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案문명⑦-1] 호주 멜라니市의 ‘지역화폐’ 운동 : 돈 대신 물물교환 장벽 허문 현대판 품앗이

2003.02.21 | 미분류

<돈 대신 물물교환 장벽 허문 현대판 품앗이 >

화폐는 교환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점차 화폐는 교환보다 부(富)를 축적하는 도구, 나아가 부 그 자체가 됐다. 돈이 생활의 도구를 넘어 점점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권력이 되고 있다.

돈 대신 필요한 물품들이 서로 화폐로 통용되는 물물교환의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순 없을까. 1980년대 초 이같은 생각에서 물품.서비스.시간 등을 서로 필요한 만큼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지역화폐’운동이 등장, 선진 각국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호주 퀸즐랜드주(州) 멜라니시(市)는 인구 4천여명의 작은 마을. 이곳에 사는 앤 마거릿(87) 할머니는 날로 치솟는 물가를 정부의 복지수당만으론 감당하기 어려워 고민에 빠지곤 했었다.

그러던 중 할머니는 지역화폐 ‘레츠'(LETS.Local Exchage Trading System)운동 얘기를 들었다. 늙었어도 무슨 일이든 몸을 움직여 남을 도울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필요한 것을 살 수 있고, 필요한 서비스도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얘기에 당장 회원이 됐다.

할머니는 레츠 소식지에 ‘아이들을 돌볼 수 있어요”환자의 말벗이 될 수 있어요’라는 내용의 서비스 광고를 냈다. 그러자 회원 가정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하는 일은 그렇게 별로 힘들지 않은 봉사활동이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지역화폐 통장’엔 돈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할머니는 그 돈으로 회원 가게에서 빵과 우유를 사고, 무료로 전화기 수리 서비스를 받았다.

할머니는 가끔씩 지역화폐 운영소에 들러 계좌에 자신의 지역화폐 ‘달러’가 얼마나 남았는가를 체크한다. 할머니는 “레츠 회원이 된 이후로는 늘 부자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레츠는 현대판 품앗이, 또는 물물교환 운동이다. ‘타임 달러'(Time Dollar)라고도 불리는 이 운동은 80년대 초 캐나다에서 시작돼 미국.호주.유럽.아시아 등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3천여개의 지역사회가 새로운 사회실험을 하고 있다.

멜라니시는 89년 호주에서 처음으로 지역화폐를 도입, 대륙 3백여 곳으로 확산시킨 본산이다. 취재진이 마을 중심에 위치한 7평 남짓한 레츠 운영소를 찾은 날은 마침 한달에 한번 발행되는 지역화폐 소식지가 나오는 날이었다.

소식지에는 각종 어학이나 공부 지도, 요리, 집수리, 텃밭이나 정원 가꾸기 등의 기술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이 빼곡했다. ‘환자에게 책을 읽어드립니다’ ‘애완견 목욕시키는 데 자신있어요’ 등 서비스 품목들도 눈길을 끈다.

“지역화폐를 도입하고부터 주민들이 각자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려고 노력한답니다. 특히 노인이나 실업자.장애인들처럼 소외된 인력들이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지요. ”

등록소 운영위원 준 도일(45.여)은 지역화폐 제도의 장점으로 정신적 측면을 강조했다. 돈을 떠나서 자신이 하고픈 일을 제공하면 되기에 ‘자아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을로선 공동체 의식을 기르고, 나아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니 일석삼조(一石三鳥)가 아닐 수 없다.

멜라니 마을 사람의 10% 정도인 약 4백10명이 레츠 회원으로 등록해 있다고 한다. 소식지를 보고 관심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웃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거래한다. 매월 두번 열리는 마을 시장에서 물품을 거래하기도 한다.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도 적지 않다. 도일은 “가장 중대한 문제는 세금”이라고 말했다. ‘지역화폐 거래를 통해 얻은 이익에 대해서도 세금을 내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컴퓨터를 파는 대신 집 수리를 서비스로 받은 경우, 컴퓨터를 제공한 측에서 “사업상 판 것이 아니다”며 세금을 못 내겠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회원 상호간에 주고받는 재화와 서비스가 다양하지 못한 점, 회원수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 점, 과도한 마이너스 계좌나 플러스 계좌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점 등도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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