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품속으로

2004.06.29 | 백두대간

6월 22일부터 25일까지 1차 백두대간 형제봉~조령 마루금 훼손 실태 조사와 마을실태 조사가 있었습니다.

궁갱이


조사의 시작점인 경북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로 가기 위해 점촌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차를 기다렸습니다. 무심코 옆에서 차를 기다리시는 할머님을 보았는데 할머님의 귀에 쑥과 같은 풀이 걸려 있었습니다. 저는 혹시 할머님이 밭일을 하다 실수로 풀이 귀에 걸린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까 5일장이 선다는 점촌 근처의 나물파는 할머니의 귀에도 똑같은 풀이 걸려있었습니다. 궁금해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뭐라 말씀을 하시는데 무슨 풀인지 전혀 모를 노릇이었습니다. 몇 번이나 되물어 어렵싸리 그 발음을 활자화시키자면 ‘궁갱이’였습니다. 향이 매우 고혹적이고 강렬했습니다. 그것을 왜 달고 계시냐고 물어보니 5월 초닷새에는 냄새가 좋은 궁갱이를 귀에 걸고 다니시는 것이 풍습이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날은 단오였습니다.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니 표준어로는 ‘궁궁이’라고 하고 5월 단오날에는 처녀들이 약쑥, 궁궁이, 쟁피 등을 푹 삶아서 머리를 감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머리결이 고와진다고 합니다. 칠흑같은 머리칼은 옛날에 미인의 조건의 하나였기에 머리카락을 가꾸는 것이 처녀들에게는 중요한 미용의 하나였으며 처녀와 아녀자들은 궁갱이를 머리에 꽂고 동래어구에 그네를 뛰고 논다고 합니다.

근처의 젊은 여자분 중에 궁갱이를 귀에 걸고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직 반백이 되신 할머님 몇 분만 소시적에 궁갱이를 달고 그네를 타던 때를 추억하며 계신 듯 했습니다. 궁갱이 향만큼이나 아찔한 그 시절을 추억하고 계시는 할머님의 표정은 마냥 순수해 보여서 저도 모르게 소리없는 웃음이 났습니다.

생달리 이장님


차갓재로 오르기 전날 생달리 마을회관을 협조받아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출발 전 통화했을 때와는 달리 마을 이장님은 건장하고 서글서글하신 30대이셨습니다. 백두대간에 안겨 있는 마을이 어떠한 모습인지 알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을 드렸는데 조곤조곤 말씀을 잘해 주셨습니다. 마을에는 ‘산다리’라는 다리가 있었답니다. 아무리 사람이 떨어져 빠져도 죽지 않고 살아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했습니다. 믿기지 않는 말이었지만 그 산다리 덕택에 마을 이름은 ‘생달’(生達)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을은 7~8년 전부터 오미자를 주종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습니다. 생달리로 들어오는 버스 안에서 본 덩굴식물의 정체가 오미자였습니다. 점촌과 가은은 과거 석탄광산으로 호황을 누리던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점촌읍은 점촌시로 분리 승격이 되었답니다. 그러나 강원도 석탄지역처럼 폐광이 된후 경기가 죽어서 다시 점촌시는 문경시로 통합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동서울버스 터미널에서는 문경시로 가는 버스가 점촌행으로 표기된 까닭이 이것인 듯 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말씀을 나누었는데 인상 깊은 점은 마을에 더 이상 구멍가게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들 차가 있어 읍이나 시의 마트로 장을 보러 가기 때문에 더 이상 구멍가게가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별 일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이 구멍가게와 똑같은 운명을 생달리 그리고 산간마을의 초등학교가 겪고 있습니다. 마을에는 더 이상 아이가 없고(초등학생은 한명도 없다고 했습니다.) 점점 인근의 마을의 상황도 비슷해져 마을 주변의 초등학교는 모두 사라지고 아이들은 멀리 읍이나 시로 학교를 다녀야 한답니다. 이같은 사정은 중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을 수 없는 환경 속의 백두대간의 마을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부인에 의한 조성된 마을이 아니라 조상대대로 뿌리를 박고, 그 마을다운 무언가를 품고 사는 주민이 있는 마을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백두대간 마루금 위에서
마루금 조사는 마루금을 따라 걸으면서 등산로의 넓이와 깊이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이번 조사구간은 몇 군데 나지화로 인한 산사태가 일어난 곳을 제외하고는 평균 50cm 정도의 양호한 등산로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백두대간 마루금. 백두대간의 정점을 걷는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트이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찬찬히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걷다보니 실제 등산로는 마루금의 가장 높은 능선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간에 바위가 있거나 울울한 나무 숲이 있으면 살짝 비껴가기도 했습니다. 마루금은 자로 잰든 수치상으로 존재하는 선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마루금 등산로 나무에 흉측스레 걸려있는 수많은 등산회의 알록달록한 표식기처럼 마루금이란 개념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개념이었습니다.

실제 그곳은 시원스레 길이 뚫려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수풀에 보일락 말락한 몇 십 센치의 소로였을 따름입니다. 마루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밟고 있는,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산 두덩이의 흐름들 그 흐름들이 진정 마루금이고 그 장쾌한 흐름들의 모임이 바로 백두대간이라는 생각.

글 : 백두대간팀 자원활동 손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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