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쩌면 생각보다 가까운 지도- 제주 회원들과의 만남

2017.09.14 | 행사/교육/공지

서울에서 바다를 건너 제주에 사는 사람을 만나러 온 사람. 제주 곳곳에 흩어져 살다가 얼굴도 모르는 서로를 만나러 제주사람들이 처음 모이는 자리. 녹색연합 회원과 활동가들이 제주에서 모였습니다.
반가운 사람들이 모인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처음에 홀로 있는 섬처럼 떨어져 있었어요. 모임 장소에 도착하여 테이블에 어색하게 둘러앉았을 때 어떤 분이 저에게 친근한 말투로 “제주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으세요?”라고 용기내어 질문하셨는데, 저는 “활동이요?”라고 되물을 뿐, 당황스러워서 대답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모두 모이자 자리에 앉은 이들은 메모지에 자신의 이름과 자신을 소개하는 키워드를 적기 시작했어요. ‘한라산, 푸른 하늘, 바다, 숲’ 등 제주의 자연에 관한 것과 ‘떡볶이, 귀신얘기, 싸움의 기술, 영화, 그림’ 등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 또 제주에서의 삶과 관련된 ‘대중교통, 반려동물, 그림 같은 집’ 등 나를 대표하는 단어를 이름 아래에 간단히 적고 메모지를 하얀 칠판에 붙였죠. 메모지도 처음엔 하얀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섬 같아 보였어요.

그 다음 우리는 서로를 연결해 큰 지도를 만들었어요. 이름하야 ‘어쩌면 생각보다 가까운 지도’.
각자가 적은 단어를 다른 사람이 가진 단어와 연결해보았더니 우리가 생각보다 더 많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주’, ‘바다’, ‘연산호’, ‘한라산’ 같은 자연과 관련된 단어뿐만 아니라 ‘집’, ‘여행’, ‘그림’ 같은 겹치는 단어들이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심지어 저는 제가 적은 단어를 다른 사람과 연결하기도 전에 누군가와 벌써 연결되어 있었어요. 누군가는 자신이 선택한 단어가 다른 사람의 단어와 연결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다른 사람이 적은 단어에 대해 질문을 했죠. 이를테면 “싸움의 기술이 무엇인가요?”하고 말이에요. 갑자기 우리가 섬이 아니라 바다에 떠 있는 하나의 큰, 살아있는 돌고래 무리 같이 느껴졌어요.

제주회원들이 이렇게 만난 이유가 있겠지요? 녹색연합에서 10년 동안 조사한 서귀포 앞바다의 연산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산호는 크게 형태에 따라 팔방 산호와 육방 산호로 나눌 수 있고, 서귀포 앞 바다 범섬과 서건도 사이에 많은 산호가 산호정원을 이루어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자주 바라보던 섬들 사이 바다 속에 상상만하던 바다 동물이 정원을 이루어 살고 있다니. 제가 제주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바닷 속 산호들이 더 애틋하고 가깝게 느껴졌어요. 또 반대로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선 모습을 눈으로 보기만 했지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는 색다른 방식으로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걸 알게 되었어요. 각자 지금 궁금하게 여기는 것을 메모지에 적고, 둥글게 둘러 앉아 한 명씩 돌아가며 메모지를 뽑아 질문한 사람과 무관하게 질문을 뽑은 사람이 질문을 읽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죠. 질문을 뽑는 사람이 잘 모르는 질문이 나오더라도 최대한 성심 성의껏, 상상을 가미해서라도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보기로 했어요. 설악산 케이블카나 강정 해군기지의 상황을 묻는 질문이나 녹색연합 활동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 국가의 미래에 희망을 가져도 될 지에 대한 다소 무거운 질문도 있었지만 답변자들의 현명함에 질문자의 걱정이 녹아내려가는 것 같았어요.

“비오는 날 바다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떤 느낌일까요?”라는 엉뚱하고 서정적인 질문에도 답변자는 상상력을 발휘해 답변해야 했죠. 바다에 들어가면 진공 상태 속에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고 아주 긴밀하고 개인적인 감정도 질문에 열심히 답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스스럼없이 얘기할 수 있었어요. 제주시 맛집이 어디냐는 질문에는 서로 앞다투어 대답해주셔서 깜짝 놀랐죠. “진짜 제주에서의 삶은 여유롭고 즐거운가요?”나 “제주로 이주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은 무엇일까요?”와 같은 제주에서의 삶을 궁금해하는 질문도 있었어요. 제가 받은 질문이기도 했어요. 처음 어색했던 분위기와 달리 옆에 앉아 계신 분이 이웃이나 친구 같다는 마음이 들어서 제 경험이 우선 생각났어요. 제주에 달랑 캐리어 하나 들고 왔지만 제주의 자연을 마음껏 느끼고, 온 마음을 다해 자연과 제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분했다고. 하지만 여유롭고 즐거운 순간들은 흘러가기 마련이어서 언제 어디에서나 여유롭고 즐거운 순간을 소중하게 붙잡아둘 마음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건 여유롭고 즐거울 거라고요.

우리가 서로 묻고 답했던 시간은 끝났지만, 모두들 아쉬웠는지 우리 이야기는 계속 되었어요.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어쩜 그렇게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 수 있었을까요? 언제 어디서가 중요하지 않듯, 우리가 처음 만났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졌어요. 제주의 맛집을 공유하는 친구이면서 서귀포 앞 바다 산호가 사는 모습을 궁금해하는 공통 관심사를 가진 친구 말이에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 때쯤 진짜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왔어요. 두시간 여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해도 될까요? 우리는 어쩌면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서로를 반가웁게 만나길 바라면서 있었는지도 몰라요. 나를 아는 것과 어느 사람을 아는 것은 생각보다 가까운지도 모르구요. 또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우리 어쩌면 육지와 섬 사이의 바다를 건너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지도요.

모임을 마친 우리는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거예요. 이렇게 제주까지 찾아와주어서 감사하다고, 직접 나서기 어려운 부분을 활동가분들이 대신 나서 주셔서 감사하다고. 내 이야기를 전할 모임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고요.

글: 가을 이맘때, 억새랑 한라산이랑 번갈아가며 가장 많이 보고 지내고 있는 최수정 회원/ 사진: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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