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대학과 4대강 축제

2011.06.28 | 4대강

며칠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갑작스런 설문 메일이 왔다. 학교 명칭을 ‘한국개발연구원 서울 G20 개발대학원’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교명 변경에 담긴 의도가 너무 적나라해 헛웃음이 났다. 딱 드는 생각이, 이러다 ‘4대강 대학’도 만들겠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누리꾼들도 ‘88올림픽 대학’, ‘월드컵 대학’, ‘자유무역협정(FTA) 대학’ 등 패러디를 쏟아내고 있다.

학교 이름을 바꿀 수는 있지만 ‘서울 G20’ 대학은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은 적어도 소통이 있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는 학교였다. 대학원 학생들이 주로 정부 공무원들과 기업인들이지만 엔지오(NGO) 활동가들도 진학할 수 있도록 별도의 장학금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1998년 설립 초기부터 개발도상국 출신 공무원과 학생을 많이 받아들였다. 에티오피아,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네팔 등 출신으로, 가난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자국으로 돌아가 꿈을 펼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런데 교명으로 삼고자 하는 ‘서울 G20’ 대회는 어땠나? ‘쥐’ 그림 하나도 풍자로 받아들이지 못해 작가를 구속수사하려 했다. 도심 회의장 주변에 장갑차가 등장하고, 엔지오의 목소리는 원천봉쇄되었다. 심지어 정부는 회의에 참가하려던 필리핀 활동가들을 강제추방했다. 소통과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외국 학생들의 대다수가 개발도상국 출신인데, 학교명을 ‘G20’으로 바꾼다는 것도 씁쓸하다. 학교 쪽은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천명한 개발의제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개발도상국의 우수 학생들을 더 많이 유치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일은 교명 변경 이야기가 나오기 전부터 해오던 일이다. 정부의 G20 치적 쌓기가 아니면 갑작스럽게 교명 변경이 추진될 리가 없다. ‘G20 세대’가 씨도 안 먹히니까 만만한 국책대학원 이름을 바꾸기로 마음 먹었나 보다.

이 정부의 치적 쌓기는 상식을 벗어나 낯뜨거운 수준이다. 올해 안동 국제탈춤축제가 ‘4대강 축제’와 같이 열린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4대강 사업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 4대강 수계 지자체 5곳에 ‘4대강 축제’를 열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10년 역사를 가진 지역 고유의 축제를 국책사업 홍보 기회로 활용하려는 꼼수가 지역민들에게도 달갑지 않다. 안동대 민속학과 임재해 교수는 방송 인터뷰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적인 탈놀이를 하는 것이 탈춤축제를 살리는 길이죠”라고 일갈한다. 지역별 축제 비용은 지방비와 국비 각각 5억원씩 드는데, 추경 시기를 놓친 지자체로서는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결국 또 서민 예산이 정부 치적 홍보비로 쓰일 판이다.

이 정부, 1년 반밖에 안 남았다. 억지로 힘으로 학교 이름을 바꿔 역사에 남을 생각을 하지 말고, 4대강 실패를 ‘축제’로 치장하려 하지 말고, 딱 2년 뒤만 생각해서라도 남은 기간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 터져 나오는 공직 비리에 살인적인 물가 상승, 전세가 폭등, 4대강 파괴, 구제역과 저축은행 사태…. 요즘 국민들은 삼삼오오 모이면 도대체 이 정권이 끝나면 뒷수습을 어떻게 할 건가 걱정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토록 많은 국민들의 냉소와 우려를 한꺼번에 받은 정권이 없다.

이 정권을 책임지시는 분들! 지금 ‘G20 대학’이나 ‘4대강 축제’에 신경 쓸 한가한 상황이 아님을 제발,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이유진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팀장

한겨레신문 6월 28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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