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백두대간] ② 이제 그저 아름답게만 볼 수 없네요

2015.09.14 | 백두대간

백두대간 환경대탐사, 700km를 걷다.

60일동안 꼬박 걷습니다.

도상거리 701km.
강원도 고성 향로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약 6,000장의 야장을 쓰며, 백두대간 마룻금 훼손실태 조사를 합니다.

녹색연합은 12년 전 걸었던 그 길을 똑같이 걷고,
다시 한번 우리 모두의 백두대간을 마주하고, 백두대간의 아름다움과 아픔을 전하고자 합니다.

[6일차] 2015년 9월 7일 (월) 맑음

구간: 단목령~북암령~조침령
거리: 12.7km
걸음수: 17,295걸음

다시, 숲 속으로
어제는 비가 와서 조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숙소에서 휴식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오늘 다시 출발. 단목령에서 조침령 구간 조사를 진행했다. 인제군 진동리에서 단목령까지 올라가는 비법정탐방로가 있었다. 단목령까지 20~30분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계곡 길을 따라 올라 가는 단목령까지의 길은 아름다웠다. 적당한 노폭, 시원한 날씨 덕에 편하게 단목령까지 갈 수 있었다. 단목령에는 단목령지킴이 초소가 있었다. 아마 불법탐방객들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초소인 듯 했다. 단목령에서 북암령으로 출발했다. 단목령~북암령 구간은 길이 완만하고 걷기 좋았다. 주로 활엽수들이 있어 숲이 울창했다. 활엽수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숲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등산로를 따라 조릿대가 쭉 자라고 있었다. 활엽수림과 초본층이 잘 어우러진 숲은 참 좋은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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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등산로.
그 주위로 초본과 나무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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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안개가 끼었다. 오묘한 기분을 주는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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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라 꽃잎의 주인공.

 

양양 양수발전댐, 백두대간과 가장 가까운 댐
북암령~조침령 가는 길. 하루 종일 안개가 껴있다. 안개 속에서 ‘저수지 내 출입금지’ 안내판을 발견하였다. ‘백두대간 마룻금을 걷고 있는데 저수지라니?’ 라는 의문을 가졌지만, 곧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백두대간과 가장 가까운 댐, 양양 양수발전댐(상부) 출입통제 안내판이었던 것이다. 양양 양수발전댐은 물이 떨어지는 낙차를 크게 하기 위해 가장 높은 곳 까지 상부댐을 끌어 올렸다. 양양 양수발전댐과 백두대간마룻금 사이 표고차가 불과 30m 밖에 안 되는 곳도 있다. 댐이 바로 백두대간 마룻금의 턱 밑까지 올라온 것이다.
북암령에서부터는 젖은 풀들로 인해 등산복 바지가 젖어 걷는게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오전 내내 산을 덮어 우리를 괴롭히던 안개가 걷히고 날씨가 맑아졌다. 동해바다가 조망이 가능한 곳에서 맞은 편 산을 보니, 구름이 하늘로 올라가 층을 이룬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산 위에 거대한 솜사탕이 떠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양수발전댐(하부)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조침령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구간이 그렇게 험하지는 않아,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모두 저번보다는 체력적으로 발전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는 길에 양수발전댐(상부)에 들어가봤다. 저수지 바로 위로 우리가 걸어온 백두대간 마룻금이 보였다. 상부댐 자리에 있었을 나무, 바위, 야생동물들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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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출입금지 안내판. 무슨 저수지인가 싶었지만, 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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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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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때문에 젖어 있는 시원한 숲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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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하늘로 올라가 큰 층을 이뤘다. 멀리 동해바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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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였지만, 땅은 맑고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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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양양 양수발전소 하부댐의 모습이 보인다.

 

[7일차] 2015년 9월 8일 (화) 맑음

구간: 단목령~점봉산~한계령
거리: 15.1km
걸음수: 24,148걸음

역시 점봉산!
어제와 똑같이 단목령에서 출발했다. 원래는 한계령에서 점봉산을 거쳐 단목령으로 도착하는 방향으로 조사하려고 했지만, 숙소에서 한계령까지의 거리가 꽤 멀어서 단목령~한계령 방향으로 조사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단목령에 도착해 점봉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평하고 완만한 길이었다. 또한 어제와 비슷한 울창한 숲이 우리를 즐겁게 했다.
점봉산에 가까워질 수록 바람이 세지고, 경사가 급해졌다. 갑자기 급해진 경사에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점봉산을 올라가는 마지막 구간은 훼손이 심했다. 언제 설치했는지 모를 나무계단은 관리가 되지 않아 망가져 있었고, 여기저기 침식된 흔적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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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햇살이 좋다. 울창한 숲이 더 푸르게 보인다.

드디어 점봉산에 올랐다. 하늘도 우리가 고생한 것을 알아주는 걸까? 날씨가 너무 맑았다. 너무도 맑은 날씨 덕분에 점봉산 주위 산들을 다 조망할 수 있었다. 점봉산은 설악산국립공원 중 남설악의 중심이 되는 산으로, 북동쪽에 대청봉이 있고, 북서쪽에 가리봉, 남서쪽에 가칠봉 등이 솟아 있다. 점봉산 일대에 펼쳐진 원시림은 전나무가 울창하고 바람꽃, 얼레지, 한계령풀 등갖가지 야생화를 비롯해 다양한 산나물이 자생하여 ‘천상의 화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특히 한반도 자생식물의 남북방한계선이 맞닿는 곳으로, 우리나라 자생종의 20%에 해당하는 854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어 보전가치가 매우 뛰어난 곳이다. 점봉산에서 바라본 설악산은 아름다웠다. 뚜렷하게 보이는 대청봉과 중청봉, 그리고 끝청. 저 멀리 귀때기청봉까지. 훼손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 산의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내가 바라보며 감탄하는 이 곳이 바로 오색-끝청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고 있는 곳이다. 만약 케이블카를 놓이게 되면 다시는 이 풍경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그저 설악산에 빨랫줄 하나 치는게 대수냐고 하지만, 그저 빨랫줄 하나가 아니다. 케이블카는 설악산 전체의 아름다움을 망가뜨리는 빨랫줄인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점봉산에 올라 설악산을 바라봤다면, 그저 빨랫줄 하나가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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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봉산에서 뒤를 바라봤다. 우리가 걸어온 백두대간 능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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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봉산에서 바라본 설악산. 대청봉, 중청봉, 끝청. 너무도 아름다운 설악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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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케이블카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 다른건 몰라도, 위와 같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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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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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점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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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법정탐방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늘 조사한 단목령~점봉산~한계령 구간은 비법정탐방로이다. 하지만 비법정탐방로임에도 등산객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오전에는 점봉산 올라가는 길에 혼자 등산을 하고 있던 분을 만났고, 오후에는 한계령에서 점봉산으로 올라오던 7-8명의 불법 등산객을 마주쳤다. 단체로 오신분들은 불법 등산을 하면서도 참 당당했다.

“비법정탐방로인거 아시죠?”

“그래서 뭐요?”

“들어오시면 안되는 곳이라구요. 만약 국립공원관리공단직원이 봤으면 과태료 부과됩니다”

“아 예. 아니 근데, 이게 참 문제가 많아. 왜 못가게 하는거야. 백두대간 열어야 해.”

모두 개방하면 나아질까? 아름다운게 유지될 수 있을까? 비법정탐방로에 대한 인식이 낮은 듯 하다. 인터넷에서 비법정탐방로 구간을 찾아보면 비법정탐방로를 다녀온 것을 마치 자랑처럼 글과 사진을 올려놓기도 한다. 그리고 비법정탐방로를 어떻게 통과해야 하는지 자세히 써놓기도 한다.비법정탐방로를 걷다 적발되도 과태료로 끝나는 현실. 산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통제하는 것 일텐데, 잘 지켜지지는 않는다. 어찌해야 좋을까? 고민이 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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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점봉산~한계령 능선. 저 멀리서 불법등산객들이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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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비친다. 점봉산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Good, Bye. 설악산
점봉산 정상에서 내려와 망대암산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어제부터 점심 식단이 조금 바뀌었다. 그동안 주로 참치와 밥, 고추장을 비벼먹던 우리였다. 하지만 이제 야채를 싸와서 보다 건강하고, 다양하게 먹었다. 전에 먹었던 음식들보다 훨씬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망대암산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다. 하지만 끝난게 아니었다. 망대암산~한계령으로 가는 구간은 바위들이 많았다. 비법정탐방로여서 로프나 계단 등 시설도 없었기에 걷는 속도가 매우 느려졌다.
험한 바위구간을 넘어 필레약수길로 내려왔다. 원래 백두대간 구간은 한계령부터 쭉 이어지는데 마룻금이 도로로 인해 단절되어 있었다. 그래도 백두대간 마룻금 확인이 필요했다. 한계령쪽 사면을 기어 올라갔다. 올라가서 확인한 결과 희미한 등산로를 찾을 수 있었지만 사람이 안다닌지 꽤 된 듯 했다. 약간의 쉼터로 보이는 곳에는 오래된 과자 봉지들만 널려있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듯 했다. 아마 백두대간 종주하는 사람들은 필레약수길부터 바로 올라가는게 아닐까 싶다.
한계령휴게소로 가는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길이 없는 곳을 내려오다보니 위험하고 힘들었다. 겨우 내려와 한계령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에는 우리를 마중 나온 지원팀이 있었다. 참 반가웠다. 반가운 모습 뒤에 노을진 한계령휴게소가 보였다. 이렇게 길고 힘들었던 설악산 구간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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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먹는 건강식. 수분이 많은 야채를 먹으면 갈증도 해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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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휴게소와 도로가 보인다. 중간 중간 솟은 멋진 바위들이 여기가 설악산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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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있는 한계령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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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차] 2015년 9월 9일 (수) 맑음 -> 바람이 많이 붐

구간: 구룡령~약수산~응복산~만월봉~신배령~두로봉
거리: 16.7km
걸음수: 27,433걸음

아침부터 분주한 세상
오늘은 구룡령부터 출발해 오대산국립공원으로 넘어가는 날이다. 조침령~구룡령 구간은 백두대간 2차 훈련때 조사를 한 구간이라 건너 뛰고 바로 구룡령부터 시작했다. (조침령~구룡령 구간 이야기는 나중에 추가/게시하겠습니다.)
구룡령은 홍천군 내면에서 양양군 서면으로 넘어가는 해발 1,000m의 고개이다. 백두대간의 응복산(1,360m)와 갈전곡봉(1,204m) 사이에 걸려있다. 한때 우리나라 오지의 대명사로 불렸던 ‘삼둔 사가리(달둔, 월둔, 살둔, 아침가리, 적가리, 명지가리, 연가리)’가 골짜기마다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높은 골짜기에 아침부터 분주한 사람들이 있었다. 조사를 준비하는 우리와 장사를 준비하는 상인들. 서로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각자 해야할 일에 집중했다. 구룡령에는 산림전시홍보관, 기상관측대 등 다양한 시설들이 있었다. 모두 다 빠짐없이 기록한 뒤 약수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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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각자의 일을 위해 분주한 세상이다.

 

해와 구름의 날씨 싸움
약수산 정상에 도착했다. 오는 길은 로프, 돌계단, 나무계단 등 시설물이 굉장히 많았다. 아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구간이라 시설물을 많이 만들어 놓은 것 같다. 가는 내내 날씨가 이상했다. 하늘은 굉장히 맑았지만 바람은 심하게 불었다. 가만히 1분만 서있어도 추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나마 바람이 덜 부는 곳을 찾아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두대간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마주했다. 왼쪽은 구름이 잔뜩 껴있고, 오른쪽은 너무도 맑았다. 구름이 시야를 잠시 가렸다가 금새 해가 구름을 또 몰아냈다. 마치 날씨 싸움을 하는 듯 했다. 백두대간 마룻금을 사이에 두고 펼치는 구름과 해의 자리 싸움! 흥미진진했다. 약 1시간이 지난후 날씨 싸움의 승자는 정해졌다. 구름이 산 전체를 뒤덮었다. 바람은 더 세게 불었고, 온도는 더 떨어진 듯 했다. 비가 또 내릴까봐 우리는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오대산국립공원 경계 지역인 신배령에 도착했다. 오대산은 강릉시와 홍천군, 평창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주봉은 비로봉(1,536m)이며 백두대간 능선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는 동대산(1,434m)이다. 백두대간 능선에 있는 두로봉(1,422m)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비로봉과 호령봉(1,531m)으로 뻗어가는 산줄기가 계방산으로 이어지는데, 이 산줄기가 양평 용문산까지 이어지며 남한강 수계와 북한강 수계를 가른다. 우리가 지금 걷는 백두대간 능선인 신배령~두로봉은 출입금지 구간이다. 날씨가 꽤나 추웠기 때문에 신배령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두로봉을 넘어가는 구간은 경사가 매우 심해서 힘들었고, 등산로 훼손도 심각했다. 그리고 축축한 날씨,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리를 더 힘들게 했다.
두로봉 정상에 도착했다. 두로봉 정상은 안개가 자욱했다. 구름과 안개가 가득해지면서 어둡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꿈만 같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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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이겼다. 숲 전체가 안개로 뒤덮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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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기록한다. 연보라 꽃잎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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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을 보전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신배령~두로봉 출입금지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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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로봉 정상.

 

[9일차] 2015년 9월 10일 (목) 맑음

구간: 두로봉~신선목이~차돌백이~동대산~진고개
거리: 10.1km
걸음수: 16,179걸음

오대산 나무정령을 만나다
아침에 일어나니 쌀쌀했다. 일교차가 심해졌음을 느꼈다. 어제 조사를 마친 두로령부터 다시 시작했다. 두로령~두로봉 구간은 어제와 다른 느낌이었다. 어제는 좀 늦은 시간에 부랴부랴 내려와서 주위를 둘러볼 수 없었다. 오늘은 좀 여유를 두고 주위를 둘러봤다. 햇살이 비치는 숲은 참 아름다웠고, 신비감을 주었다. 두로봉으로 가는 길에 세명이 안아야 겨우 안을 수 있는 신갈나무를 찾았다. 엄청나게 큰 신갈나무. 숲이 오래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두로봉에 올라 동대산 방향으로 조사를 해나갔다. 조사를 하는데 이정표가 굉장히 많게 느껴졌다. 이정표가 많으면 등산객들에게는 좋을 것이다. 길을 잃을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등산객들은 평균적으로 200~250m마다 안내판이 있어야 안심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짧은 경험 상, 국립공원 구간은 다른 구간에 이정표가 비교적 잘 설치되어 있었다.
오대산에서 나무정령을 만났다.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엔트 같았다. 오래된 숲에는 나무정령이 살지 않을까? 만약 나무정령이 있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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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로령에서 다시 한번 외친다. 안전! 안전!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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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려오면서는 못 본 두로봉~두로령 구간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어제와 달리 따뜻한 햇살이 숲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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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은 달라 붙어야 다 안아볼 수 있는 크기의 신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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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나무정령.

 

아름답지만, 이제 그저 아름답게만 볼 수 없네요
두로봉에서 신선목이 근처에서 조난자용 임시시설을 발견했다. 산에서 조난을 당했을 때 1명 정도 들어가 머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시설인 듯 했다. 안에는 침낭과 구급상자가 비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침낭은 젖어 있었고, 구급상자의 약들은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필요한 물품들은 다 떨어져 안타까웠다.
신선목이를 지나 차돌백이에 도착했다. 오는 내내 왜 차돌백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궁금했다. 도착하니 왜 그렇게 이름을 붙였는지 알 것 같았다. 거대한 차돌이 떡 하니 서있었다. 그리고 차돌바위에서 나온 작은 차돌들이 등산로를 덮었다. 다른 곳에 바위들과 다르게 여기만 흰 차돌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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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난자용 시설. 문은 떨어져 있고, 침낭은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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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돌백이. 흰 차돌이 정말 예뻤다.

부지런히 걸어 동대산에 도착했다. 동대산에서는 오래 있지 못했다. 날개미들이 달려들어 괴롭혔기 때문이다. 후다닥 동대산을 빠져나와 진고개로 내려왔다. 동대산~진고개 구간은 2008~2027년까지 통제된 구간이다. 하지만 등산객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등산로 폭도 넓었다. 그리고 나무 계단, 로프, 돌계단 등 시설물도 많았다. 장기적으로 생태복원을 위해 통제한 구간이라면 이런 시설물을 일단 철거하는게 맞지 않을까?
진고개로 내려오니 오른편에 바로 배추밭이 있었다. 가까이서 처음 본 배추밭은 왠지 모르게 아름다웠다. 백두대간의 모습과 겹쳐지니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백두대간 고랭지 채소밭의 산사태, 농약 등 여러 문제점 듣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아름답지만, 이제 그저 아름답게만 볼 수 없었다. 진고개휴게소에서 우리를 마중 나온 지원팀을 만났다. 숙소로 돌아가면서 다시 한번 배추밭을 쳐다봤다. 이제는 배추밭이 걱정스러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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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고개에서 마주한 배추밭. 이제는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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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고개휴게소와 배추밭.

 

 

[10일차] 2015년 9월 11일 (금) 맑음 -> 흐림

구간: 진고개~노인봉~소황병산~매봉
거리: 16.5km
걸음수: 18,623걸음

이제 힘들어서 노인이 될 것 같다
월정사에서 일어나 아침 공양을 하고 출발 지점인 진고개로 향했다. ‘진고개’는 백두대간의 고개 가운데 고개가 길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참고로 ‘늘티’, ‘늘재’는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이 고개가 길게 늘어졌다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진고개는 앞으로 가려는 우리의 발을 자꾸만 잡았다. 진고개 위에 펼쳐진 고위평탄면과 산 중턱에 펼쳐진 구름의 아름다움에 우리는 자꾸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진고개~노인봉으로 가는 구간은 정비가 잘되어 있었다. 돌계단이 차곡차곡 잘 쌓여 있었다. 관리에 공을 들이는 구간인 듯 싶었다.
올라가는 길에 야생동물 이동로를 발견했다. 나무데크 등으로 단절되어 있는 구간 중 일부를 야생동물들이 다닐 수 있도록 해놓은 길인데, 흔적들을 보니 사람들도 들어가는 듯 했다. 야생동물을 위한 작은 배려와 시도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수 많은 계단들을 올라 겨우 능선에 닿았다. 아직도 노인봉까지는 거리가 남았다. 가는 도중 멧돼지 식흔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등산로 인근까지 멧돼지들이 파헤쳐놓은 흔적들이 있었다. 그저께 구룡령~두로봉 구간에서 멧돼지를 마주했었던 것이 생각났다. 먼 발치에서 후다닥 도망가는 멧돼지를 바라본 것이 전부였지만, 강렬한 인상이 남았었다. 산에서 마주하기 힘든 야생동물들. 그들의 흔적이라도 볼 수 있어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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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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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고개에서 마주한 구름과 고위평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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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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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쌓인 돌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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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 이동로. 사람도 다니는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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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식흔. 주위 땅이 모두 파헤쳐져 있다.

 

노인봉에 도착했다. 노인봉(1,338m)은 심마니의 꿈에 노인이 나타나 산삼 있는 곳을 일러 주었다는 설화에서 그 이름이 비롯됐다고 한다. 우리는 노인봉까지 올라가는게 힘들어서 사람이 노인이 된다는 의미로 재미있게 해석해보았다.노인봉에서는 매봉, 황병산, 오대산 자락 등이 조망이 가능했다. 노인봉에 앉아 간식을 간단히 먹고 다시 출발했다. 노인봉에서 북동쪽으로 가면 오대산 소금강 자락으로 갈 수 있다. 우리는 남동쪽 소황병산 방향으로 가야 했기에 왔던 길을 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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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봉. 오를 때 노인이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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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봉에서 바라본 북쪽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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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풍경을 접하다
노인봉에서조금 내려오니 노인봉대피소를 발견했다. 노인봉대피소는 사람이 상주하지 않는 무인대피소인데 현재 공사 중이었다. 오전에 우리와 함께 올라온 듯 한 사람들도 보였다. 매일 작업하려 노인봉까지 올라야 한다니… 일하기 전에 지치실 것 같다.
소황병산 방향으로 걸어가니 CCTV가 있었다. 노인봉~매봉 구간이 비법정탐방로라는 음성 방송이 계속 나왔다. 사람의 움직임이 포착되면 방송이 나오는 듯 했다. 우리는 비법정탐방로라고 알리는 음성 방송을 뒤로하고 소황병산으로 향했다.
소황병산 근처에 오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너른 초지. 울창하고 푸른 숲만 봐서 그런걸까? 시야가 확 트이는 초지를 보니 왠지 다른 나라에 온 듯한 느낌이 났다. 초지에 모여 앉아 점심을 먹었다. 매번 작은 공터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밥을 먹었었는데, 오늘은 확 트인 공간에서 밥을 먹으니 이전과는 다른 밥맛이 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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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인 노인봉대피소. 이달 말 완공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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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봉~매봉 구간이 비법정탐방로임을 알리는 방송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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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풍경. 소황병산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었다.

 

초지, 젖소, 풍력발전기… 오묘한 조합
신기한 경험을 뒤로하고 오늘의 목적지인 매봉으로 향했다. 등산로를 따라 가다 바위 위에 있는 담비 배설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등산로 옆이었다. 비법정탐방로에는 야생동물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 삵과 담비의 배설물 등. 일반 등산로에서는 찾기가 힘든데, 유독 비법정탐방로에서는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등산로를 따라 30여분을 걸었을까. 등산로가 끝나고 또 다시 초지가 나왔다. 이번엔 저 멀리 바람에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도 보였다. 우리는 등산로를 따라 걸었다. 초지와 숲을 사이에 두고 등산로가 나있었다. 특별히 눈에 띄었던 것은 국유림대부지경계안내판, 철조망 등이었다. 대관령 삼양목장 부지는 국유림을 대부해서 운영하는 곳이다. 아마 삼양목장 부지임을 알리고, 사람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경계를 표시해 둔 것 같았다.
초원 길을 따라 매봉으로 걸어갔다. 저 멀리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그림 아래로 방목된 젖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오묘한 느낌을 주었다.
매봉에서 지원팀을 만나 차량으로 숙소까지 이동했다. 이제 백두대간 환경대탐사를 시작한지 10일이 넘었다. 앞으로 남은 50일을 생각하면 까마득했지만, 되돌아보면 시간이 참 빨리 간 듯 했다.
내일 하루는 쉰다. 내려오는 길, 문득 백두대간 환경대탐사가 잘 마무리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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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배설물을 발견했다. 비법정탐방로에서는 야생동물 흔적이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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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를 나오니 더 넓은 초지가 나온다. 매봉으로 가는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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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삼양목장은 국유림을 대부하여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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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황병산과 소황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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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소를 방목해서 키우는 듯 하다. 저 멀리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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