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 2일째] 개발로 신음하는 세계적 자연보고, 곶자왈

2007.05.01 | 녹색순례-2007

제주의 자연에 들면서 감동과 슬픔이 교차했다. 바로 곶자왈 때문이다. 녹색순례 이틀째, 곶자왈을 만나며 놀라운 생태적 가치와 특이한 경관에 감동했다. 반면 각종 난개발로 제 가치를 알고 제대로 보전하기도 전에 훼손과 파괴의 몸살을 앓고 있는 슬픔의 현장을 만났다. 곶자왈은 제주를 넘어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큰 의미와 가치를 가진 자연자원이다. 곶자왈은 화산활동으로 빚어진 용암지대에 형성된 숲이다. 크고 작은 용암석들이 펼쳐진 곳에 상록수림과 덩굴식물 등이 어우러져 있다.

곶자왈은 제주 방언으로,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헝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을 말한다. 과거에는 돌이 많고 가시덤불지대에 기름진 토양은 희박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쓸모없는 땅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곶자왈이 생성된 과정과 그 곳에서 자라난 식물과 식생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아주 드문 현상으로 알려지면서 그 생태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용암지대에 펼쳐진 제주의 살아있는 자연사박물관, 그 자체가 바로 곶자왈이다.

조천 함덕리에서 선흘 곶자왈로 올라가는 입구인 북촌리에서 마주한 것은 골프장이었다. 지난 2,000년 전후 제주도내에서 본격적인 골프장 반대운동의 대표적인 현장인 이곳은 부지 전체가 곶자왈을 훼손하고 들어섰다. 당시 골프장 반대운동에 나섰던 주민들조차 이곳이 세계적으로 의미가 있는 생태보고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생존권 차원에서만 골프장을 반대했다고 한다. 곶자왈에 들어선 골프장은 생태계 훼손과 함께 주민의 생활에 필수적인 수자원도 위협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제주도 광역수자원관리본부는 제주도내 지하수 사용량에 대한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이 결과에 따르면 제주도내 전체 지하수 사용량 18,119,000t 중 24.6%인 4,461,000t을 14개 골프장이 소비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2005년에만 해도 골프장 3개가 추가 개장하는 등 2008년까지 골프장 40개가 더 제주도에서 문을 열 것이다. 문제는 이들 골프장이 주로 곶자왈지대에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곶자왈 지대는 여느 땅과 달리 빗물의 80%를 지하수로 침투시켜 저장한다. 곶자왈은 국가적인 생태계의 보고이자, 제주도민의 생존이 달린 수자원의 보고다. 제주도 내에서 예정된 골프장 40곳이 전부 개장하면 이들이 사용하는 지하수 사용량은 제주도민 전체 사용량의 절반을 넘는 68.5%(2004년 기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제주도민의 먹고 마시는 물줄기의 반 이상을 골프장에게 내 준다는 것을 뜻한다. 더욱이 이들 골프장은 지하수를 많이 사용하는 것과 함께 농약도 대량으로 사용하여 지표수와 지하수의 순환구조가 매우 활발한 제주도의 상수원에 농약오염이라는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정작 제주도청은 안일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골프장 허가를 쉽게 내주면서 골프장으로 인한 지하수 고갈과 오염의 환경영향에 대한 저감대책 수립은 외면하고 있다. 이제 제주도청이 나서서 충분한 조사를 통해 골프장의 오염문제에 대한 우려에 과학적인 답을 제시해야 한다.

선흘곶자왈의 절정은 동백동산 일대다. 한국의 양치식물 80%가 제주에 서식하는데, 그중 80%가 이곳 동백동산에 서식한다고 한다. 동백동산 일대에는 먼물깍이라는 연못부터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곶자왈을 제대로 관찰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국내 최대, 최후의 상록활엽수림대 사이로 펼쳐진 숲길이다. 백두대간으로 상징되는 내륙지방의 온대림 지역에서 느낄 수 있는 돌밭으로 이루어진 길이다. 하지만 돌 자갈과 상록수 중 일부 떨어진 잎들이 어우러져 바위지대를 통과하는 길과는 느낌이 다르다. 숲의 경관부터 온대림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나타난다. 특히 고사리류의 다양한 양치식물이 드넓게 펼쳐진 것은 놀라움과 함께 신비감까지 더해 준다. 우리가 몰랐던 곳 곶자왈은 이렇게 숲의 이방인을 묵묵히 늘 푸른 수목의 품으로 껴안아 준다. 세상이 곶자왈을 주목하는 까닭은 한국특산종인 ‘제주고사리삼’의 자생지로 지구상 유일한 곳이 제주 곶자왈이라는 점 뿐만 아니라 곶자왈에는 개가시나무, 녹나무, 육박나무, 백서향 등 수십종의 희귀 법정보호식물과 천량금, 큰개관중, 창일엽 등 미기록 식물들이 분포하고 있다.

선흘곶자왈은 제주 곶자왈의 대표적인 지역 중 하나다. 이외에도 한경-안덕곶자왈, 애월곶자왈지대, 구좌-성산곶자왈 지대 등이 더 있다. 선흘곶자왈 지대는 드넓게 펼쳐진 상록활엽수림의 경관도 으뜸이다. 비무장지대를 제외하면 평원에 가까운 드넓은 숲은 이곳이 거의 유일하다. 동백동산에서 멀리 구좌읍 김녕까지 7km 가량 뻗어나가서 선흘곶이라는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도 덤프트럭과 포크레인으로 정신이 없다. 대섭이 동굴 입구를 지나서 덕천리까지 이어진 길 중간에는 선흘곶자왈의 한가운데를 파헤치는 가슴 아픈 난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이 태왕사신기 세트장 조성을 위해 선흘곶자왈의 핵심지역을 파헤치고 있는 현장이다. MBC가 야심작으로 준비중인 드라마 제작을 위해 세계적 생태보고를 파헤치고 있다.

묘산봉 일대에는 관광개발 문제도 심각하다. 골프장을 비롯해 레저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제주에서 골프장 건설이 본격화된 2000년 전후만 하더라도 지역주민들이 나서서 골프장을 반대했다. 그러나 7년이 흐름 지금은 마을공동목장인 곶자왈을 쉽게 팔아넘기는 곳이 흔하다고 한다. 암울한 제주의 농촌 현실에 땅을 적절한 보상가격에 팔고 떠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결과 현재 제주도 중산간지대인 곶자왈 중 국유림과 도유림을 제외한 사유림의 80% 이상이 육지 사람들의 소유가 되었다. 생태보고인 곶자왈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인식은 높아졌지만, 곶자왈을 보전하려는 제주도민의 의지만으로 온전히 지켜낼 수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곶자왈은 제주도의 자연유산이자, 한국의 자연유산이다. 생물종다양성으로 보나 생태가치로 살펴보나 우리의 소중한 자연자원이다. 하지만 곶자왈은 그 가치가 제대로 알려지기도 전에 훼손이 시작되었다. 더욱이 2000년 전후부터 제주도 내의 시민환경단체들과 전문가 들을 중심으로 곶자왈의 생태적 가치와 보전의 중요성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에도 골프장 건설을 비롯한 각종 대규모 관광개발은 여전했다. ‘곶자왈사람들’을 비롯한 제주의 환경지킴이들이 외롭게 이런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정작 제주도는 곶자왈 자연환경 조사는 외면한 채 가치와 중요성을 은근히 폄하하기만 했다.

제주도가 곶자왈에 대한 이해부족 때문에 난개발을 방치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하더라도 중앙정부인 환경부와 산림청은 무엇을 했는지, 아울러 육지의 많은 환경단체들은 그 동안 무엇을 했는지 자괴감과 반성이 가슴을 파고든다. 최근에는 내셔널트러스트운동으로 ‘곶자왈 한 평 사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의미있는 곶자왈 보전운동이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무관심과 제주도청의 병 주고 약주는 이율배반적 곶자왈 관리대책으로는 지금 거세게 불어 닥치는 개발광풍으로부터 곶자왈을 지키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현재 계획중인 곶자왈 일대의 각종 개발은 전면 중단되어야 한다. 아울러 환경부는 곶자왈의 생태적 가치에 대한 기본조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 자문해 주신 분
     – 제주투데이 좌승훈 기자
     –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상배
     – 곶자왈사람들
     – 제민일보 곶자왈 특별취재반

조천 함덕에서 선흘리 넘어 구좌 평대리까지
제주 북쪽 해안지역인 함덕리에서 중산간 아래자락인 선흘리를 지나서 평대리까지 이어진 구간이었다. 동광초교 신흥초교 함덕해수욕장 일대의 바다는 고요했다. 그러나 여름의 함덕은 제주 제일의 관광지로 변모한다. 함덕리는 대한민국에서 마을단위로는 그 규모가 제일 큰 동네라고 한다. 이장 선거도 웬만한 동네의 읍면을 대표하는 기초의회를 능가할 정도라고 한다. 마을 자체 규모가 웬만한 읍면을 능가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주도에서도 가장 큰 해수욕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녀회, 청년회 선거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함덕에서 선흘리로 오르는 길에는 제주 농업의 상징인 감귤밭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낙선동 제주 4.3항쟁의 유적지인 성벽이 아직까지 마을 사이를 관통하고 있다. 군경토벌대에 의해 격벽청야로 불리는 작전을 위해 설치된 돌담으로 만든 성곽이다. 높이 2m 가까이 되는 성곽이 나타난다. 제주의 초등학교는 그림 같다. 순례단이 하루를 신세진 신흥초교를 비롯하여 오전에 발품을 쉬어간 함덕초등학교 선흘분교까지 이쁘기로 따지면 육지의 그 어느 학교에 견지어도 뒤지지 않은 풍광을 자랑한다. 특히 선흘분교는 제주도에서도 손꼽히는 후박나무를 비롯하여 녹나무,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등 난대림은 상징하는 상록활엽수림이 학교의 풍광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학교는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선흘초등학교를 다니거나 졸업한 학생들은 심성은 참 맑고 푸를 것이라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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