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순례3일차]낮은 곳, 높은 곳의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2019.05.11 | 녹색순례-2019

[녹색순례 3일차] 낮은 곳, 높은 곳의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녹색연합은 1998년부터 봄이 되면 도보순례를 떠납니다. 활동가들은 무쌍한 자연과 또 인간이 낸 생채기들을 현장에서 만납니다. 2019년 스물 두 번째 녹색순례는 기후변화를 걷다입니다.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를 둘러 재생에너지와 그 재생에너지를 일구고 사는 사람들의 궤적을 좇습니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는 당장의 편리가 결국 치명적인 불리로 돌아온 증거입니다. 에너지 전환은 이제 절체절명의 사명입니다. 89(59일부터 517일까지) 동안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보고, 듣고, 내디딘 단편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5월 중순, 여름이 코앞이지만 아침 바람이 서늘하다. 순례 셋째 날, 오늘은 군산에서 부안으로, 내변산을 넘어 줄포만으로 향하는 일정이다. 부안까지의 이동은 버스를 이용한다. 매일 걷는 일정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한 소위 ‘점프’는 긴 여정에서 단비 같은 존재다. 버스에 올라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며 에너지를 충전해본다.

출발한 지 10분쯤 흘렀을까. 창밖으로 지평선이 펼쳐졌다. 만경강 옆에 자리 잡은 만경평야다. 만경의 ‘만’은 바로 새만금의 ‘만’이고, 새만금의 ‘금’은 만경평야 남쪽 김제평야의 ‘김(金)’에서 따왔다. 저 지평선 너머에 새만금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들어봤을 새만금 사업은 방조제를 쌓아 바닷물을 막고 그 내부를 매립하는 대규모 간척사업이다. 방조제의 길이만 33.9km로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라 한다. 처음에는 매립지를 활용하여 농지를 공급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쌀 소비는 줄어들고 새만금 이용 계획은 계속해서 수정됐다. 그곳에 무엇이 들어설지, 어떤 모습이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공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강과 갯벌은 본모습을 잃고 죽어가고 있다.

버스는 생각보다 빨리 부안터미널에 도착했다. 여기서 내변산 탐방지원센터로 가려면 다시 지역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우리가 탈 내변산행 농어촌 버스에는 읍에서 장을 보고 돌아가시는 어르신들이 이미 자리하고 계셨다. 20여 명의 순례단원이 버스를 채우니 시골 버스는 어느새 만원이었고 버스는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시골길을 내달렸다. 양손 가득 짐을 든 할머님들이 하나, 둘 내리시자 버스에는 순례단원만 남았고 곧 목적지 내변산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본격적인 산행을 앞두고 몸을 풀었다. 이틀간의 순례 일정으로 몸은 피곤해져 있었고 오늘은 평지 길이 아닌 산을 넘어가기 때문에 몸을 충분히 풀어야 했다.

변산반도는 1988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크게 외변산, 내변산으로 나뉘는데 외변산은 바다를 끼고 있는 바깥쪽 지역이며, 내변산은 최고봉 의상봉을 중심으로 평균 400~500m 높이의 봉우리가 어우러진 산악지대다. 순례단은 내변산을 넘어 줄포만으로 향한다.

산은 시원했다. 푹신한 흙바닥이 발의 피로를 덜어줬고 풀내음, 꽃내음은 향긋했다. 순례단이 오르막을 만날 때면 거친 숨소리를 내쉬기도 했지만 숲이 주는 충만함에 감탄하며 걸었다. 풀과 꽃과 나무의 사진을 찍으며, 또 계곡의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숲을 느끼며 걸었다.

4시간가량의 산행을 마치자 땡볕의 길이 이어졌고 산행의 피로감과 강렬한 햇빛이 더해져 순례단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두 시간 남짓 또 걷고 걸었다. 그리고 저 멀리, 오늘의 목적지 줄포만이 보였다.

바닷물이 빠지면 가장 낮은 곳의 땅이 드러나고 높은 곳의 생명이 모여든다. 줄포만은 멸종위기종 말똥가리를 비롯한 조류와 저서생물, 염생식물 등 100종이 넘는 생명이 한데 어우러지는 곳이다.

새만금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갯벌과 습지는 한때 죽은 땅, 필요 없는 땅으로 평가절하됐고 그 죽은 땅을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쓸모 있는 땅으로 만들기 위한 사업이 간척사업이었다. 줄포에도 간척사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대규모 간척사업은 피해갔다.

습지의 가치와 중요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건 1990년 중반 이후다. 1997년 정부가 람사르협약에 가입하며 습지를 보는 시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습지는 죽은 땅이 아니라 생명이 시작하는 땅이며 생명으로 충만한 땅이라고.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기 시작했다.

줄포만 갯벌의 가치를 먼저 알아본 것도 주민들이었다. 보호지역 지정은 통상 주민들과 마찰을 빚어 지정이 무산되거나 그 과정이 오래 걸리는 것이 다반사이나 줄포만의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습지보호지역 지정을 추진했다. 그 덕에 줄포만 갯벌은 빠른 시간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2006년)됐고 2010년에는 람사르 습지에도 등록될 수 있었다.

생명이 넘실대는 줄포만을 바라보며 오늘의 숙소인 줄포만갯벌생태공원으로 향해 걸었다. 생명의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았다. 감사했고 다행이었다. 줄포만이 새만금이 되지 않아서. 줄포는 그대로 줄포로 남아 있어줘서.

줄포는 평화로웠다.

 

글 : 최승혁(녹색연합 자연생태팀)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연재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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