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 환경탐사 3번째마디- ‘겸손하기’를 배우는 시간

2004.08.31 | 백두대간

녹색친구들과 녹색연합은 2004년 6월~2005년 6월 「한북정맥 환경대탐사」를 진행합니다. 산줄기와 물줄기를 조사하면서 우리 땅 산줄기인 백두대간을 좀 더 잘 살펴보고 깊이 있게 이해하고 생각하기 위해서입니다. 8월 28일부터 29일까지 3차 한북정맥 마루금 훼손 실태 조사와 꼬리치레도롱뇽 서식 실태 조사 그리고 환경 실태 조사가 있었습니다.

한북정맥 환경탐사 3번째마디- ‘겸손하기’를 배우는 시간



모든 일에는 만남이 필요하다. 이성적이 아닌 감성적인 만남… 내가 산과 자연에 대한 감성적인 만남을 한 것은 지금부터 꼭 1년 전인 청년생태학교를 통해서다. 인간의 관점에서 세상과 자연을 바라보던 내가 자연과 인간의 연대 내지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말이 아닌 실질적인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까? 그 이후로 정말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데도 이산 저산을 폭식하듯 다닌 것 같다. 너무 좋아서…멈출 수가 없어서…
그러던 중 백두대간이라는 우리나라의 맥의 흐름을 따라 걷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그 한 지류인 한북정맥을 타게 된 것은 그러한 이유이다.

이번째로 한북정맥 환경조사는 3번째다. 3번의 한북정맥 탐사를 이어오면서 편리와 환경보존에 어떤 선택이 옳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도로를 포장하는 현장을 보면서 문제점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차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지나면서 도로가 포장되기를 바라는 솔직한 마음을 어떻게 설명할까?



발전이냐? 보존이냐는 끝나지 않는 원론적인 문제를 언제까지 할 것인가?라는…나 스스로는 도시에 살고 모든 편리를 보장받으면서 우리의 고향에는 자연을 지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아이러니… 때문에 설명이나 이성적 설득을 통해서 이 환경보존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너무 먼 이야기인 듯하다.

내가 우포를 가게 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우포에서 나고 자라신 분이 우포에 대한 애정으로 우포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시는 것을 봤었다. 그건 이성이 아니라 자신의 실질적 경험에서 나온 우포에 대한 애정이었다. 내가 자란 이 우포를 지켜내겠다는 절실한 마지막 마지노선…법을 정하고 지키도록 하는 것은 참 빠르고 쉽다. 하지만 지속적이지 못하며 한계가 있다. 내가 지켜야할 이 자연을 전인격적으로 만나는 실질적 경험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리라.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시간이 많이 걸리고 혹 좋은 결과를 내지는 못할지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녹색친구들에서 환경탐사를 함께 하면서 점점 더 깊이 느끼게 되는 것 또한 이것이다. 그런 감동이나 만남을 위해 또 탐사를 계속할 것이고…



  

이번 탐사는 지난번 탐사 때 갑자기 내린 비로 뜻하지 않게 탐사를 도중에 중단할 수밖에 없었기에 능선 조사팀을 2개조로 나누어 2번째 탐사에서 누락된 부분을 조사하게 되었다. 광덕산에서 도마치봉까지…태풍이 올 거라는 일기예보에 적잖이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도 날씨는 우리의 산행을 도와주기라도 하듯 맑고 화창했다. 높은 가을 하늘과 부는 바람에 두 팔을 벌려 할 수 있다면 날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또한 며느리밥풀꽃, 닭의장풀, 금강초롱, 배초향 등의 야생화들 또한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다만 인간의 손이 닿아서 놓인 군사도로와 참호들, 군사시설들, 산을 관통해 흐름을 끊고 생긴 도로와 유원지들, 관광객들이 남긴 흔적이 가슴 아팠다. 나 또한 그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기에…그래서 용서를 구하듯 그 땅을 걷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정표도 알림판도 없는 산의 능선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내는 산의 선배들을 보면서 너무나 부러워하곤 했는데 이번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갈림길에서의 잠깐의 선택이었는데 되돌아가야하는 경험들도 산행의 이벤트처럼 반복되었다. 그러면서 내 오감이 얼마나 퇴화되었는지 또 한번 느끼게 된다. 많은 징표들이 있었는데 나중에야 그것들이 엮어져온다. ‘아! 맞아’ 실수를 하면서도 또 잊는다. 자연에서 벗어나 편리를 추구한 댓가이리라…다행히도 그러기에 겸손하게 된다. 부족한 내 모습을 알게 되고…

또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두려움이나 공포감 또한 또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극한 상황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그래서 부족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려져서 살아내는 것 같다. 서로의 약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듬어 내면서…

이번 탐사에서는 ‘겸손하기’를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하면 좋을듯하다. 자연의 섭리나 이치 안에서 그리고 그 광대함 앞에서 나는 너무나 미미한 존재였다.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잠잠히 그 섭리를 따르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자연을 보존하는 하나의 코드가 되지 않을까?

글 : 녹색친구들 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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