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칼럼] 생태와 사회를 구할 순환의 조건

2020.06.03 | 행사/교육/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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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아버지께 나라에서 지급하는 코로나 긴급생계비 지원 신청 방법을 일러드리는 중이었습니다. 계좌로 받아 체크카드로 두루두루 쓰면 편하다고 하는데도 굳이 지역 상품권으로 받겠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작은 읍내를
벗어나지 않는 노년의 삶은 생계를 위한 씀씀이도 단조롭습니다. 시장에 가서 갓 담근 김치를 사고, 단골 이발소에 가고, 망가진 돋보기를 새로 사러 나간 길에 의원에 들러 혈당을 재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지역 경제 내에서 생계유지와 상호 의존이 맞닿아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생산과 소비, 물류, 이동의 사회 변화를 가져왔고, 큰 도시에 사는 제 생활도 달라졌습니다. ‘삶을 유지하는 조건’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멀리 이동할 일이 줄어들자 사는 지역에 관심이 생기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2년마다 이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된 주거 공간에 대한 욕구가 커졌습니다. 또 도심 속 작은 공원이 몸과 마음 건강을 챙기는 중요한 삶의 조건임을 깨닫게 되었지요.

이사 온 지 3년 만에 사는 동네에 관심이 생긴 계기는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면서부터입니다. 코로나19의 확산이 시작된지 2주가 지나고, 철저한 생활 방역으로 주거공간의 주거공간의 기능은 돌아오고 있었지만, 약국 앞 긴 줄은 여러 날 지속되었지요. 작은 단체의 제안으로 돌봄이 필요한 마을 사람들을 위한 마스크 제작이 시작되었습니다. 발 빠른 이가 가장 중요한 필터 재료를 구하고, 공방 주인은 마스크 도안과 설명서를 준비하고, 품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은 제작에 참가하고, 시간을 낼 수 없는 이들은 재료비 모금에 참여해 하루 만에 145개의 천 필터 마스크가 완성되었습니다. 손바느질로 하나 만드는 데 2시간이 걸리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지요. 지역 사회가 나눔의 순환을 돕고, 생태에도 도움이 된 좋은 예입니다. 함께 위기를 견딘 이 경험이 작은 마을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다음 위기를 극복할 동력이 될 겁니다. 위기에서 사회를 지킬 첫 번째 조건으로 ‘지역 중심’을 망설임 없이 꼽는 이유입니다.

두 번째 조건은 ‘정의로움’입니다. 코로나19 위기와 마찬가지로 개발로 발생한 환경문제의 가장 큰 딜레마는 가장 소외되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들이 가장 큰 부담을 짊어진다는 것입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자연과 인간 사이에 모두 통용되는 문제입니다. 올 여름, 최악의 폭염을 예견하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을 보니, 다음 위기는 ‘기후’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 해 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에서 멸종위기 야생동물 오랑우탄을 보호하는 활동가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숲을 태워 만든 팜 농장은 날로 넓어지고 있었고, 오랑우탄 서식지가 줄어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어미가 사살당하거나 불에 타 죽어 고아가 되는 새끼 오랑우탄이 늘고 있었습니다. 값싼 팜유를 대량으로 생산해 전 세계에 판매하기 위해 자연이 치룬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책임 있는 순환은 필요한 것을 ‘생산’하는 것과 더불어 ‘발생’하는 것을 함께 고려해야 가능합니다. 그래서 맥락과 과정이 중요하고, 전체를 이루는 부분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전의 삶으로 악착같이 돌아가려 애쓰기보다 삶의 전환을 시도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마지막 조건은 ‘마음 챙김’을 들겠습니다. 심리학자 윤덕환 님은 올해의 키워드로 ‘외로움’을 꼽으며 외로움이 물리적적 폭력만큼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를 극복할 힘은 일인 미디어도, 게임도 아닌 진짜 사람과의 소통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합니다. 코로나19 위기 속 고립된 상태에서 감염자들에게 혐오와 적대의 감정이 표출되는 것도 자기 표현권 이면의 외로움일지 모르겠습니다. 지난해 녹색연합은 시민들과 함께 기후 위기를 주제로 국내 미개봉된 영화를 번역해 상영회를 열었습니다. 영화 제목은 ‘익숙함과 작별하기, 변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기’입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기후 우울증입니다. 기후 위기를 바로보기 시작한 사람은 누구라도 문제의 거대함에 압도되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우리 마음 한구석에 있는 절망감이 격변의 시기에는 무거운 닻이 되어 휩쓸리지 않게 도와줘요.” 이 영화 번역에 참여했던 이는 가장 인상 깊은 대사로 이것을 꼽으면서 우울감을 부정의 에너지로 보기도 하지만, 그 감정이 우리 행동과 결합하면 끝까지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모이고 떠들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직접 하는 것이 이 거대한 우울감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든든한 동네 친구를 만나세요. 내 마음 건강도 챙기면서 사회와 생태를 구할 수 있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2020년 한 해 동안 녹색연합 4대강령 [생명존중/생태순환형 사회의 건설/비폭력 평화의 실현/녹색자치의 실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녹색연합 활동의 기본 가치에 대해 함께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 녹색희망 217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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