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에 관한 몇 가지 단상” 위기의 습지 ⑦

2008.11.07 | 미분류

위기의 습지 ⑦

습지에 관한 몇 가지 단상

제주 연산호 군락, 새만금, 시화호 형도습지, 임진강 두루미 서식지, 한강하구, 동해안 석호 등 앞서 기록한 습지들은 역사에서 사라질 목록들이다. 한국 사회의 습지는 ‘고립된’ 짜투리 습지만 홍보용으로 남게 되었다. 우포늪과 순천만이 그렇다. 전체 습지 시스템이 상호의존을 멈추고 ‘화석화된 습지 박물관’만 명맥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부분들의 조합을 새롭게 시작해야 된다. 이름 없는 습지를 발굴하고 생물종다양성을 복원해야 한다. 생명의 공존을 꿈꾸는 ‘지구호’의 운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습지 연재 글을 마무리하면서 습지보전의 단초가 될 몇 가지 고리를 제시해본다.

‘습지’의 범위는 어디까지?



습지는 ‘축축한 땅’이다. 그러나 이 말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한때 고흥만을 가득 채웠던 ‘잘피 군락’은 변변한 습지유형에 포함되지도 못한 채 육상으로 매립되었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앞바다의 연산호 군락과 동해안 석호는 환경부의 습지유형 포함되지 못하면서 방치, 훼손되었다. 습지보전법에 규정하는 습지의 정의와 유형은 람사르 협약과 다소 차이가 있다. 비록 1998년 제정된 습지보호법이 생물종의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한 최초의 법안이었지만, 조속히 습지보호법의 일부 조항을 개정해서라도 람사르 협약과의 차이를 줄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습지보전법과 람사르 협약의 습지 정의와 유형을 비교해보자. 습지보전법에 의하면 습지란 “담수·기수 또는 염수가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그 표면을 덮고 있는 지역으로서 내륙습지 및 연안습지”를 말한다. 람사르 협약에서의 습지는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영구적이든 임시적이든, 물이 정체되어 있든 흐르고 있든, 담수이든 기수이든 염수이든 관계없이 소택지, 습원, 이탄지 또는 물로 된 지역을 말하며 여기에서 간조시에 수심이 6m를 넘지 않는 해역”을 포함한다. 한국의 습지보전법은 람사르 협약의 습지유형에서 잘피․연산호 군락과 같은 간조선 아래 부분의 해양습지를 포함하지 않는다. 또 어류 양식장, 염전, 저수지, 논과 같은 인공습지도 ‘물새서식지’, ‘어류 산란․번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지만 빠져 있다. 그렇기에 국가의 중요습지 지정과 습지정책 수립 과정은 늘 람사르 협약에 배치하거나 협소하게 진행될 여지가 있다.

개발 포장용 환경평가 제도

지율스님 도롱뇽 소송과 천성산 무제치늪으로 유명한 경부고속철도 원효터널 구간의 환경영향평가서를 예로 들어보자. 경부고속철도 사업시행자인 당시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동아대학교와 유신코퍼레이션에 용역을 의뢰해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했다. 1994년 제출된 환경영향평가서는 사업 구간의 생물상에 관해 “법적으로 보호해야 할 야생동․식물 없음”이라고 명백히 기술한다. 이 환경영향평가서가 논란이 되자 대한지질공학회가 용역을 받아 2004년 ‘천성산 환경실태조사 보고서’를 다시 제출했지만 누락된 멸종위기종에 대한 논란은 여전했다. 사업시행자와 용역업체가 천성산 일대의 멸종위기종을 고의로 빠트린 혐의를 받은 것이다.

임진강 두루미 서식지인 군남 홍수조절지 사업의 경우, 한국수자원공사 사후환경성평가에는 사업대상지 주변에 서식하는 두루미 개체수가 단 3마리뿐이라고 보고했다. 올 초 녹색연합은 같은 장소에서 두루미 총 171마리를 관찰했다. 환경부는 시화호 형도습지 내 멸종위기종의 존재를 사전에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환경보전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사전환경성검토서를 통과시켰다. 올해 10월,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국무위원들은 환경영향평가법을 위반하면서 새만금 용도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모두 불법인 것이다.

사전환경성검토와 환경영향평가 등 환경평가 제도의 일차적인 문제는 사업시행자가 평가서를 작성하도록 법으로 규정한데서 시작한다. 사업시행자가 본인의 입 맛에 맞는 업체에 용역 의뢰할 것은 당연한 이치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 차원의 개발계획인 SOC 확충 사업에 대해 환경평가 제도는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이 허다하다. 사업시행자뿐 아니라 국가 또한 환경영향평가서를 부실로 작성하거나 조작했을 때 법적으로 제재를 가할 강력한 조항이 신설되어야 한다.

습지 훼손의 보상, 대체서식지

지난 8일 간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 주제로 경남 창원에서 개최된 ‘제10차 람사르 총회’가 막을 내렸다. 이번 총회는 예산, 협약의 법적지위를 포함해 물새 비행경로 보전을 위한 국제협력, 습지와 바이오연료, 기후변화와 습지, 논습지 등 총 32개의 결의문이 채택되었다. 이 중 가장 논란이 된 것은 논습지를 람사르 습지로 인정하느냐 여부였다. 즉 “습지를 논으로 변경할 때 지역의 생물 다양성 및 관련 생태계 서비스에 악영향이 있음을 우려하며 현재의 자연적인 습지를 인공습지로 전환”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람사르 총회 참가국들은 논습지가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라는데 인식을 함께 했지만, 결코 논습지가 기존 자연습지를 파괴해 대신하는 ‘대체서식지’는 아님을 분명히 했다.

지금 현재도 시화호 형도습지와 임진강 두루미 서식지에 관한 ‘대체서식지’ 논의가 진행 중이다. 람사르 총회에서 우려했던 것이 이미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김포지역은 택지개발을 위해 재두루미 먹이터인 홍도평을 훼손하고 대신 먹이주기를 통한 재두루미 대체서식지를 구상하기도 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대체서식지가 성공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대한민국은 ‘매립’공화국이다

올해 한국 정부는 조선시설용지, 항만시설용지, 도로 등 공공시설 등의 이유로 남해안 연안습지 15곳의 매립을 결정했다. 10,617,000㎡ 정도의 면적이다. 람사르 총회 유치 지자체인 경남도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지난 1996년 당시, ‘대통령자문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무분별한 연안매립과 하구개발을 막겠다는 요지의 ‘간척 모라토리움’을 선언했다. 새만금 사업 이후에도 무분별하게 추진되는 연안매립 계획을 원천적으로 재검토하고, 국가 차원의 대단위 하구 개발을 억제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시화호 매립, 새만금 간척사업 등 대규모 매립사업이 갯벌의 가치와 상충되며 지역의 해양문화를 말살시킨다는 문제의식이다.

습지가 생태 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큰 가치를 가진 자원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과 습지의 조화로운 공존’과 ‘습지의 현명한 이용’은 “경제적으로 무엇이 유리한가하는 관점 뿐만 아니라 윤리적, 심미적으로 무엇이 옳은가의 관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습지에 기댄 ‘생명공동체의 안정과 아름다움’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국가 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인간 우선에서 자연을 배려하는 윤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약간의 ‘생태’로 포장하고, 전통적인 습지의 ‘문화종다양성’을 거세한, 경제이익 만을 목표로 추진되는 정책은 바르지 않다.

생태은 연결망이다

‘살아 있는 모양새’란 말의 생태(生態)는 상호의존의 관계가 기본이다. 무지개의 빨강은 주황이 존재해야 비로소 인식되는 이치다. 서해안 조기떼의 생존은 갯벌의 산란지가 필수적이기에 이 둘은 서로 분리해서 사고할 수 없다. ‘생태학적 상상력’은 막연히 자연의 한 단면을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바다 속 말미잘을 보면서 흰동가리돔을 기억하는 것이다. 생태는 이른바 ‘시스템적 사고’에 바탕한다. 즉 부분에서 전체로 나아가는 역동적 전환이고, 분석으로 이해될 수 없는 종합적 사고다.

‘시스템적 사고’는 습지정책을 입안하는 데 기초가 되어야 한다. 낙동강 하구의 상부 모래톱인 을숙도의 일부분이 변형된다면, 필연적으로 하부 모래톱인 장자등과 도요등의 모양새가 달라지며 연속적으로 생태계의 변화를 동반한다. 한강하구 재두루미의 먹이터와 잠자리를 분리해 그 일부분만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한다면, 재두루미는 한강하구를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동해안 석호는 유입하천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제10차 람사르 총회’의 주제인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은 습지와 인간이 각각 독립적인 개체군이 아니라 “습지가 건강해야만, 인간이 건강할 수 있다”는 상호의존의 관계로 설명된다. 우리나라 습지보호 정책은 한 마디로 ‘개체의 고립’이라 말할 수 있다. 연관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파편화된 생태만 보호지역으로 지정하면 그 뿐이다는 것이다.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와 신두리 해역, 배후습지인 두웅습지를 별개의 보호지역으로 지정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적 사고’를 적용해 해안~모래갯벌~사구식물~1차 사구~배후습지를 하나로 묶고 전체를 보며 보호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앞서 습지보전에 관한 몇몇 단초를 예로 들었다. 하지만 습지보전의 보다 중요한 열쇠는 한국 정부가 지자체와 개발 사업의 요구에 맞서 ‘공공재’인 습지 보전의 주도권을 행사할 지 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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