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지역 차이

2006.04.05 | 백두대간

▲ 심재봉화백  

서울생활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언제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지하철을 타면서 무감각해진 자신을 발견할 때나, 인공분수 청계천에 많은 인파가 몰려있는 장면을 볼 때 아연실색하곤 한다. 물론 도시에 사는 장점도 있다. 헤어진 애인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도 많은 인파 속에 섞여 모르는 척 지나칠 수 있으며, 술 마시고 간혹 미친 척 해도 아무도 뉘 집 자식인지 묻지 않는다.

이런 몇 가지 장점 때문일까. 오늘도 서울은 더욱 거대하고 비대해져, 마치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블랙홀 같다. 한반도 전체에 손길을 뻗어 인구와 자원을 끌어들이니, 지역은 젊음과 영양분을 빼앗긴 쭈글쭈글한 노파의 얼굴이 되어버렸다.

필수재이자 사회의 원동력인 에너지정책을 수립할 때도 정부는 서울 중심이다.

우선 대기환경보전법에 의해, 환경부장관이 고시하는 지역과 시설에 대해 연료사용을 제한할 수 있으며, 특히 오염물질이 거의 배출되지 않는 기체연료 이외의 연료에 대해서는 사용금지를 명할 수 있다. 따라서 서울 인근에는 석유나 석탄, 원자력 등 1차 에너지를 직접 사용하는 시설이 들어설 수 없다. 여기서 1차 에너지란 오랜 세월동안 자연이 형성한 천연상태로, 전환과정(전기처럼 형태를 바꾼 에너지)을 거치지 않은 에너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석유 소비가 많은 산업공정도, 연탄생산을 위한 석탄 공장도, 전력생산을 위한 원자력발전소도 모두 지역에 위치해있다. 전체 에너지의 75%는 도시민을 위해 사용하면서, 에너지 생산과 가공, 폐기물처리와 환경오염은 모두 지역민의 몫인 것이다.

또한 자립도가 6.2%에 지나지 않는 서울시의 전력공급을 위해 무수히 많은 송전탑과 변전소가 백두대간을 어지럽히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전원개발특례법’이라는 악법을 휘두르며 땅을 몰수하고 님비로 매도한다. 오염 발생자 및 수혜자 책임원칙은 원칙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한편 정부는 대기환경개선과 시민편의를 이유로 지하철이나 고속철도 등 전력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수송수단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해당 지역의 대기오염 감소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전력생산을 증가해야 하므로 지역형평성 문제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서울생활이 더욱 쾌적해질수록, 지역생활은 더욱 피폐해진다.

에너지운동은 민주주의 운동이다.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가난하고, 지역에 살고, 소수자에 대해 불평등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는 한 국가내의 불평등 구조뿐만 아니라,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에너지를 과다하게 사용하고 환경오염을 유발시킨 것은 선진국이나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개발도상국에게 부과되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공급위주의 시스템과 거대발전소를 바꾸는 에너지전환은 형평성을 회복하는 민주주의 운동인 것이다.

일전에 강원도 삼척에서 있었던 산업자원부 설명회에 간 적이 있다. 산자부 자원정책실장이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에 대해 한참 역설하던 참이었다. 한 주민이 온배수와 송전탑 때문에 너무 괴롭다고 하소연하자, 산자부 자원정책실장은 ‘발전소 사고 시, 1차 방사능 피해가 서울까지 오면 안 되기 때문에 발전소를 지역에 지을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서울에 많은 시민이 거주하는 것은 사실이고 당연히 이들은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 전체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해야하는 정부관계자가 서울 시민과 지역 주민간의 생명의 가치를 다르게 판단하고 있다는 점에 참으로 씁쓸해졌다. 서울에 산다면, 오늘 하루쯤은 내가 받는 혜택에 대해 감사해보는 것은 어떨까.

위 글은  시민의 신문 에서  ‘에너지’를 주제로, 기획연재 되고 있는  ‘이버들의 에너지, 에코 리듬 타다’  칼럼 입니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