과환경보호연합, 독일경관보호단체, 독일연방자연보호청, 독일국립공원협회, 동서독국경박물관, 자연보호재단, 한스 지엘만재단, 생물종보전청, 전국부동산중개협회, 국립공원방문센터, 각 연방주 환경부처, 자전거문화, 전국숲관리사, 토지관리주식회사, 에르푸르트 전문대학, 생태교육기관 등등 다양한 기관과 단체들이 보전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SAM_15 ◀  자연보호구역 표지판

시민들은 사유지를 땅 한 평사기 운동을 통해 참여하고, 환경단체나 재단은 그뤼네스 반트에 대한 정보와 교육을 담당하고, 지역단위에서는 녹색원탁회의를 열어 보호활동과 자연보호구역지정을 서둘렀다. 이들은 그뤼네스 반트가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곳으로서, 사람을 살게 하는 땅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데에 생각을 같이 한다. 이는 <자연유산을 지키고, 자연체험을 가능하게 하고, 지역가치를 창조하는> 곳이란 표어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이들은 그뤼네스 반트 보호 프로젝트가 마을, 주정부, 국가를 넘어서 수많은 국제적 프로젝트와 연계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모두가 함께 하는 그뤼네스 보전활동

자연과 문화, 역사가 담겨있는 그뤼네스 반트 체험 프로그램 그뤼네스 반트가 안고 있는 자연과, 문화, 역사의 가치와 유산을 지역주민들과 방문자들이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연방환경부와 환경청이 지원하고, 환경단체 분트가 주관하고 있는 관광과 자연보호가 결합한 35개의 생태관광프로그램이 곳곳에 개발, 진행되고 있다. 이를 위한 공간으로 695km 에 이르는 생태탐방로와 440km 자전거 길, 5km 카누길이 조성되고, 129개의 안내판, 31개의 안내소, 11개의 전시관, 탐방안내원, 탐방책자들이 배치되었다. 자연보호전문가의 경관과 생태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설득과 활동은 지역사회의 동의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했고, 적색리스트에 등재된 멸종위기 동식물들과 생태적으로 위태로운 공간이 빠른 시간 내에 회복되도록 했다.

그뤼네스 반트를 지키며, 이 지역의 희귀종을 지키는 일이 지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와 더불어 지역가치를 창조,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사회생태적 발전이란 기회에 대해 다시 사고하게 했다. 자연과 문화, 역사가 함께 엮인 성공적 전략으로 평가되는 프로그램이다.
 SAM_16           그뤼네스 반트 고목림 지대 생태안내판

SAM_18           구 동서독 자전거길 책자. 국경순찰로와 인접로로 형성된 자전거길 1134 km을 소개하는 책

단절된 구간을 연결하기 위한 프로젝트.

과거 동서독 비무장지대 전체 1,393km 중 그뤼네스 반트로 지정된 곳은 85%에 해당한다. 2013년 현재, 그뤼네스 반트에는 1,200종의 멸종위기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으나, 총 구간 중 13% (180km)가 집중경작, 도로 등의 요인들로 인해 훼손된 상태라고 한다. 2002년 현황조사 당시 훼손된 지역이 15%였던 것에 비하면 줄어든 셈이다. 환경단체 분트는 네셔널트러스트와 더불어 2013년부터 군데군데 단절된 그뤼네스 반트를 다시 잇는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연방환경부의 재원을 바탕으로 자연보호청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생물종 다양성을 위한 국가전략의 일환이다.
우선 단절 구간이 길고 훼손도가 심한 3곳을 모델지역으로 설정했고, 2017년까지 단절구간 복원을 위한 전략을 마련하고 향후 타 구간들에도 적용시킬 계획이다.

그뤼네스 반트 땅한평사기 운동


네셔널트러스트 운동은 여전히 진행 중 애초 독일정부는 반환의무가 없는 대부분의 토지는 연방재정 충당을 위해 매각하려 했기 때문에 그뤼네스 반트 중 반환된 땅과 일부는 사유지가 되어버렸다. 90년대 말부터 환경단체 분트는 “초록주식” (녹색증서라고도 불린다)을 발행, 시민들로부터 받은 기부금으로 사유지가 된 토지를 구매, 생태축 보전운동과 그뤼네스 반트 체험 및 교육프로그램을 전개해오고 있다. 현재까지 환경단체 분트가 초록주식을 통해서 개인소유자들로부터 사들인 땅은 약 600헥타르이며, 전체 면적의 3.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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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주식 증서 녹색연합도 이 초록주식을 구매, 독일 그뤼네스 반트를 지키는데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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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개의 떡갈나무로 세운 동서독화합의 문 두더슈타트(서)와 에크링어로데(동) 경계지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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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증서를 들고 있는 고르바초프

0429-04구 소련의 서기장이던 고르바초프는 2002년 접경지역 두더슈타트 Duderstadt 에서 진행된 2002년 동서독 화합의 문 개막행사에 참석하고, 3000번째 녹색증서를 받았다. 이 지역은 환경단체 분트가 네셔널트러스트를 통해 구입한 땅의 일부이다. 그는 이듬해인 2003년 동서독 그뤼네스 반트를 동서유럽 그린벨트 프로젝트로 확장할 것을 공식 선언하며, 유럽그린벨트의 저명한 후원자가 된다. 이른바 유럽그린벨트 운동의 시작이다. 냉전의 벽이 동서독만을 가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동과 서로 나뉘었던 노르웨이와 러시아 국경의 북단 빙해에서부터 독일 오스트제 해안, 중부유럽과 발칸을 거쳐서 흑해까지 이어진 유럽 분단의 벽 12,500킬로미터를 생명의 녹색 혈관으로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현재 24개국의 참여로 진행 중이다. 풍경을 기억하는 것. 과거에는 절연되었던, 그러나 지금은 서로 다시 엮인 것들의 풍경. 단절의 풍경이 연계된 하나의 축으로 다시 살아나는 그뤼네스 반트의 풍경은 우리에게 생태적, 정치적 의미와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에서 녹색연합 전문위원 임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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