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 2일차] 끝나지 않은 상처

2013.05.24 | 녹색순례-2013

day2

순례 이틀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양지리 노인정을 둘러싼 뽀얀 아침 안개를 보며 녹색 순례단은 기지개를 켜고 아침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순례 일정도 체크했습니다.

오늘(23일)은 남방한계선 최북단에 위치한 월정리역을 지나 노동당사와 백마고지를 거쳐 신탄리역까지 가는 코스입니다.

한국 전쟁과 그로 인한 분단의 상흔을 볼 수 있는 곳들이라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입니다.

시간 여행은 양지리 통제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신분증 확인후, 민간인통제구역에서 금지되는 행동과

조심해야 할 점 등의 안보교육을 받고 월정리역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도로 양옆에는 논이 펼쳐져 있고,

통제소를 통과한 농민들의 차량도 자주 눈에 띕니다. 민통선 이북지역에 농토가 있는 주민들은 매일 아침 통제소를 통해

신고를 하고 들어가 농사를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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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는 달리고 싶다’… 팻말이 무색합니다 상쾌하고 시원한 오전 공기 덕이었는지, 금세 월정리역에 도착했습니다.

경원선(서울-원산)의 간이역이었던 월정리역은 현재는 폐역 상태로 한국전쟁 당시 마지막 운행되었던 객차 잔해 일부와 인민군의 화물열차 골격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낡고 녹슨 객차 잔해를 보자니 그 앞에 큼직하게 쓰인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이 무색하게 느껴집니다.

한 때는 원산까지 연결되어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을 공간이, 지금은 경계초소관측소의 군인들만 보일뿐,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적막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넓은 평야와 교통의 요충지라 사람이 몰렸던 철원읍이 3년간의 한국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됐지만, 지난 흔적들은 단절된 상태로 드문드문 나타납니다.

월정리역을 지나 외촌리 도로를 걷다 보니 중간중간 제2금융조합, 농산물검사소 등 번성했던 철원의 옛 흔적이 훼손된 건물로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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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리 통제소를 지나 도착한 노동당사. 노동당사 건물을 향해 오르는 계단 중앙에 탱크가 밀고 올라간 캐터필러 자국이 선명합니다.

눈부신 5월의 햇살과 주변의 신록 속에 기둥의 총탄 자국과 얼룩진 모습은 도드라져 보입니다.

노동당사는 1946년 초, 북한 땅이었을 때 철원군 조선노동당에서 지역 주민들의 성금과 노동력을 동원해 지은 러시아식 건물입니다.

남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북한 건축물로, 건축 당시 보안을 위해 내부 공사인부는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노동당사는 주변 지역을 장악하여 반공인사를 고문·학살하고 양민들도 처형한 공포의 권력기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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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사 옆 그늘벤치에서 도시락 점심을 먹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녹슨 열차 잔해, 폐허가 된 옛 건물들, 그곳을 관통한 사건들을 생각하며 걸어서 인지 밥을 먹으면서도 묘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80년쯤 전, 장날에 경성과 원산에서도 몰려들 만큼 번성했던 곳, 60년쯤 전에는 이념으로 인해 양민들이 학살됐던 곳,

그리고 결국 전쟁으로 신기루처럼 사라진 도시. 이 공간이 지금은 오히려 평화를 상징하는 철원DMZ 관광명소가 되었으니 아이러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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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숨 쉬었다가 사요리, 대마리를 지나 도착한 백마고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백마고지는 철의 삼각지대 중 요충지로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단 10일간의 전투에서 7차례나 고지의 주인공이 바뀌었으며 12차례나 쟁탈전이 반복되었던 곳입니다.

작전 기간 중 모두 27만 발 이상의 포탄이 집중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영화 ‘고지전’의 모티브가 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경사로를 따라 백마고지전적비와 기념관에 오르니 단체 관광객들이 있습니다.

백마고지 전투와 관련해 군인의 설명을 듣고 질문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합니다. 참전자 모임 등에서 관광 왔다는 말을 듣고,

전쟁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훗날 다시 격전지를 찾았을 때 어떤 마음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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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에도 불구하고 전쟁 경험과 분단 상황은 우리 사회에 종횡을 넘어 큰 영향을 미칩니다.

정치계·문화계 인사들에게 종종 붙는 ‘종북(從北)’꼬리표의 매카시 열풍, 그리고 선거,

무엇보다도 전쟁을 경험한 ‘개인’들에게 내재된 숱한 상처들과 그로 인해 왜곡된 시선들.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여기 함께 있습니다.

 

현장감이 느껴지는 녹색순례 이야기! 오마이뉴스에 기획연재로 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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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연양갱 100개, 음료 100개), 아이쿱생협(된장, 간장, 고추장 등 식재료), 최명심 회원님(오이 20kg), 볼음도 주민(쌀 100kg),

태성김치(김치 20kg), 이몹쓸그립은사람아(김치, 막걸리), 유기농신시(과일 등), 신화자 활동가(출발 당일 점심),

문은정 활동가(현미 백설기), 김성만 전 활동가(지원차량), 양지리 노인정, 대광2리 마을회관, 북삼리 마을회관, 아미2리 마을회관,

임진강 유스호스텔, 인천 전도관, 백령도 김예찬 전 면장님 펜션

작성 : 녹색순례 홍보팀 (신수연/이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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