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뼈아픈 숙제

2018.02.09 | 가리왕산

세상의 빛과 그늘을 알아야, 인간은 더욱 인간다워진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고 했다. 군중의 환호와 폭죽의 화려함에 빠져서는 정의로운 세상을 볼 수 없다. 평창 올림픽 개막이 목전이다. 전 세계가 스포츠를 통한 인류 평화, 공존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과거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2014년 가을, 상상할 수 없는 ‘고목 학살사건’이 벌어진다. 강원도 정선과 평창의 경계에 위치한 가리왕산. 평창 올림픽 스키 활강경기가 예고된 곳. 수령 150년을 훌쩍 넘긴 신갈나무, 음나무, 전나무가 차례차례 잘렸고 그 수가 무려 10만그루를 넘었다. 500년 ‘왕실의 숲’은 슬로프의 모양대로 가리왕산 정상에서 수직으로 밀렸다.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이라는 올림픽 정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가리왕산 벌목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스키연맹(FIS)의 묵인 아래, 강원도와 한국 정부가 내린 결정이었다.

2011년, 평창이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호명되었다. 올림픽 유치 삼수 만에 이룬 쾌거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그 시각, 평창의 경쟁도시 독일 뮌헨 주민들도 올림픽 유치 실패를 축하하며 축배를 들었다. 이른바 ‘반올림픽연합(Nolympia)’의 승리다. 뮌헨처럼 스위스 생모리츠-다보스, 폴란드 크라쿠프, 오스트리아 빈이 IOC 주도의 동계, 하계올림픽을 주민 투표로 거부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은 의회가 나서 올림픽 유치를 반대했다. 이유는 이러하다. 산더미처럼 쌓일 부채, IOC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 지역발전 허상, 부동산 가격 폭등, 자연환경 파괴에 반대한다는 것.

‘새로운 세상(A New World)’이 열릴 것이라 했던 2016 브라질 리우 올림픽은 어떨까. 개회식이 열렸던 마라카나 스타디움은 현재 폐쇄되었다. 유리는 깨지고 전기는 끊겼다. 벽과 천장의 전기선은 사라졌다. 경기장 좌석의 10%는 도둑맞았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올림픽’ ‘최후의 패자는 자연환경’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은 경기장 활용을 못해 ‘1조7600억엔의 빚과 훼손된 자연’만 남겼다. 한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02 한·일 월드컵 경기를 치렀던 지방 경기장은 적자에 허덕인다. 전남 영암의 2013 포뮬러1 코리아 그랑프리 경기장,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린 ‘무대책’ 아시아드주경기장도 사후 활용 방안이 궁색하다.

‘포스트 평창’의 모습은 어떨까. 브라질 리우의 폐허가 너무도 가까이 있다. 흉물스러운 불 꺼진 경기장을 마주한다. 강원도는 경제 부흥이 아니라 빚더미에 앉는다. 가리왕산은 동계올림픽 특구 논란 속에 개발 광풍이 분다. 올림픽플라자를 포함해 7개 신설 경기장의 사후 활용 방안은 없다. 난개발, 반환경, 실패한 올림픽으로 치닫고 있다.

환경적 측면에서, 평창 올림픽이 남긴 숙제가 있다면 바로 ‘가리왕산 복원’이다. 작년 12월, 강원도 복원추진단도 ‘전면 복원’을 결정했다. 단 며칠 활강경기를 위해 국가 보호구역을 해제하고 나무를 베고 경기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10만그루 나무를 다시 복원하라니, 아이러니다. 우리는 메멘토 모리, 정의와 평화의 관점으로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가리왕산을 위한 사죄의 진혼을 올려야 한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가리왕산 복원은 뼈아픈 숙제다.

*본 글은 녹색연합 윤상훈 사무처장이 2018년 2월 4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2042058005&code=990100#csidx50c85ba6c2b536f841237d631a10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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