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언어생활] 등산과 입산

2023.03.06 | 미분류

종종 자연에 듭니다. 저는 주로 산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등산’이 아닌 ‘입산’을 합니다. ‘등산을 한다’,‘입산을 한다’는 말은 어느 하나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담고 있는 의미의 차이가 있습니다.

등산은 ‘오를 등登’ 자를 씁니다. 산을 오르는 것에 또 다른 의미는 ‘정복’에 있습니다. 산을 정복한다, 자연을 정복한다. 묘한 불편함이 느껴집니다. 산, 그 자체로 거대한 자연을 정복한다는 것에 사실 저는 불편함 이상의 감정이 듭니다. 인간이 자연을 정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놀랄 수 밖에 없는 아주 작은 인간입니다. 제게 산을 오르는 것은 그토록 작은 인간이 대자연을 찾는 일입니다.

반면, 입산은 어떨까요?‘들 입入’자를 씁니다. 즉, 산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산에 든다는 것은 거대한 자연에 든다는 것. 자연의 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제게 입산의 의미는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닌 자연에 들어 잠시 머무는 것입니다.

어떤 용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 작은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제안하고 싶습니다. 나는 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가? 자연을 받아들이고자 하는가? 나는 산을 오르고 싶은가? 느끼고 싶은가?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들께서도 산에 든다는 것에 의미를 한 번 더 되새겨보시면 좋겠습니다.

신이 주신 선물 중 하나가 망각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망각하지 못한다면 부끄러움 때문에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이불킥’하고 싶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으니 말이죠. 반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분을 망각하게 되는 역기능 또한 존재합니다. 그 중 하나가 자연과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거대한 자연에 일부입니다. 우리의 인간중심적 사고는 이를 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 자연에, 이 우주에 아주 작은 한 부분이라는 것을 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자연에 머물며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보다 혼자가는 것을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지인과 동반할 때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간단한 먹거리를 나누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자연에 들어서야 온몸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람 소리, 물소리, 새소리,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자연을 온전히 감각합니다. 이렇게 홀로 자연과 대화할 때면 대지의 어머니는 제게 수많은 가르침을 선사합니다. 그 가르침을 오롯이 느낄 때면 무언가 모를 따뜻함을 안고 산을 떠나옵니다.

그리하여 저는 오늘도 입산합니다. 그렇게 자연에 듭니다.

글. 이정열(녹색연합 자연생태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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