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토건주의에서 생명가치로 대전환을 촉구하는 지리산 생명평화 선언 ‘위기의 지리산이 대한민국에게 묻는다’

2012.09.19 | 4대강

‘위기의 지리산이 대한민국에게 묻는다’

토건주의에서 생명가치로 대전환을 촉구하는 지리산 생명평화 선언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생명평화입니다

인간 중심의 개발은 자연을 파괴하고 마침내 범지구적 위기를 불러왔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지구생태계는 혼돈상태에 접어들었고, 지구상의 생명체 가운데 40%가 멸종위기에 처하였으며,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도래하고 말았습니다. 부메랑처럼 돌아온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는 세계 곳곳에 걷잡을 수 없는 자연재해를 일으키며 준엄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삶의 양식과 가치관으로는 더 이상 인류사회가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연과 인간, 사회적 강자와 약자가 서로 상생하는 생명평화의 길로 문명의 대전환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댐과 케이블카 건설을 즉각 백지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과 달리 오히려 토건국가로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녹색성장’이라는 가면을 쓴 채 민족의 젖줄인 4대강을 무참히 도륙한 것도 모자라, 마침내 국립공원 제1호이자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까지 넘보고 있습니다. ‘낙동강은 맑게, 지리산은 푸르게’ 보존해야 한다는 국민운동을 수용하여 지리산댐 건설계획을 백지화하였으나, 국토해양부와 함양군은 밀실야합과 편법을 통하여 ‘남강댐 물의 부산 공급’의 일환으로 50층 높이의 지리산댐을 다시 건설하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산의 물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숲과 그에 깃들여 사는 수많은 생명을 수장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지만, 다른 저의 또한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001년에 ‘수질오염 총량제’, ‘낙동강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낙동강의 수질을 개선하고 하수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부산 물 해결의 근본적인 대안으로 추진되었으며, 이는 우리나라 하천 및 수자원 정책이 질적으로 전환되는 중대한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리산 댐을 재추진하는 것은 4대강 사업이 실패한 것을 자인하는 것이며, 우리나라 하천 및 수자원 정책의 근간을 뿌리째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리산댐이 건설되면, 지리산의 자락에 터를 잡고 살던 수많은 동식물이 죽을 것이며, 마을 공동체가 파괴되고, 삼한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유물과 여러 종교의 성지들이 기억의 현장으로부터 분리될 것입니다. 게다가 케이블카까지 설치되면 파괴는 더욱 가속화할 것입니다. 6월 26일의 시범지역 선정회의에서 케이블카 시범사업이 부결되었지만, 지리산권 4곳의 지자체는 언제라도 다시 재심을 요청하여 케이블카를 설치할 태세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케이블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자연공원법을 개악한 것은 지리산을 비롯한 전국토를 한낱 ‘돈벌이용 철탑공원’으로 전락시키겠다는 퇴행적 조처이다. 이제 국립공원제도 도입의 취지를 되살려 자연공원법을 재개정하여야 합니다.

  지리산은 그대로 생명평화의 공동체입니다

지리산은 백두대간 1,400km의 끝이자 시작입니다. 민족의 정기가 오롯이 모이고 또 생성되는 곳으로서 절망한 이들이 찾아와 생명의 기운을 얻고,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이들이 창조와 희망의 샘물을 퍼올리는 성지였습니다. 우리 민족의 기억이 켜켜이 지층을 이룬 역사의 보고이자 생물종다양성의 보고로서 온 생명을 고루 품어주는 모성의 산, 생명의 산입니다. 지금 지리산에는 그 뜻을 올곧게 이어 지리산공동체, 마을공동체를 회복하려는 실천들이 골짜기마다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리산은 우리가 오기 전에도 그대로 있었듯이 우리가 떠난 뒤에도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리산에 내재된 정신적 가치와 자연생태적 가치를 수호하고 계승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의 정신과 꿈을 담은 문화유산과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리산을 모태로 샘솟고 있는 대안적 가치와 지속가능한 삶의 양식을 지지하고 수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지리산은 여전히 희망의 산이요, 생명평화의 성지입니다. 이미 지난 2001년 화해와 상생을 위한 ‘지리산 위령제’를 올린 바 있습니다. 좌우대립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동시에 난개발로 인한 동식물 등 유정무정의 희생자들을 함께 아우르며 참회의 위령제를 올렸습니다. 지리산의 푸른 눈빛으로, 빨치산 아들과 토벌대 아들을 둔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모든 문제를 풀어나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우리는 그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자리가 바로 자연과 인간이, 인간과 인간이, 지역과 지역이, 너와 내가 더불어 살아갈 생명평화의 사상이며, 올바른 민주주의가 자라는 토양이라는 것을 되새깁니다. 지리산이 아프면 우리 모두가 아프고 결국 대한민국도 병들게 됩니다. 위기의 지리산을 살리는 일은 나라와 온 국토를 살리는 동시에 위기에 처한 우리 자신들을 살리는 일입니다. ‘어머니의 산’ 지리산을 중심으로 생명평화를 지향하는 대안의 사회, 대안의 세계를 열어나가는데 앞장 설 것을 다짐하며,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 우리는 정부가 지리산 케이블카와 댐 건설계획을 전면 백지화할 때까지 투쟁한다.
■ 정부가 4대강을 올바로 살릴 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 토건주의 틀을 넘어 지리산 생명평화공동체 실현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요청한다.
■ 대선후보와 정당들이 지리산 댐과 케이블카 계획을 비롯한 환경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한다.

2012년 9월 19일

지리산공동행동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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