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티쉬 쿠마르와 녹색연합이 맺은 인연

2004.04.26 | 녹색순례-2004

버트란트 러셀의 핵 반대 시위는 사티쉬 쿠마르가 무일푼으로 산과 황무지와 눈과 폭풍우를 뚫고 인도에서 러시아, 유럽을 거쳐 미국까지 8,000마일의 평화순례를 하도록 만들었다. 또 사티쉬 쿠마르의 평화행진은 해마다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배낭을 메고 십여 일 동안 한반도의 산천을 걷는 녹색순례의 길로 이끌었다.



어찌 보면 무모하기까지 한 녹색순례가 계획되었을 때, 누구 하나 반대하거나 의문을 품지 않았다. 두발로 디디면서 온 몸으로 느끼고 경험한다는 것. 녹색순례는 우리가 이 땅을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이 되는 ‘무엇’인가를 가르쳐준다. 바로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일이다.

지금까지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98년도 갯벌을 지키기 위해 시화호에서 새만금까지, 99년도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경기도 가평에서 강원도 태백까지, 2000년도 새만금간척사업반대운동을 위해 다시 갯벌로, 2001년도 우리 국토의 허리를 따라 비무장지대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2002년도 전국 방방곡곡의 미군기지를 찾아서 2003년 낙동강 강줄기를 따라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에서 부산 을숙도 까지 걸었다. 그리고 2004년 올해는 강원도 태백 화방재에서 점봉산 진동리까지 육백삼십 리. 백두대간의 숨소리와 생명을 찾아 떠난다.

녹색순례를 통해 우리는 ‘이 땅 어느 곳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라는 슬픈 사실을 발견했다. 또 자연이 아픈 곳을 디딜 때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함께 아파오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살아있는 곳에선 우리 역시 숨통이 트이고 다리에 힘이 붇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결국 우리와 자연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그래서 함께 아프고 함께 기쁘다는 것을 우리는 녹색순례를 통해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녹색순례의 에너지가 녹색연합 활동가들의 열정이 되고 힘이 된다. 우리는 그 힘으로 일년을 살아간다.

5월 12일 다시 녹색순례의 출발을 기다리며,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우리를 녹색순례의 길로 인도한 그가 한국에 온다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가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녹색평론에 실린 글과 인터뷰를 통해 그가 인도출신이며, 인도에서 미국까지 걸어서 평화순례를 했다는 것과 생태잡지 리서전스(Resurgence) 편집자라는 점이 전부이다. 하지만 우리가 설레어하며 그와의 만남을 고대하는 것은 녹색순례라는 끈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대단한 인내심을 갖고 있으며, 자연의 소리를 누구보다 잘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가 말하기를
“중국인들이 어떻게 만리장성을 쌓았습니까? 벽돌 한 장을 놓고 그 위에 다시 한 장을 놓았던 겁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내가 핵무기에 반대해서 평화행진을 하면서 인동에서 모스크바, 파리, 런던, 워싱턴까지 걸어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걸음씩, 한 걸음씩 걸었던 겁니다.”

“땅위를 걸어가면 나무, 강, 나비, 딱정벌레 같은 자연과 아주 가까이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나는 내 두 다리가 내 신체에서 가장 창조적인 부분이고, 걷기가 에너지의 가장 창조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가 자연의 아름다움, 즉 생명과의 친밀한 접촉을 통해 얻어진 것입니다.”




마치 지금처럼,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다가 신문의 글이 하나 눈에 들어왔습니다. 90세의 영국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이 핵 반대 시위를 하다가 투옥되었다는 글이었습니다. 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90세에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감옥에 가는 사람이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동료 프라바커 메논과 의논하여, 핵강대국들의 수도인 모스크바, 파리, 런던, 워싱턴까지 평화행진을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버트란드 러셀에게 우리가 도우러 간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나는 매우 늙었으나 빨리 걸으라”라고 답장을 했더군요.
– 사티쉬 쿠마르 인터뷰 중에서, 녹색평론

사티쉬 쿠마르는 인도의 토지개혁운동에 참가해 수 천명의 사람들고 함께 걸어다니면서, 불가촉천민들에게 땅을 나눠 줄 것을 부유한 지주들에게 요청하였다. 집작컨대 그의 모습은 생명평화탁발순례에 나선 도법스님과 수경스님,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300여 킬로미터를 삼보일배로 순례한 네 분의 성직자 그리고 ‘말 못하는 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고자’천성산을 떠난 지율 스님과 많이 닮아 있을 것이다. 어두운 밤길을 걷다가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등불을 들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그를 쫓아가게 된다. ‘빛이 되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어서 아직은 다행이다.

21세기를 위한 연속 사상강좌 (제4회)
제목:“자연으로부터 배운다”
강사 : 사티쉬 쿠마르(Satish Kumar)
일시:2004년 4월 29일(목) 저녁 7시부터
장소:원불교 종로교당 (전화 02-765-4781) ※ 자세한 위치안내는 녹색평론 홈페이지 참고.
주최: 녹색평론사, 녹색연합, 도서출판 달팽이, 생태공동체운동센터,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풀꽃평화연구소
주관:21세기를 위한 사상강좌 운영위원회

글 : 정책실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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