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이 보호도 할 수 있다” 독일인의 국립공원 관리방법 ②

2008.12.15 | 미분류

“아는 사람이 보호도 할 수 있다”
[독일알프스 베르히테스가덴 국립공원]독일인의 국립공원 관리방법 ②



선착장 입구 안내판을 보면서 보겔 소장으로부터 국립공원 지역의 탐방로와 주의사항 등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들었다.

이 국립공원에는 230킬로미터의 탐방로가 있고 지난 해 150만 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공원면적(20,808ha)과 탐방로에 비해 탐방객수가 많아 보였다. 어떻게 이 많은 탐방객들을 수용하고 있는지, 탐방로 훼손 등의 문제가 없는지 질문이 오갔다.
보겔 소장은 탐방객들을 분산하는 적절한 방법으로 공원 관리와 탐방객 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탐방로는 접근성에 따라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일반탐방객들이 이용하는 가장 쉬운 수준, 중상위 수준과 산악 전문가들 수준의 탐방로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장 쉬운 수준의 탐방로는 1일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마을에 있는 숙소나 국립공원 내에 있는 6군데의 야영장을 이용하는데, 1년에 300만 명이 마을에서 숙박하고 35,000명 정도가 야영을 한다. 중상위 수준의 탐방이라 할 수 있는 야영장 이용이 낮은 이유는 4시간 정도의 험한 오르막길을 가야 야영지가 나오기 때문으로 대개는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마을에서 숙박하게 된다고 한다.
보겔 소장은 자신을 중매장이라고 기자들에게 소개한단다. 중상위 수준의 탐방로는 보통 3~4일 정도 걸리는데, 이곳을 찾아오는 30대 중반의 미혼 남녀들이 알프스를 등반하다가 연인이 되어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소에서 운영하는 환경교육 프로그램은 매우 다양한데, ‘아는 사람이 보호도 할 수 있다’는 목표로 방문하는 대상에 맞춰 짜여져 있었다. 여름에 주로 진행하는데 연령대별로 52개 그룹으로 나누고 있으며, 아이들 교육이 아주 활성화 되어 있었다. 아이들 교육을 하면 부모가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지난 10년 사이 관리사무소에서 운영한 탐방 안내와 교육 횟수는 크게 증가하였다. 여름 프로그램만 운영하던 1998년에는 겨울 탐방객이 매우 적었다. 이로 인해 지역의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2007년에는 겨울 탐방프로그램 이용자 수가 여름과 비슷해지는 등 겨울 방문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관리사무소의 겨울 탐방 프로그램 개발로 겨울에도 방문이 활발해 관리사무소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으며, 협력도 잘 되고 있다고 한다.  

탐방로 주변은 초원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다양한 계절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데 식물 이름표나 분류표 등의 안내판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훼손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국립공원 내에 안내판이나 여타의 시설물이 들어설수록 훼손이 더해진다는 것이 밝혀지면서다. 대신 사람이 직접 탐방객을 가이드 하는데 이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훼손도 덜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탐방로를 따라 걷는 동안 본 것은 선착장의 공원 안내판과 갈림길 표지판이 전부였다. 한국의 국립공원 지역뿐 아니라 유명 지역에 들어서 있는 각종 안내판들과 시설물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논쟁들이 떠올랐다.



베르히테스가덴 지역은 과거 소금 생산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때문에 나폴레옹 전쟁 당시 몇 차례나 지배자가 바뀔 정도로 유럽 여러 나라가 탐 내던 곳이었다. 소금을 만드는 데는 나무가 필요했고 많은 벌목이 행해졌다. 이로 인해 아고산 지역의 식생이 심각히 훼손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훼손된 지역에 꾸준히 독일가문비나무를 심어 자연천이를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쾨니히스제 호수로 흐르는 작은 실개천이 나타났다. 나무를 운반하던 물길이었다고 한다.
산자락으로 이어지는 좁은 탐방로로 접어들었다.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한쪽으로 비켜서야 할 만큼 좁다. 그러나 정해진 탐방로 외에 옆으로 길이 확장되거나 샛길이 나있지는 않고 뿌리가 드러난 나무도 드물다. 우리나라의 무수한 샛길과 허옇게 드러나고 닳아버린 나무의 뿌리들이 아른거린다.
한동안 걷다보니 좁은 탐방로 옆으로 쓰러진 나무들이 뒤엉켜있다. 왜 그대로 방치하는 걸까. 이 정도라면 탐방객들의 항의가 있거나, 탐방로 안전 등의 문제로 관리사무소에서 조치를 취했었을텐데…. 일행의 생각을 읽었는지, 보겔 소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쓰러진 나무를 치우면 새로 자라는 식물의 새순을 노루 등의 야생동물이 뜯어먹어 제대로 자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이 좀 더 자라 억세질 때까지 쓰러진 나무들이 보호막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었다.
탐방로가 호수 가까이 닿을 듯 내려갔다. 호수가에 드리워진 나무 그늘 사이를 오가며 유영하는 물고기떼가 시선을 끌어당긴다. 투명한 물은 물고기 뼈속까지 비춰줄 것만 같다.
물고기가 투명한 것인지, 물이 투명한 것인지 순간 헷갈린다. 맞은편 호수 위로 서 있는 것이 산이요, 물에 비친 것도 산이니, 그 경계를 구분 짓고 진실을 판가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모두가 내 마음의 경계, 다만 자연일 뿐이었다.

이러저러한 생각들이 깊어질 무렵, 드디어 소금창고가 있던 곳에 도착했다. 호수와 산 사이로 초원이 아름답고 부드럽게 펼쳐져 있다. 호수가의 얕은 물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물놀이를 하며 즐거워한다.
젤렌데라는 하나밖에 없는 작은 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베르히테스가덴 국립공원의 보호 관리에 관한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독일의 국립공원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입장료가 없고 세금으로 관리하고 있다. 다만 호수를 이동할 때 타고 온 배의 이용료가 있다.
배는 유한회사가 운영하며 수익은 주정부에서 관리하고 재정부 소속이라고 한다. 운영 수입은 1년에 400만 유로, 이곳 국립공원의 1년 관리예산과 같다.
배 운영에 따른 수익과 관련하여 정치권에서는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다는데 이유는 유한회사의 운영수익만으로 이곳 국립공원을 관리하자는 방안 때문이다. 그러나 국립공원은 공공의 공간이기 때문에 이익을 남기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으며, 자연의 보호는 사회 공동의 책임으로 수익차원에서 관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고 한다. 보겔 소장 역시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보겔 소장은 생물학과 지형학을 전공하였으며 지형학에서도 생태학 분야를 공부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직원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본인의 역할이라고 했다. 부족한 공원 관리 비용을 확충하는 것이 소장의 임무라고 강조했으며, 환경부와 유럽 차원의 프로젝트를 확보, 직원들이 예산 부족으로 힘들어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년에 1000유로의 포상제도와 예산 범위 내에서의 재교육을 지원하며, 과제 수행 완료시 본인의 자율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다. 보겔 소장은 국립공원 관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으며, 이에 대한 자부심과 자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는 길에 성 바르톨로메 수도원을 방문했다. 수도원에는 들르지 못하고 유명한 어부의 집에서 전통적인 방법을 이용한 송어 굽는 방법에 대해 들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독일의 지역 일기예보는 정말 정확했다. 비가 내리자, 송어를 굽는 좁은 부엌은 켜켜이 배있는 훈제 냄새가 더욱 진하게 풍겼다. 밖에서 주문하고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어서 그런지 어부는 설명을 하면서도 눈이 밖으로 향하였다.


이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 어부뿐이다. 호수 허용 어업권을 한 가구로 정한 것은 호수에서 잡을 수 있는 물고기 양이 한 가족이 수확할 수 있는 정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줄곧 여기서 어업활동을 해온 이들 가족에게만 어업권을 부여했다. 이 어업권은 상속권은 있되 타인에게 양도할 수는 없어, 대가 끊길 경우 어업권도 자연스레 소멸된다고 한다.
어부의 집 옆에 있는 카페에서 남은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카페 벽에 걸어놓은 여러 편의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액자마다 쾨니히스제 호수에서 어느 해에 잡혔던 큰 송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1792년에 잡았던 송어, 1809년에 잡았던 26킬로그램짜리 송어 등. 설명을 듣기 전까지 상상의 그림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커다란 물고기가 살았구나 싶은 게 당시의 상황이 그려진다.
다른 한쪽 벽에는 훨씬 큰 그림이 걸려있다. 산양을 꽉 움켜진 독수리를 그린 것인데 당시에 산양을 잡아먹던 독수리와 경쟁해야 했던 상황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그림을 보니 과거에는 독수리도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지금은 독수리는 물론 곰, 늑대, 삵 같은 상위포식자가 거의 사라지면서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건강한 놈만 살아남도록 조절해주던 기능이 없어졌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야생 곰이 이태리쪽 알프스에 나타나 사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곰이 나타나자 폴란드 등 인접국가 사격수들을 동원하여 발견하는 대로 사살하도록 했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 후 곰은 야외 수영장 근처 사람과 500미터 거리에서 수영하고 있는 야생 곰을 발견한 사냥꾼에 의해 사살되었다.
이를 두고 바이에른 주에서 심각한 반성이 있었다고 한다. 야생 곰 출현에 대한 대처 방안이 미흡하였다고 판단하고 야생 곰에 대한 주민들의 대처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한다.
멸종위기 종 복원에 열을 올리고 있는 우리와 달리 독일은 멸종위기 종을 외국에서 도입하여 복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연적으로 유입되는 경우는 보호하며 이것이 복원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고민한다고 했다.

비가 그쳤다. 그새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하던 이야기 마무리를 짓고 우리는 성 바르톨로메 수도원과 어부의 집을 떠났다.
선착장에 이야기를 가득 실은 배가 도착했다. 여러 이야기가 내리고 흩어진다. 호수 안에서 오랜 시간을 지낸 것처럼, 뒤돌아 본 호수는 금방 그리워진다. 마음을 채 놓고 나오지 못한 이방인을, 알프스의 눈물(氷河) 그윽한 쾨니히스제 호가 부드럽게 순화시켜 다시 세상으로 놓아준다. 품너른 바츠만이 그런 쾨니히스제 호를 감싸주며 그래 잘했다 한다. 이야기가 사라진 선착장은 순식간에 고요해지고, 선장은 저무는 해와 함께 집으로 향한다.

* (월간) 사람과 산 12월호에 기재된 내용입니다.
* 글 사진|박정운(녹색연합 녹색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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