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배움터 ‘2004 백두대간 녹색순례 ’를 다녀와서

2004.05.28 | 녹색순례-2004

가자 ~ 천리길!
나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나에게는 모든 곳이 학교이고 배움터이다. 이런 나에게 엄마는 ‘백두대간 녹색순례‘라는 프로그램을 권하셨다. 녹색연합의 녹색순례 또한 나에게는 또 다른 학교이다. 열흘간의 대장정. 열흘 동안 이 배움터에서는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백두대간, 열흘 동안의 만남
ㅡ 움직이는 배움터 ‘2004 백두대간 녹색순례 ’를 다녀와서

가기 전날, 녹색연합 사이트에 올라온 녹색순례에 대한 정보들, 순례정신, 배경, 역사, 진행방법 등을 읽었다. 또 순례 때 부른다는 순례가, ‘천리길’을 배웠다. 피아노로 치면서 예습도 해보고 엄마와 함께 불러 보기도 했다. 예사롭지 않은 감각이 느껴졌다! 바로 이 곡의 작곡자는 ‘아침 이슬’, ‘지하철 1호선’의 그 ‘김민기’님이었다. 또한 엄마는 이 곡은 엄마, 아빠의 결혼식 행진곡으로 사용되었다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떠나기 전날 내 기분은 더욱 기분이 설레었다.

‘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
순례의 참가자는 대부분 녹색연합 활동가였다. 그 분들은 환경문제에 밝았고, 내가 배울 게 많았다. 또 민들레사랑방 출신인 경수형과 명래형이 있어서 더 반가웠다.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에서부터 삼척-두타산-자병산-삽당령-도암댐-오대산-월정사-상원사-내린천-계방천-아침가리골-방태천 계곡-조침령을 거쳐 미천골까지 630리길(250여km)을 걸으면서 백두대간을 내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다. 어떤 날은 하루 40km를 걸은 적도 있었는데 걷고 나니 사람들이 10km쯤은 껌(!)으로 여기기도 했었다. 순례기간 동안 나는 수많은 것들을 만나고, 생각하고, 배우게 되었다.




아직도 빨갱이가?!
첫날 했던 일들 중 하나는 태백산 미군폭격장이전 반대 집회 참가였다. 거기서 난생 처음으로 삭발식과 화형식을 보았다. 삭발식과 화형식만큼이나 나에게 충격이었던 것은 집회 진행자가 “우리는 결코 빨갱이가 아닙니다. 옛날부터 반공정신으로 교육받은 사람들이지, 우리는 결코 빨갱이가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매우 놀랐다! 세상이 아직도 빨갱이에 신경을 쓰다니 말이다. 빨갱이라는 말은 일제와 미군정을 거치면서 권력 도구로 반공을 택하고 그 속에서 나오게 된 말로 알고 있는데 태백산을 지키겠다고 얘기하면서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름다운, 그러나 아픈…
나는 순례기간 동안 간혹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숲 속의 맑은 공기와, 계곡의 맑은 물이 나를 새롭게 했다.
순례 기간 동안 걸으면서 보았던 울창한 숲과 하늘로 높이 뻗은 나무들, 맑은 계곡, 야생 동물의 흔적은 백두대간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반면에 깎여진 산들, 뚫린 터널, 도로가 놓인 산, 광산 등은 백두대간이 아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할 일은 바로 이런 것들을 고치는 것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라파즈 한라 시멘트 광산처럼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까지 자병산의 정상부를 깎아버리기도 한다.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하에서 자연을 보존하기란 참 어려운 것 같다. 아름답지만 아픈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란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먹고, 걷고, 자고…
우리는 순례동안 다양한 곳에서 잠을 잤다. 폐교, 민박에서부터 휴양림, 펜션까지! 어떤 곳은 정말 추워서 침낭에 웅크렸고, 어떤 곳은 방바닥이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뜨겁기도 했다. 이른 아침(5시30분!)에 일어나 밥을 짓고 도시락도 싸고, 어떤 날은 삼겹살 한점에 행복해하고 간만에 먹는 라면 맛에 감동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 모둠의 이름은 ‘알콜램프’였는데 백두대간 길 따라 난 곳마다 사람이 다르고 물맛이 다르듯 어디서나 특색 있는 막걸리가 빠지지 않았다.^0^

모둠사람들의 나이 또한 다양했는데 최연소자인 나(15세)부터 최연장자였던 어머니 같은 아주머니(58세)도 계셨다. 가족 같은 우리 모둠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한 분은 자작나무껍질에 글을 써서 마지막 날 모둠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짙은 노랑의 얇고 윤이 나는 자작나무껍질엔 ‘좋은 삶과 세상이 학교이고 스승이라는 종건에게… 많이 배우고 건강하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무척 기쁘고 고마웠다. 또한 활동가 누나, 형들은 자연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발령을 기다리는 예비 선생님과 학교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주로 내가 학교를 다니지 않으므로 학교의 군대문화나 인권유린, 획일적 지식주입 등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잘 해 볼게”하셨다. 선생님! 꼭 좋은 선생님 되셔야 해요~

어설프게 빨래도 하고, 때로 발에 난 물집을 터트리고, 바지에 쓸려서 아픈 사타구니에 분을 치면서도 즐거웠다. 어딜 가서나  그곳과 ‘동화’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적응을 빨리 해야 된다는 말과 같다. 그래야 함께, 더욱 더 즐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학교삼아
집을 떠나면 일단, 내가 늘 있던 곳에서 탈출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참 편한 것 같다. 대통령이 누구든 상관 안하고 연예인이 뭘 하든 상관안할 수 있는 곳 말이다. 어느 산골에 사시는 80대 할머니께 “지금 대통령이 누구신지 아세요?”라는 물었더니 “노현이”라고 대답하셨다.^^ 꼭 대통령이 누군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굳이 신경 안 쓰고 살아가는 것! 그것 또한 노자가 말하는 無爲自然이 아닐까. 백두대간 녹색순례는 그런 것들이 정말 실감나는 순간들이었다.

나는 너른 세상의 학교를 다닌다. 내가 회원으로 소속되어 월 회비(무려 5000원!^^)를 내고 있는 녹색연합도 나의 학교이며, 이 순례도 배움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만난 사람들은 나에겐 모두 선생님으로 값진 가르침을 주었다.
맑은 물, 울창한 숲, 툭툭 떨어지던 빗소리… 녹색순례가 많이 그리울 것 같다.

글 : 녹색연합 회원 이종건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