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녹색순례] 다섯째날 : 상훈사에서 묵계리 – 길을 만난다

2006.05.03 | 녹색순례-2006

녹색순례단이 길을 떠난지도 벌써 5일째. 숙소인 상훈사에서 출발해서 임도를 따라 경남하동군 청암면 묵계리로 향한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길을 걸으면서 많은 길을 만났다.
키작은 산죽(조릿대)이 바람과 함께 볼을 가볍게 스치는 작은 오솔길.
양쪽에 나무가 서서 행인들을 반기는 산골마을로 들어가는 비포장 흙 길.
산림관리라는 명목하에 무분별하게 건설된 임도와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2차선 국도.
여러 길 위에서 다른 물음들을 던져본다.

길을 묻는다.

산길을 걸으면서 가장 많이 마주친 길은 바로 임도이다. 임도는 산림관리와 산불방지를 위해 내어놓은 산속의 길이다. 대부분 비포장도로이지만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도 있다. 무분별하게 건설된 임도는 산림을 파괴할 뿐 아니라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붕괴 위험에 처해있다. 또 임도는 일반차량의 출입이 통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등산객들의 차량이 다니고 수렵 과 산나물 채취꾼들의 잦은 출입으로 생태계 파괴에 악영향을 미친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에서 천연 숲의 면적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천연 숲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임도가 도리어 숲을 파괴하는데 쓰이고 있다. 숲은 인간의 소유가 아니다. 나뭇잎이 떨어져 썩어 만든 흙의 것이며 휘파람새의 것이며 숲을 키운 태양과 바람과 비의 것이 아닐까?

생명의 걸음을 걷던 녹색순례단은 깊은 계곡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은 마을주민을 119에 신고해 구조하였다. 한 생명을 구했다는 기쁨과 임도위에서 물음이 채끝나지도 않은 발걸음이 회남재 고갯길에서 다시 멈추었다.

회남재 도로는 하동군 악양면 등촌리에 위치한 악양-묵계간 도로 확.포장공사로서 관광지 주요 도로의 확.포장을 통한 관광산업 활성화와 농촌주민 교통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행 환경영향평가법 상 신규도로개설의 경우 4Km이상이면 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규정되어있다. 그러나 경남 하동군은 2003년 9월 24일 사전 환경성 검토협의도 없이 악양면 등촌리 일대 2.1Km 구간에 대해 사업을 강행하였다. 산길에 2차선 도로를 내기위해 무리하게 공사를 하다보니 무분별하게 벌목하고 산지의 대부분을 잘라내야 했다. 지리산생명연대가 산림훼손과 생태단절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사회적인 문제로 등장하게 되자 영산강유역 환경청에서 공사중지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영산강유역환경청은 2004년 7월 대부분의 구간에 걸쳐 이미 벌목과 절개가 이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사업이 불가피하다며 사후 협의를 해줬다. 2005년 3월에 해빙기와 소량의 봄비로 아스팔트가 쩍 벌어지고 토사가 유실돼 지금 복구공사가 진행중이나 다른 구간도 여름철 집중 호우시 대규모 산사태의 위험이 매우 높다. 회남재도로 건설로 인해 관광객들이 마을에 머무는 시간이 줄면서 지역주민의 소득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늘어난 관광객들로 인한 쓰레기, 하천오염등과 같은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지리산생명평화연대 김상주 대표는 “산사태에 대비해 철저한 대책을 세우고 회남재 고갯길을 사람의 길로 만들어, 지리산 생태,문화,역사 탐방로로 가꾸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도로가 자동차 중심의 도로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함께 하는 길, 생명과 평화의 길이 아닐까?

회남재를 내려와 태평성대의 이상향이라 불리우는 청학동으로 유명한 묵계리로 그 발길을 옮겼다. 내려오는 길에 묵계재 방향으로 멀리 삼신봉 터널이 보인다. 삼신봉 터널은 경남 하동군 청암면에서 산청군 시천면을 잇는 지리산 외곽 순환 도로의 일부이다. 청암-시천간 총연장 4.4Km의 도로로 그 중에서 삼신봉 터널은 2.1Km를 차지한다.  이 도로 개통으로 청학동과 중산리간의 이동시간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 터널은 지리산국립공원 구간 중 1..5㎞구간을 관통하지만 입구와 출구가 그 바깥에 있다는 이유로 자연공원법 적용을 받지 않았다. 땅위는 국립공원이지만 땅속은 국립공원이 아니기 때문에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 터널의 개설로 인해 많은 관광객들이 청학동으로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다. 지자체의 관광수입욕구와 무분별한 도로건설이 우리 조상들의 예스러움과 지혜를 가져 도인촌(道人忖)이라 불리웠던 청학동을 모텔과 관광촌을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

길을 찾는다

우리 선조들은 짚신과 봇짐을 메고 지리산 옛길을 천천히 걸으며 자연과 가까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동차 핸들을 잡고 너무나 쉽고 빠르게 지리산을 찾는다. 그러나 자동차가 다니는 지리산 권역의 도로가 생태계를 파괴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지리산을 점점 멀어지게 하고 있다. 속도가 느리면 더욱 자세히 볼 수 있고, 좀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지금처럼 빨리 빨리 관광이 아니라 보다 천천히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길떠남을 해야한다. 길떠남이란 단순히 두 다리로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향해 어디론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길찾음이다. 움직이면서 주위와 계속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자신을 찾는 것이다. 길에서 길을 물으면서 길을 찾는 것은 아마도 길에서 도(道)를 닦음과 같을 것이다. 지리산의 길이 과거의 생명과 평화의 길을 되찾기를 바라며 또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빨치산의 추억
지리산이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아마도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슬픈 과거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지리산이 가진 슬픈 과거는 바로 빨치산의 추억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빨치산 하면 빨갱이 혹은 공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기에 아직도 지리산 곳곳에서는 빨치산의 활동지역은 공비토벌지역으로 남아 전적을 기리기 위한 장소로 되어있다.
최초의 빨치산 투쟁은 일제의 식민지의 광폭한 탄압과 수탈을 이겨내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에서 진행된 무장투쟁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1963년 마지막 빨치산인 이홍이가 사살되고 정순덕은 생포된 이후 빨치산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후로 빨치산은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남부군)와 소설(태백산맥) 속에서나 등장한다. 그래서 요즘 세대들에게 빨치산은 영화나 소설속의 허구 인물로 생각하고 있다. 회남재에 설치된 빨치산 관련 안내판에 있는 총그림과 공비, 토벌, 진압과 같은 단어들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역사의 생채기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비록 상처의 역사이지만 우리나라의 과거이기에 솔직하게 충분히 들춰내야한다. 왜 빨치산이 생겨났는지? 그들은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싸웠는지? 우리의 동포인 그들과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그 슬프고 아픈 기억들을 올바르게 떠올리고 되새기는 것이 새로운 화해와 공존의 시대를 열어갈 첫걸음이 될 것이다.

* 글 : 지리산 녹색순례 홍보팀
* 위 글은 지리산 녹색순례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pilgrim.greenkorea.org/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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