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 8일째] 제주의 새로운 도전, 평화의 섬 – 이웃에게 군사력으로 평화를 모색

2007.05.07 | 녹색순례-2007

4.3의 상처가 짙게 베인 동광리에서 하루를 보내고 출발을 하면서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과거의 아픔을 딛고 동광리에 새로운 희망의 싹이 움튼다. 동광리는 태양광발전을 통해 에너지 자립을 꿈꾼다. 2005년을 정점으로 한국사회의 들끓게 했던 방폐장 논란도 본질은  에너지수급체계를 매개로한 정부와 주민간의 갈등이었다. 그 해결책을 제주도에서 모색하는 것이다. 국내 1차에너지 생산 중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2.2%다. 그나마 이 중에 쓰레기를 소각하며 생기는 열병합 발전과 수력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태양광, 풍력 등명실상부한 재생에너지의 비율은 0.2%에 불과하다. 제주도는 전력 생산 중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1.9%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그래도 전국적으로 가장 높은 수치다. 그 앞에 동광리가 있다. 마을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것이 태양광집열판이다. 마을 곳곳에는 제주 특유의 돌담과 6-70년대에 지은 집들이 그대로 있다. 제주농촌의 풍경 속에 태양광이 이채로우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에너지의 수급 절차와 방식을 놓고  정부와 주민 간에 죽네 사네 투쟁한 현실에서 동광리는 그린빌리지를 넘어 에너지의 평화를 이끌어내었다. 가구당 한달 전기료 200원이라는 동광리의 소중한 성과를 안고 녹색순례단은 8일째 구간을 향해 출발했다.

동광리의 흐뭇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동광 바로 아래 지역 화순에서 사라졌다. 지금 제주도는 들끓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 논란 때문이다. 그 정점에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가 있다.  2002년부터 시작된 제주 해군기지 추진 논란은 2005년부터 더욱 공방이 가열되면서 지난 4월 중순부터 제주도 내 최대 갈등으로 불이 붙었다.

화순은 제주도 해안마을 중에서도 손꼽힐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마을 바로 앞에는 산방산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용천수를 이용한 마을공동목욕탕과 공동우물도 여전하다. 화순은 제주의 여느 마을처럼 주민들의 인심도 좋았고, 민박집도 넉넉하고 깔끔한 동네였다. 화순에서 머물렀던 기억에는 제주 해안 마을의 아름다움과 인심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적어도 2000년 전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2002년부터는 지역이 들썩 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화순은 어지럽다. 마을주민들 사이에도 기지건설의 찬반 논란이 있고 안덕면의 다른 마을들과 화순마을 사이에도 기지건설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산방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내내 무겁다. 제주의 해군기지 건설에서 최대 쟁점 중 하나가 평화의 섬과 군사기지가 공존할 수 있느냐라는 점이다. 제주 남서바다는 태평양이면서 중국과 공존하는 바다다. 제주 남서 근해에  태풍경보가 뜨면 수백 척의 중국어선들이 모슬포를 비롯하여 주변 항구로 피신해 들어온다. 그만큼 중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바다다. 이런 현실에서 제주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견제가 분명해 보인다. 국방부는 강력한 군사력이 있어야 평화가 보장된다는 안보논리를 펴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고 첨단군사시설과 무기, 장비가 있어야 평화가 이루어지는지, 좀 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가 생각하는 평화와 지역민들이 생각하는 평화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정부의 논리만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그것은 갈등이 될 수밖에 없다. 화순항 방파제나 산방산쪽에서 화순 앞바다를 보면 해군기지가 어떻게 건설될 지 짐작은 된다.

하지만 화순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무엇보다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서귀포의 일대의  바다는 대부분 해양생태계가 매우 우수한 바다다. 국내의 바다 중에서 가장 청정하고 맑은 바다가 제주 남쪽 해안의 바다다. 화순 앞바다도 그런 곳이다.  제주에서 가장 청정한 바다 중의 하나다. 수심도 깊어 해양생태계가 양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바다는 심각한 환경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더욱이 약 10만평에 가까운 부지를 새롭게 매립해야 하는 토목공사도 만만치 않은 환경피해가 우려된다. 10만평의 넓이에 최소 3m만 매립해도 엄청난 토석이 필요하다. 제주 역사 이래 최대의 해상매립공사가 될 것이다. 만약 국방부의 의도대로 해군기지가 추진이 될 경우 이 정도의 토석을 어디에서 가져올지 궁금하다. 제주의 오름 몇 개는 그냥 사라져야 가능할 것이다. 지금은 해군기지를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논란이 전개되지만 결정이 된다하더라도 만만치 않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해군은 지난 90년 중반 이후에도 진해를 비롯해 곳곳에서 기지의 건설과 관련한 환경 분쟁을 겪으며 지역주민들과 갈등을 겪었다. 그 점은 해군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제주는 시련에 돌입해 있다. 해군기지를 두고 지역이 갈라지고 있다. 특별자치도를 맞이한 주민의 시대에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그것은 바로 평화의 섬에 대한 지역의 합의다. 평화의 섬이 무엇을 의미하며, 내용과 실체가 무엇인지, 원하든, 원치 않든 중앙정부로부터 제기된 질문에 응답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평화의 섬인지, 아니면 화해와 공존, 공영의 모색을 통한 평화의 섬인지 제주에서 답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제주는 국제 평화의 섬이다. 그런데 제일 가까운 이웃인 중국을 견제하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평화를 이루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어려운 숙제다.  

화순을 지나 산방산을 거쳐 송악산으로 가는 길에서 내내 화순으로 비롯된 제주의 시련이 맴돌았다. 녹색순례단원들은 저마다의 마음속에 ‘평화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안고 걸었다.

송악산은 제주 서남쪽 끝에 해당하는 곳이다. 화순-산방산-송악산까지의 해안은 성산일출봉과 함께 제주에서 손꼽히는 해안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며, 산방산-송악산 일대는 제주의 주요 관광지 중에서도 빠지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송악산과 산방산은 그저  관광지만은 아니다. 역사의 굴곡이 짙게 깔린 곳이다. 산방산도, 송악산도 깊은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송악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대형차량 주차장, 이곳은 마라도로 들어가는 선착장이기도 하다. 여기서 송악산을 바라보면 해안지대에 동굴이 15개 가량이 보인다. 굴곡진 제주의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일제시대 일본군의 특수군사시설이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45년 1월부터 일제는 제주도에 병력을 증강한다.

일본군은 제주도 전역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군사시설을 조성했다. 송악산과 알뜨르 비행장은 물론이고, 어승생악을 비롯한 제주도 전역에 수많은 지하터널과 벙커, 대공진지, 군사작전도로 등을 구축하였다. 45년 8월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투하로 전쟁이 종결되지 않았다면 제주도는 오키나와에 버금가는 불바다와 잿더미가 되었을 것이다. 제주도의 근현대사는 군국주의나 군사주의에 의한 피해가 가장 끔찍했던 곳이다. 강력한 군사력이 반드시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나라들이 이웃한 경우 항상 긴장이 뒤따랐다. 동북아는 중국과 일본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제주도 남쪽 바다 즉 남서제도와 동중국해 일대에서 지난 2년 동안 상당한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었다.

정부는 그 점을 알면서도 중국을 견제하자고 하는지, 중국을 상대로 한 안보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이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하는지 말해야 할 것이다.  45년 1월부터 8월까지 7만의 일본군이 송악산과 알뜨르비행장을 비롯하여 제주 전역에 결사응전 태세로 주민들을 죽음의 바로 앞에 내몰았다. 그리고 다시 60여년이 지난 후 제주도는 중국과 일본의 대결국면에서 일본이 가는 길을 따라 중국을 견제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국제 평화의 섬 제주는 설정부터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는지, 평화의 섬 제주에서  추구하고 실현되는 ‘평화’란 대결을 전제로 한 것이었는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제주도민 앞에 놓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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