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간 녹색을 가꿔온 이들의 '추억은 방울방울'

2003.10.08 | 미분류

“지금 내 삶은 맹물 같아요. 아무런 맛도, 아무런 향도, 느낄 수 없는 맹물 같군요. 그러나 없으면 죽음으로까지 내몰 수 있는 것이 물인 것처럼, 지금 내 삶은 특별한 일 없이 무덤덤한 하루들의 연속이지만, 그 점 때문에 더 소중히 느껴지는 것 같네요”
햇볕에 얼굴을 너무 내밀어서 까맣게 돼버린 안영철님은 두꺼운 안경 사이로 빙그레 미소지으며 낮은 목소리를 전해온다.



경남 마산 옆에 ‘하남’이라는 시골에 귀농(歸農)해 살아가는 그는 넉넉한 마음을 지닌 듯 여유로워 보였다. 주위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매번 사고만 친다며 조용히 웃음짓는 모습 또한 평안해 보여 주위의 소란은 그를 비켜가는 듯 싶다.
1992년부터 5년 동안 녹색연합을 지켜온 그는 왕성한 활동력을 뽐내며 환경운동가로써 멋진 모습을 보여왔다. 오죽하면 ‘홈커밍데이행사’ 연락을 했을 때, 안영철님이 오지 않으면 자신도 안 오겠다는 이들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토록 열심이었던 활동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탄산음료처럼 자극적으로 느껴졌단다. 경제와 도시적 삶, 이해로 인해 만나는 인간관계는 자신을 자유롭지 못하게 묶어두는 끈처럼 여겨졌단다.
“충남 금산으로 갔어요. 도로확장공사로 인해 집이 헐리기 전까지의 2년 동안은 평안했습니다.”
태풍으로 인해 지붕이 날아가는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경남으로 발길을 돌려 현재까지 공평함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주위에서 많이 걱정하시죠. 하지만 지금의 삶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군요.”
곤히 자는 아이를 추스려 안으며, 아이의 머리를 따뜻이 감싸안는 상처투성이 그의 손길이 다정하게 다가왔다.
안영철님처럼 녹색연합을 떠나간 이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현재를 살고 있을까.
12살 나이를 먹은 녹색이 지금의 모습처럼 커나가기까지, 가꾸고 아껴온 이들을 홈커밍데이 (Home Coming Day)를 통해서 만날 수 있었다.



떠나간 이들과 현재를 채우는 이들의 만남, 이름하여 ‘추억은 방울방울’
홈커밍데이는 떠나간 이들은 아련한 예전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현재를 만나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은 예전의 발자취를 찾아가면서 미래를 꿈꾸는 시간으로, 모인 이들의 다양한 상상과 함께 웃음으로 가득 채워졌다.
녹색연합 활동가들의 특징을 꼽으라면, 안영철님처럼 귀농해서 자연 곁에 살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많았고, 서로의 가치관이 비슷하다보니 녹색에서 결혼을 한 이들이 대체로 많았다.

또 12년이 되는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이력과 활동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과연 녹색연합이구나 싶었다. 12살 연하의 배우자를 맞이하게 되어 싱글벙글 웃음이 끊이지 않는 허욱 전간사는 현재 장수로 귀농하여 새로운 터전을 일구느랴 바쁜 모습이였고, 호주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대학에서 환경관련 강의를 하고 있는 남상민 전간사도 활동가들과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이 얼굴에 역력했다. ‘작아’를 처음부터 기획했다는 박정은 전간사도 출판사의 기획부분을 맡고 있다며, 녹색이 나아갈 바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열정적으로 다가왔다.

대전에서 출발하여 서울 합정동, 운니동, 연지동, 성북동에 이르기까지 터전도 활동가도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변함없는 것은 녹색을 향한 그들의 마음, 녹색인들의 사랑인 듯 싶다.
행사를 기획한 김타균 정책실장은 “녹색연합이 이 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녹색을 사랑하고 이 곳을 스쳐지나간 활동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와 전통이 있기 때문에 그 점을 기리고 격려하기 위해 이와 같은 행사를 기획했다.”고 행사의 취지를 강조했다.
장원 전사무총장을 비롯한 60여명의 활동가들이 이 날 자리를 가득 메웠으며,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느랴 이곳저곳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아쉬움으로 후일을 기약하였다.

‘녹색의 바람으로 다시 태어나, 침묵의 대지 위를 휘몰아가세’ 라는 녹색의 노래처럼, 녹색과 함께 살고 지내면서 그들의 마음 깊숙이 이처럼 녹색이 물들어간다.

<글 : 대안사회국 이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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