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주의자들이 본 미국 대선

2000.11.15 | 미분류

환경주의자들이 본 미국 대선

선거를 치른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누가 차기 미국의 대통령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희한한 상황이 여기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선거이전보다 오히려 선거이후가 훨씬 더 많이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사실 지난 10월에 실시된 3번의 대통령후보자들의 공개토론회나 선거 켐페인 모두가 처음을 제외하곤 그다지 크게 미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두후보의 정책비교에 대한 관심보다 고어나 부시의 개인적인 특징들, 예를 들면 부시는 무식하다는 것, 고어는 잘난척한다는 것정도의 관심사가 대부분의 언론기사를 장식했었다. 그런데 두 후보의 표차이가 아주 미미하게 나타난 플로리다 주의 개표상황으로 말미암아 대통령선거과정 자체가 어떤 텔레비젼 프로그램보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는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플로리다주의 수작업 재개표과정을 이야기한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확한 재개표과정이 뒤따라야 한다고 하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미 치루어진 선거를 자꾸 재개표를 하게되면 다른 지역에서 재개표요구를 할 경우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공화당의 부시후보는 자신이 불리했던 몇몇주의 재개표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것인가? 이게 왜 다른 나라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일까? 바로 미국의 대외정책이 미치는 영향때문일 것이다. 가령 우리 한반도나 중동의 평화문제도 강경보수파인 공화당이 집권하느냐(의회와 대통령모두)보다 온건파인 민주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미국내 일각에서는 이제껏 클린턴 행정부의 대외정책노선을 새로운 행정부(예를 들어 부시가 된다면)가 전면 수정하기는 힘들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기도하다. 그러나 미국이 어떤 행정부를 가지게 되느냐에 따라 분명히 달라질 부분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환경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지구의 친구들”이라는 환경단체는 선거이전 알고어 부통령을 지원하는 성명서에서 “부시와 고어의 환경정책에는 그랜드 캐년만한 차이가 존재한다”라고 밝혔다. 이 단체와 미국내의 다른 단체들은 알 고어를 환경문제 해결의 의지가 있는 대통령 후보자로 지지한 반면 부시는 국가전체의 환경질을 악화시킬 후보자로 악평했었다.

미국 내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텍사스주의 주지사인 부시의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정도는 어떨까? 그가 실제로 “행정”을 펼치고 있는 텍사스 주를 살펴보면 우리는 대략의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텍사스는 미국 내에서 주립공원에 자금을 투자하는 순서로 거의 꼴찌인 49번째이다. 즉 숲을 포함한 공공토지에 대한 관리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1994년 연방정부가 텍사스 지역 내에서만 생존하는 몇몇 희귀동물에 대해 연방정부 멸종위기종 보호법을 적용시키려고 했을 때 부시 주지사는 아주 강력히 반대하며(텍사스는 전통적으로 연방정부의 간섭을 아주 싫어한다.) 텍사스주자체가 알아서 멸종위기종을 보호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연어를 보호하기위해 텍사스주 스네이크강하류에 댐건설을 중지해야 한다는 환경단체들의 요구를 일시에 묵살한 그이고 보면 멸종위기종보호에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기도하다. 한편 부시는 25백만달러상당의 자금을 받는 대신 메인과 버몬트주로부터 핵폐기물을 받아들일 텍사스지역 저준위방사능폐기물처리시설건설의 강력한 지지자이기도 했었다. 물론 나중에 취소하기는 했었지만.

한편 이번 선거과정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된 환경이슈중의 하나가 알라스카 보호지구의 매장된 석유채굴에 대한 것이었다. 세계적으로 기름값이 계속 치솟자 부시는 부족한 석유를 알라스카 생태보호지구에서 채굴해야 한다고 주장해(미국내에 엄청나게 비효율적으로 낭비되고 있는 에너지에대해 관심을 쏟은 것이아니라) 환경주의자들의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었다. 부시는 자신을 자유무역주의자라 주장하며 유럽연합의 유전자조작식품의 수입규제조치를 강력히 비난하기도 했었다. 그의 주장은 타당한 과학적 지식없이 유전자조작식품의 무역을 규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는 것이다. 환경주의자들은 그의 주장에 대해 과학적 안전성이 불확실한 것은 규제를 먼저하는 것이 생태계나 인간의 건강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재미있는 것은 요즈음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전자 조작식품에 대한 논쟁인데, 얼마 전에 가축의 사료용으로 쓰이는 유전자 조작된 콩이 페스트푸드회사인 타코벨의 식품에 사용되어 소비자가 알레르기반응을 일으켜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바 있다. 유전자 조작식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유전자조작식품의 유통을 확대하려하고 미국환경청이나 환경단체들은 그 유통자체를 막으려고 하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다시 대통령선거의 쟁점으로 돌아가서, 기후변화협약에 대해서도 불과 작년 5월까지만 해도 부시는 지구온난화란 과학적인 증거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라고 말했었다. 5월 이후에 과학자들의 자문을 받고나서야 지구온난화가 명확한 근거가 있으며 중요한 과제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선진국들이 1990년 수준으로 이산화탄소방출을 감소시켜야한다고 결의한 교토의정서를 반대한다.

한편 알 고어 부통령의 환경정책의 의지는 어느정도일까? 아마도 역대 미국 정치인들중 가장 대중적으로 친환경적인 인사로 평가받는 이가 고어일 것이다. 미국 내의 거의 모든 환경단체들이 지구온난화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을 때 그 자신이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그의 베스트셀러가 된 책 “균형잡힌 지구”에서 깊이 있게 하고 있다. 또한 그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97년 쿄토 의정서 채택을 주도한 인물중의 하나이다. 물론 고어가 환경문제에 관해 환경주의자들의 입장과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 예로 1992년 리우에서 인준된 생물다양성협약 비준에 실패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수많은 환경주의자들이 고어에게 상원의원 대표로서 협약지지를 지원할 것을 요청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이유는 생물다양성협약이 미국 회사들의 특허권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그 당시 부시(현 부시후보의 아버지)행정부는 그 협약에 서명하지 않았고 지금도 미국은 주요산업국가중 유일하게 가입안한 국가로 남아있다. 고어도 부시처럼 자유무역의 철저한 신봉주의자인데 그는 자유무역이 환경문제해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다. 한 예로 환경주의자들이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미국 멕시코 국경사이에 오염을 더욱 가중시킬것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클린턴 행정부의 환경문제에 대한 부대협약의 창설로 멕시코 정부는 오히려 환경기준을 강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 북미자유무역협정산하의 환경협약은 제 기능을 전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미국환경단체들은 멕시코와 미국국경의 환경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으며 자유무역으로 인한 무역강화정책으로 말미암아 멕시코내의 천연자원이 더 빠른 속도로 고갈되어 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사실 환경단체들이 지지를 보내고 싶은 쪽은 고어도 부시도 아닌 녹색당의 랠프 네이더였다. 그러나 그의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에서 환경단체들은 그래도 ‘녹색’의 색깔을 상대적으로 많이 띠고 있는 고어의 손을 들어주었다. 네이더는 이 번 선거에서 상당히 선전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다음 선거에서 민주당 공화당이 아닌 제3의 정당설립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랠프 네이더가 고어의 표를 빼앗아 고어의 당선가능성을 이렇게 불투명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네이더의 선전으로 부시가 당선이 되었다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만) 미국내 환경문제 뿐만 아니라 지구적 환경문제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지만, 이미 정치적인 입장에서 색깔만 약간 다를 뿐 전체적인 정책을 실시하는 모습이 비슷한 민주당, 공화당 두 당 중심의 정치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대안, 즉 좀 더 지속가능한 지구, 좀 더 평등한 국가간의 관계, 환경권, 노동권, 인권 등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새로운 국제경제질서의 창출 등을 위해 노력하는 당을 미국이 갖는 다는 것은 미국으로 봐서도 전세계로 봐서도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된다. 한편 이번 미국대통령선거는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대표를 뽑는 방식이 미디어에 의한 방식이라는 것, 두 후보의 정책을 비교해서 어떤 정책이 나은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식의 발언을 했다더라 누가 실수를 했다더라는 등의 개인적인 성향에 좀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는 것(그래서 오히려 약간 어리숙하게 보인 부시가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등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우리의 선택이 아닌 “미국인”들의 선택이 이 국가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권력으로 인해 전세계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선거기간 내내 생각하니 소름이 끼치곤 했었다.

글 이태화 ltaehwa@hanimail.com녹색연합 국제연대 활동가 (현재 미국 워싱턴 대학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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