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이레째 – 너른 자연은 마침내 공존의 길을 터주었다

2004.05.19 | 녹색순례-2004

아침부터 극락왕생으로 들어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오대산 월정사 입구인 일주문부터 본전 앞마당까지 펼쳐진 전나무 숲은 백두대간 최고의 숲 터널이다. 만약 하늘의 세계가 있다면 이런 길로 오르지 않을까 싶다. 길게는 500년에서 짧게는 100년 정도 된 나무들까지 전나무 수백 그루가 무리를 이루는 곳이 바로 월정사로 들어가는 길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숲 속으로 햇볕 한줌 비집고 들어오기 어려울 정도로 울창한 숲이다. 한 번이라도 걸어본 사람은 이 숲 터널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함양 상림과 설악산 비선대 들어가는 길은 이곳에 비하면 그저 작은 숲에 지나지 않는다.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숲 터널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백두산과 개마고원에 있는 가문비군락이나 잎갈나무 군락 정도가 아닐까?

이른 아침에 만난 월정산 전나무 숲 덕에 지난 7일 동안 걷고 또 걸어서 저려오는 다리와 어깨의 뻐근함이 잠시 풀어지는 듯 했다. 무릇 울창한 산이나 짙은 숲을 보면 한번 더 오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월정사 전나무 숲은 오고 또 와도 그 푸르름과 신선함이 언제나 새롭기만한 그런 곳이다. 월정사의 기억을 가슴에 담고 계속해서 계속 걸어서 산속으로 접어들었다. 상원사로 이어진 약 8km 가량의 오대천 따라 걸었다. 백두대간을 포함하여 남한에서 이렇게 넓으면서 운치와 생태 자원을 모두 품고 있는 길은 오직 오대산 월정사에서 북대사 넘어 가는 길 뿐일 것이다. 오늘은 월정사에서 시작하여 상원사를 거쳐 북대사를 넘어 홍천 명개리까지 가는 길이다.

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건설교통부가 닦은 고속도로와 국도부터 첩첩산중의 약초길, 심마니 길까지, 그 크기와 용도에 따라 길의 모습도 다양하다.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 가장 작은 길은 동물들이 다니는 길일 것이다. 멧돼지, 노루, 너구니, 삵 같은 숲에서 사는 우리 친구들이 다니는 길이다. 고개를 숙이고 잘 살펴보면 땅바닥에 이들이 다닌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주로 주능선보다는 사면이나 골짜기를 이리저리 횡단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길만 다니는 몹쓸 인간들이 또 있다는 점이다. 바로 밀렵꾼들이다.

백두대간은 어디나 할 것 없이 역사의 현장이다. 고대사부터 최근의 현대사까지 민족의 삶과 투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너른 마당이다. 일제 식민지와 전쟁을 겪고 근대화로 이어졌던 현대사도 백두대간 곳곳과 만나면서 웅혼한 서사시로 펼쳐져 있다. 우리는 그중 으뜸을 지리산이라 알고 있다. 빨치산으로 상징되는 분단이 빚어낸 비극의 상징과 그 현장의 역사. 2만 명이 넘는 빨치산이 눈보라 휘날리는 겨울 지리산의 골짜기에서 붉디붉은 선혈을 흩뿌리며 죽어갔던 것을 백두대간 현대사에서 으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다른 격전의 현장이 있었으니 오대산과 태백산이다. 특히 오대산의 반가량은 전쟁 전까지 북한 땅이었다. 38선이 홍천군 내면 명개리 근처를 지나간 것이다. 그래서 전쟁 전까지 무수한 빨치산이 넘나들었으며 교전도 많았다. 전쟁 때도 1951년 황병산과 노인병 근처에서 중공군 1개 사단이 전멸한 격전지가 있다.

그래서 지금도 그쪽으로는 산불이 나도 이런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혹시나 그 때 남아있던 불발탄이 산불에 터져서 위험하지 않을까 해서 그렇다. 이런 역사의 흔적이 있었기에 지난 1968년 울진-삼척 사건이 터지고 나서 오대산을 관통하는 길을 뚫은 것이다.

대간첩작전을 비롯하여 여러 군사 활동을 펴기 위해서 공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생태계고 동식물이고 고려도 없이 군 공병대를 동원하여 작업을 했다. 그 당시로는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의 해발 1,500m를 넘나드는 토목공사를 하여 지금의 북대사 관통도로가 생긴 것이다. 애초에 이런 곳에 도로를 낸다는 생각자체가 어이없는 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기에 군인들이 자신들 맘대로 길을 낸 것이다. 비록 시작은 자연에 대한 파괴와 군림하듯 훼손하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자연은 너그러이 이 길을 끌어안았고 마침내 공존의 길을 터주었다.

그래서 지금은 숲 속에 묻힌 길이 되었다. 오대산 북대사 관통도로와 같은 분단이 낳은 어이없는 산림훼손은 백두대간에 또 있다. 바로 벽소령 관통도로다. 북대사 관통도로와 거의 같은 목적으로 닦은 길이다.

오대산 북대사 관통도로는 개통 뒤 별다른 용도 없이 있다가 80년대 초반에 강원도에서 지방도로로 편입하여 지금까지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평창 도암이나 봉평에서 홍천 내면 사이를 잇는, 운두령을 넘는 포장도로가 있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는 이 길로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놀러 온 사람들이나 산나물을 캐는 사람, 주목을 도벌하고 동물을 밀렵하는 사람 정도다. 예전부터 이 도로를 지방도로에서 해제하여 국립공원에서 영구히 폐쇄하여 관리했어야 옳았다. 또다른 웃지 못할 일은 이 길이 지방도로로 지정되어 있다보니 강원도청 소속의 도로관리원들이 ‘도로가의 잡초를 제거한다’라는 나름의 이유로 북대사 넘는 길가에 무수히 펼쳐진 온갖 희귀식물들을 제초기로 잘라 버리고 있다. 그네들의 눈에는 국내 희귀종인 금강초롱도, 노랑무늬붓꽃도 그저 도로를 침범하는 제거해야 할 잡초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오르면서 순례단은 한 가지 어려운 숙제를 풀기 위해 아픈 다리 쉬어갈 겸 작은 토론회를 열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도로포장계획에 대한 바람직한 해법을 찾기 위한 토론이었다. 환경부는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7.8km의 비포장도로를 포장할 계획이었다. 이미 2002년 말에 예산 약 50억 원까지 마련했다. 비포장도로라 먼지가 나고 탐방객들의 차량이 밀려 들니 공원 관리를 잘 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공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을 중심으로 반대의견이 제기되면서 포장공사가 유보된 상황이다. 과연 어떤 것이 지혜롭고 슬기로운 선택인가? ‘이 길을 직접 걸어본 뒤 상원사 입구 쉼터에서 대안을 찾아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포장을 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비포장도로로 그냥 두고 자동차의 출입을 통제하고 셔틀버스로 이동을 보장할 것인지, 직접 길을 걸어보고 해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상원사 입구에 도착하여 전나무와 잎갈나무가 하늘을 뒤덮듯 어우러진 숲속의 쉼터에 둘러앉았다. 대다수 의견은 자동차를 위한 포장도로는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대안으로 셔틀버스나 탐방용 버스가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채로운 것은 서울대공원의 코끼리버스를 운행하자는 의견이었다. 특히 이 의견은 월정사-상원사 구간 자체가 불교의 성지이니까. 불교에 신성시하는 코끼리를 이미지화한 연결용 차량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또다른 의견으로 ‘이미 비포장이지만 포장도로처럼 이용되고 있지 않으냐, 포장이냐 아니냐가 초점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차량을 통제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순례 중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20분 이상을 쉬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대안 모색을 위한 자리는 30분 이상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 확정된 결론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 생각을 나누며 이후 상원사도로 문제에서 뚜렷한 원칙과 기준을 자신있게 마련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점심 먹고 나서는 경이로움에 흠뻑 젖었다. 평창과 홍천 경계 지점 못미처 길가에 노랑무늬붓꽃이 무리로 펼쳐져 있었다.

소백산에서 보고 태백산에서도 보고 설악산에서도 보았지만 모두가 등산로에서 보았지 차가 다니는 길가에서 본 것은 아니었다. 왜 북대사 관통도로가 지방도로에서 해제 되어야 하는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늦여름인 8월 말이면 금강초롱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고, 칼잎용담이 황산벌에서 쓰러져 갔던 계백의 병사들이 마지막 치켜들던 칼날처럼 곳곳이 일어나 있다. 노폭이 7m가 넘는 길에서 차가 수시로 다니는 길에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와 보호대상종인 식물이 군락을 이루는 곳은 오직 이곳뿐이다. 백두대간 뿐 아니라 다른 어떤 곳을 가더라도 차가 다니고 사람이 다니는 길가에 이토록 다양한 식물과 나무들이 어우러진 곳이 있었던가, 분비나무와 사스레가 어우러지고 거제수와 피나무가 동침하듯 노니는 숲을 지나가는 길이 과연 어디 있었던가. 북대사 관통도로는 비록 분단의 잔영으로 태어난 길이기는 하지만 자연은 이를 보듬어 주었다. 그리고 이 길은 두로봉과 비로봉 사이를 관통하는 오대산을 갈라지게 했지만 끝내는 오대산이 품어 안아 숲 속의 길이 된 것이다. 이렇게 자연은 계속해서 관용과 공존을 보내는데 인간은 끊임없이 스스로의 이기와 편리함만을 생각하고 있다.  

북대사 넘어 내려오는 아름다운 길은 생각보다 쉬웠다. 그런데 계곡으로 내려갈 즈음,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려 순례단은 비옷을 여미며 걸음을 재촉했다.

오대산처럼 큰 산에서 만나는 비는 어떤 상황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아주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 오늘 비는 한 시간이 못 되어 그쳤다. 덕분에 운행을 마치는 시간이 1시간 가량으로 단축되었다. 숙소는 오대산 명개리 바로 코앞에 있는 삼봉휴양림이다. 백두대간에 자리잡은 여러 휴양림 중에서 아주 골짜기 깊숙한 숲 속에 묻혀있는 곳이다. 삼봉휴양림의 밤은 별이 없어도 빛난다. 바람이 불어 피나무와 거제수나무를 뒤흔들기 때문이다. 바람결 따라 밤하늘에는 나뭇잎이 춤추고 땅에선 신갈나무가 우쭐댄다. 가슴 속까지 스며드는 밤공기의 시원함을 느끼며 늦은 밤까지 설렁설렁 바람에 취했다. 술이 없어도 취할 때가 있다. 바람과 물, 그리고 산이 우리 마음을 흔들며 뒤척이게 하는 바로 그런 때이기 때문이다.  

※ 현장사진은 녹색순례 2004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pilgrim.greenkorea.org/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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