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 1일째] 강 방 왕 고라줍서

2007.04.29 | 녹색순례-2007

– 가서 보고 와서 전해 주세요

녹색순례 현장이야기팀  

신들의 고향 제주도, 남녘바다에서 끝없이 불어오는 바람, 유채꽃, 한라산과 그 아래 300여 개가 넘게 울룩불룩 솟아오른 오름, 그리고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섬 제주도를 표현하는 말은 이 밖에도 무척 다양하다. 이 아름다운 섬을 만나기 위해 일 년에 5백만 명이 넘는 내외국인이 이 곳을 찾아든다. 국내 최대의 관광지 제주도는 이런 분주함도 아랑곳하지 않은 듯 늘 따뜻한 마음과 너른 품으로 외지인들을 반겨준다.

해마다 찾아드는 봄이면 열흘씩 환경현장을 걸었던 녹색연합 녹색순례는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백두대간을 비롯해 비무장지대, 서해안 갯벌, 낙동강 같은 우리 강산의 중요한 심장과 허파를 구석구석 발품으로 누비고 다니며 생생하게 가슴으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오로지 두 발과 두 다리로 우리 땅을 내디디며 굵은 땀방울 뚝뚝 흘리며, 보전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감탄하고, 환경훼손 현장을 보고 분노하며,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깨달으며 그렇게 10년을 걸었다. 그 1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10년을 준비하면서 올해 녹색순례는 천연의 원시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제주 땅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육지에서 제주도로 들어오는 길은 두 가지다. 비행기를 이용하면 국내 어디서든 한 시간 만에 가뿐히 제주 땅을 밟을 수 있다. 하지만 신들의 고향, 제주도를 온전히 느끼며 첫발걸음을 디디는 데는 배로 오는 것이 가장 섬을 섬답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인천, 목포, 완도, 부산 등에서 제주로 들어오는 여러 편의 배가 있다. 제주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지난 30년 전까지는 제주에 들어오려면 배를 이용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지금은 제주로 들어오는 가장 흔한 방법이 항공 수단이지만 그 역사는 불과 30년 남짓이지만, 배를 타고 바다로 들어오는 길은 2,000년 동안이나 계속된 제주로 들어오는 수단이었다. 녹색순례단 역시 목포에서 배를 타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제주항으로 들어섰다.

목포에서 들어오는 뱃길에서는 다도해의 많은 섬을 바라보면서, 울긋불긋한 난대림의 빛깔에 곰솔로 덥힌 섬 특유의 숲과 어우러진 기암괴석에 감탄하기도 하고, 때로는 회색빛 바다와 짙푸른 바다를 만드는 깊고 깊은 속내가 궁금해지는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이런 섬의 진정성을 느끼면서 마지막 기추자도를 지나치면 비로소 우리는 제주의 문턱에 닿을 수 있다. 그리고 한라산을 중심으로 긴 어깨를 드리운 잠들지 않는 섬, 제주도를 만날 수 있다. 섬의 정체성, 섬의 문화를 가장 잘 품고 있는 곳 제주도를 만나게 된다.

제주도는 우리만의 제주도가 아닌 세계의 제주도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제주도는 작년에 유네스코위원회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신청을 했는데, 올해 7월이면 그 결과를 알 수 있게 된다. 제주의 가치를 전 세계에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갈등의 골이 깊어만 가고 있다. 제주도 산업의 중추였던 감귤농사가 한미FTA 직격탄을 맞으면서 농민들의 분노가 온 섬을 뒤덮고 있으며, 국방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면서 도민들은 찬반 양쪽으로 갈려서 흉흉한 민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도 제주의 바다는 여전히 바람을 몰고 와서 섬 전체를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쓰다듬고 있었다.

제주시 건입동, 제주의 대표적인 등대인 이 사라봉을 바라보면서 녹색순례는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제주도의 관문 중 하나인 제주시 국제여객터미널 6부두에서 힘찬 발대식을 열었다. 이번 녹색순례 10년의 의미와 우리의 다짐, 녹색순례 준비팀 인사, 그리고 제주의 대표적인 환경단체 ‘제주참여환경연대’ 이지훈 전 대표와 ‘곶자왈 작은학교’ 문용포 선생님의 귀한 말씀을 들으며 힘을 얻고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제주도의 첫 인상은 가로수에서부터 시작된다. 육지와는 가로수부터 뚜렷하게 다르다. 제주시의 주요거리에 있는 가로수는 침엽수가 아닌, 활엽수가 사계절 푸른 빛깔을  뽐내고 있다   후박나무와 구실잣밤나무 같이 두터운 잎을 반짝이는 난대림이 평화롭게 줄지어 서 있다. 제주시내는 제주고유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그래도 도심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나지막하게 솟아오른 오름 아래 검은 현무암으로 쌓아올린 돌담과 낮은 옛 지붕을 볼 수 있다. 순례단의 발걸음은 이렇게 제주의 자연과 옛 모습을 돌아보면서 북동쪽으로 이어졌다.

제주에서 유일하게 검은 모래밭을 지니고 있는 삼양해수욕장 동쪽 끄트머리에는 삼양목욕탕이 있다. 용천수를 모아서 목욕탕으로 활용한 것이다. 제주의 해안가 마을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마을 공동목욕탕이다. 한라산 정상 일대부터 중산간을 거쳐 해안가 쪽으로 땅속을 따라서 내려오던 지하수가 바닷물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땅 위로 솟아 나온 것이 바로 제주의 용천수다. 이곳 삼양도 그렇지만 제주 해안에서 만나는 용천수는 마을주민들이 만나는 어울림의 광장이자, 소통의 장이다. 여름이면 엉덩이 한 뼘 비비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주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육지 사람들은 대개 해수욕장을 찾지만 제주 사람들은 해안가 곳곳의 이 용천수를 찾는다. 이른 더위에 해마저 지쳐 가물거리는 늦은 오후, 이곳 용천수에서 빨래하는 여인을 만났다. 검은 현무암을 배경으로 뽀얀 옷가지를 헹구는 손길이 무척 부드러워 보였다.

순례단의 발걸음은 그렇게 북제주군 조천읍을 지나 해질녘 조천초등학교 신흥분교에 접어들었다. 여느 제주 학교들처럼 파란 잔디가 부드럽게 깔려 있는 이 학교가 오늘 순례단이 묵을 첫날밤을 보낼 숙소다. 서울에서, 부산에서, 광주에서 새벽부터 먼 길을 달려와 17km를 부지런히 걸은 순례단의 얼굴에선 피곤함이 뚝뚝 떨어졌다. 육지에선 아주 드물지만 제주에선 흔하디 흔한 잔디운동장을 보자마자 모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주물렀다.

마을에도 밭에도 돌무더기 펼쳐진 땅을 밟는 순례길, 마음속에도 발걸음에도 “강 방 왕 고라줍서(가서 보고 와서 전해 주세요)”라는 제주 방언을 되새기며 우리는 점점 제주의 마을과 대지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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