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우리는 생명을 겁니다

2001.04.13 | 미분류

글 / 남호근 eagleowls@greenkorea.org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부장)
사진 / 새만금간척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

장승들 사이로 손을 맞잡은 듯이 연결되어 있는 연등과 바람에 흩날리는 만장. 굵은 반야심경의 음파가 하늘과 바다가 맞붙은 곳까지 퍼져 가는 듯하다. 저 멀리 해안선을 단절하며 곧게 뻗은 하얀 방조제만 보이지 않는다면 오늘 이곳은 생명의 오묘함과 종교의 숭고함으로 바다와 하늘이 가득하였을 것을.

새만금 해창 갯벌에 종교인들과 운동가들, 지역주민들이 함께 했다. 이곳에 성당과 불당이 마련되어 오늘 그 문을 여는 행사를 하게 된 것이다. 이름은 이곳의 지명을 따 ‘해창사(海倉寺)’와 ‘해창 기도의 집’으로 명명했다. 부처님과 마리아님을 이곳에 같이 모시게 된 것이다. 생명을 살리고 지역주민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서 서로 다른 종교의 수행자들과 신도들이 함께 했다.

환경운동은 그간 환경운동단체의 전유물처럼 인식되어왔다. 하지만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운동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지난해 종교단체가 결합했다. 종교단체는 조계사에서의 33일 농성기간동안 환경운동 단체들과 함께 했다. 종교단체 2000인 생명선언에서 종교와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4대 종교의 공동미사가 치뤄진 후 불교의 스님들과 천주교의 신부, 수녀님, 기독교의 목사님, 원불교의 교무님들은 새만금을 살리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라면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모두 하나가 되었다. 모든 종교의 교리와 상통하는 생명이 새만금에서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의 이러한 참여는 올초에 탄생한 ‘새만금갯벌생명평화연대’의 주춧돌이 되었다. 환경운동단체와 지역주민, 종교인 그리고 전문가와 예술인, 교사,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하는 생명평화연대는 생명운동이라는 큰 틀에서 각각의 이해와 사상을 뛰어넘어 하나가 된 것이다.

3월에 정부의 강행방침을 저지하기 위해 진행했던 13일 간의 서울농성과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지역농성에서 차가운 천막에서 새우잠을 자며 함께 해왔던 그 시간 동안 굳건하게 단식을 하며 농성장을 지켜오고 광화문 정부 종합청사에서 1인 시위를 펼쳤다. 또 농성장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생명에 대한 존중과 새만금 사업의 허구성을 설득하는 전도사의 역할도 그이들의 몫이었다. 농성하는 이들에게 간식과 반찬을 챙겨주시던 수녀님들의 따뜻한 사랑도 잊을 수 없다. 누군가 얘기하듯이 그분들은 농성장에서, 항의 집회장에서, 자전거 타기 행사장에서, 범국민대회장에서, 새만금 반대운동이 일고 있는 곳 어디에서도 소금처럼 그렇게 자리잡고 있었다.

이제 다시 따져보아야 한다. 정부부처 사이에도 그 의견이 심각하게 엇갈리고 있는 지금, 그간 사업 강행 측에서 그렇게 주장해오던 강행 논리는 과연 정당한가? 그들은 우리나라 식량자급율이 30%밖에 되지 않는다며 식량안보를 위해서 새만금 사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그 많은 곡물 종류 중 유일하게 국내에서 100% 이상 생산되는 것이 바로 쌀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생성되는 농토(28,300ha)와 맞먹는 규모가 매년 개발로 인해 사라지고 있는 데는 앞장서서 용도변경을 해주던 그들이 농지보호에 의지가 있다고 누가 믿겠는가.

또 하나 명분이 바로 물부족에 대한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물부족국가군에 들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새만금 사업을 통해 18,000ha의 호소를 마련한다고 자랑하듯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호소의 물을 농업용수(4급수) 수질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 환경부에서는 어떠한 개선정책을 펴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톤당 3천원의 예산이 든다. 이것은 먹는 물을 생산하기 위해 팔당상수원에 투자하는 비용의 3배에 달한다. 그런데도 강행론자들은 새만금 사업은 경제성이 있다고 말한다.

결국 이제 강행론자들에게 새만금 사업에 대한 논리는 단지 하나 정치적 논리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미 예산이 많이 투자되었고 10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상황 논리,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것일뿐 직접적인 것은 아니다. 사실 정치가들은 개발에서 소외되어 왔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전북도민의 민심을 이용해 권력을 쥐게 되었다. 실제로 전부도지사인 유종근은 아직도 새만금 간척지에 산업단지 조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 새만금 사업이 중단되면 이들의 정치적 생명은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된다. 또 집권당도 내년의 대선에 대한 부담감이 클 것이다. 결국 새만금 문제는 정치적 문제로 귀결된다.

새만금 해창 갯벌에 절과 기도의 집이 세워지던 날 지역주민 5분이 삭발을 하셨다. 어느 인터넷 신문에 유종근 지사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새만금 사업을 강행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삭발을 하신 주민 한 분이 말했다. ‘우리는 생명을 걸고 있고, 갯벌도 생명을 걸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자신은 고작 정치 생명이라니요. 이런 오만방자함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걸 것이 없습니다. 재산도 없고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이렇게 삭발이나마 우리의 의지를 보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민 5명이 삭발을 진행하는 동안 신부님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노래를 하셨다. 수녀님들이, 신도들이, 주민들이 모두 눈시울을 적셨다. 그 사이에도 그들의 머리는 모래사장으로 한웅큼씩 떨어져 내렸다. 그들이 그렇게 걸고자 하는 정치적 생명,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치인가, 의문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행사의 마지막으로 모두가 함께 밀물로 차오른 해창의 바다를 보며 구호를 외쳤다.

‘갯벌은 생명이다’ ‘갯벌파괴 혈세낭비 새만금 사업중단하라’

소리는 바다 위를 달려 하늘까지 이르렀을 것이다. 이날 각각의 모습의 사람들이 모인 이 자리는 하나의 염원으로 귀결되었다. 종교와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생명으로 하나되는 이 자리는 ‘일치의 자리’였다. 종교와 종교가, 자연과 인간이 모두 하나로 되는 자리였다. 이 ‘일치의 자리’에서 인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고서 파괴와 왜곡만을 그 대가로 받아온 갯벌과 바다와 산과 들에게 용서를 청했다. 또 이 ‘일치의 자리’에서 온갖 생명들의 숨결과 그것들이 우리 인간에게 말하는 바를 더욱 깊이 알아들으려 했다. 그리고 어민들의 한숨과 고통을 더욱 깊이 느끼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절절한 심정으로 소망하였다.【사이버 녹색연합】

새만금 농성, 그 아름다운 13일

3월 31일, ‘새만금갯벌 생명평화연대’에서 진행했던 서울 농성장 해단식이 있었다. 환경운동가, 스님, 수녀님들이 참석했던 이날의 해단식은 새만금 싸움의 종지부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4월 15일로 연기된 정부발표를 앞두고 서울은 투쟁방식을 바꿔야 될 필요성이 있었고 어떤 방식으로 새만금 사업을 중단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19일의 발족식 이후 13일 만이었다.

그 13일간의 일정은 참으로 눈코뜰새가 없었다. 매일 릴레이 단식농성이 이어졌고 릴레이 시위가 있었다. 21일에는 농림부 장관에게 공유수면 매립면허 취소 신청을 했고, 바로 이어 민주당사에 항의집회를 가졌다. 경찰들에 의해 50여 미터를 힘으로 밀려났다. 이 과정에서 문규현 신부님은 정강이를 경찰이 걷어 채이고 무수한 피켓이 부서져 나갔다. 물의 날인 22일에는 명동성당에서 퍼포먼스를 열었고 이날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기자회견을 가지고 새만금 사업에 대한 반대입장을 발표했다.

일요일인 25일에는 새만금 갯벌살리기 자전거 행진이 종묘공원에서 있었다. 100여대의 자전거가 새만금 간척반대를 휘날리며 종로거리를 달렸다. 그리고 28일에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새만금 간척중단촉구 범국민집회가 400여명의 참가자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그리고 이들은 거리행진으로 새만금 사업의 중단을 촉구하며 탑골공원까지 행진을 했다.

이러한 일정 중간중간에는 각계의 반대성명이 줄을 이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사회의 기자회견과 전국대학교수 340인 선언 기자회견, 성직자들의 현장체험 및 현장미사 등이 날마다 열렸다. 또 지역농성장에서는 4인의 릴레이시위와 현장체험 및 미사 등이 각 종교 단체와 시민단체, 지역단체의 참가속에서 이어졌다. 지난 4월 8일에는 해창갯벌에 해창사와 기도의 집이 문을 열었고 이날 지역주민 5명이 삭발식을 가졌다.

이런 열기에 힘입어 새만금 사업에 대한 강행 발표를 3월 31일에 하려했던 정부는 부랴부랴 4월로 연기하기에 이르렀다. 4월 발표계획도 2∼3개월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들판을 덮는 푸른빛처럼 새만금 반대의 기운이 이 땅을 뒤덮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작은것이 아름답다」5월호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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