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사는(buy) 대신 사는(live) 법

2022.11.15 | 미분류, 환경일반

친구가 겨울옷을 골라주던 나에게 옷을 하나 사준다고 했다. 갑자기 신이 난 나는 고마워하며 선물을 골랐다. 평소 중고 의류를 사입던 나에게 태그가 달린 옷은 참 오랜만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꼭 필요한 것이었나 생각할수록 점점 부끄러워졌다. 아차, 나는 두 손 무겁게 쇼핑하면 마음까지 무거워지는 사람이었지. 뒤늦게 기억해내고는 쇼핑백이 보이지 않게 둘둘 감아버렸다.

돈이 만능인 사회

귀하게 여겨져야 할 많은 것들이 툭툭 바닥에 떨어져 있다. 노동의 가치, 인간의 가치. 생명의 권리, 살아가는 모든 존재의 권리. 컨베이어 벨트와 수많은 억압, 보지 못하거나 보이지 않게 분리된 사회에서 울음이 터져나온다. 동물과 식물, 인간과 인간들 존엄한 존재들에 매겨진 숫자와 자본의 무게. 생명의 권리와 가치는 숫자가 매겨진다. 배후의 과정은 보이지 않고 제품화된 상태와 숫자가 놓여있다. 원하든 그렇지 않든 외주화 되고 분업화 된 사회에서 때로는 타자의 고통과 죽음, 불합리한 삶을 예속시킨다. 값어치 하는 인간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 제품의 가격이 가치를 내포하는 세상. 말 그대로 물질화되었다. 생명이 있는 것들도 다 물질화되었다. 돈이 아니면 안 되는 세상에 ‘소비주의’, ‘물질주의’ 이름을 붙여본다 한들 너무 멀리 와버렸다. 영혼이 빈곤해진다. 

돈에 관한 환상

“돈은 당신을 행복하게 하나요?” 잠시 생각해보면 맛있는 밥이나 따뜻한 옷과 같이 사치가 아니라 ‘필수품’이나 운동이나 독서 같은 소위 ‘건강한’ 취미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초기의 화폐는 조개껍질이나 작은 진주 같은 것이었다는데. 무언가 얻은 것에 보답하는 작은 선물이었다는데. 오늘날 물질과 나 사이에는 돈이 있다. 우리 모든 관계 너와 나 사이에는 돈이 있거나, 없다. ‘나눔’은 늘 허기진 상태고 ‘선물’ 조차 만능 해결사 돈이 꿰찼다.

현대에 돈만 있으면 소비행위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일상이 되어버린 소비의 유혹에 철썩 욕망이 붙고 돈을 불리고 싶다는 마음도 따라붙는다. 돈이 곧 풍요라는 환상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현실에서 눈 앞에 놓인 것은 돈이고 잊어버린 가치를 되찾자는 말은 아무래도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이다. 

우리 사이에는 돈이 있었다

그럼에도 희망과 변화를 말하고 싶다.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 블랙 프라이데이에 시장은 더욱 유난하다. 저마다 파격 할인을 내세우며 소비욕을 자극한다. ‘이것을 산다면 너는 행복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말한다. 1999년 11월 26일, 녹색연합은 쇼핑의 거리 명동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 피켓을 들었다. 해외에서 블랙프라이데이 문화에 반해 만든 ‘buy nothing day’ 캠페인이다. 우리는 가진 것으로 충분함을 느끼는 감각을 깨우자고 말한다. 소비가 아닌 것으로 소비욕 밑바닥의 사랑이나 교감, 평화나 안전 같은 핵심 가치를 다시 들여다 볼때 돈이 없어도 혹은 돈이 아닌 방식으로 욕구를 채울 수 있다. 

다가오는 블랙 프라이데이를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로 기억해보자. 아래는 나 자신을 위해 쓴 매뉴얼이다. 

사는 대신 사는 법

  • 현혹되어 충동구매 하지 않기. 정말 나에게 필요한 물건인가 먼저 질문한다.
  • 나의 욕구를 들여다본다. 눈 앞에 제품이 아니라 어떤 불만족을 소비로 달래고 싶어하는지 마음을 살펴본다. 
  • 이미 가진 것을 떠올려보고 가진 것으로 채울 수 있는 지 환기한다.
  • 모든 욕구에는 밑바닥 가치가 있다. 사랑이나 연결, 평화나 안전 같은 핵심 가치를 남겨본다. 
  • 주변 사람과 자연을 떠올려보고 소비를 통해서만 채울 수 있는 욕구인지 다시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제품의 수명과 나를 거쳐 가고 이를 최종 종착지를 떠올려본다.

우리를 자극하는 욕망 아래 진짜 핵심 욕구를 살피자. 나의 경우, 관계의 회복을 통한 ‘교감’을 원한다. 돈으로 가려지고 지워진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다. 한 강의에서 친구는 말했다. ‘지역에서는 돈보다 사람에 기대어 살아~’ 과밀인구가 사는 서울 한복판에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가기는 신용카드 만들기가 더 어렵다. 그래서 더 도시에 점처럼 존재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이어보고 싶어졌다. 돈이 아니라 선물이나 나눔을 사이에 두고서.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사이에는 돈이 있을 테지만 생명과 사랑을 우선하면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나가고 싶다.


글쓴이. 녹색연합 활동가 잘피(선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 글은 빅이슈 코리아에 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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