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역에너지 현장] 지역에너지, 생산량보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 디자인’

2009.12.28 | 재생에너지

지역에너지, 생산량보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 디자인’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마을’ 600개 조성계획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에너지자립 마을’이라는 말이 이렇게 유행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정부 정책으로 채택될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지난 7월 6일, 정부는 2020년까지 폐자원과 농업 부산물로 에너지 자립률을 40%로 높인 ‘저탄소 녹색마을’을 600개나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오늘 아침에도 <청와대 정책소식> 책자를 보니 에너지 자립형 녹색마을을 2012년까지 시범사업으로 10개를 만들고, ‘제2의 새마을 운동’으로 승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위기 시대에 ‘지역에너지’가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뉴타운 만들 듯이 갑자기 대량으로 추진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당황스럽다. 정부가 계획한대로 마을의 에너지를 자립하는 일이 2년 안에 뚝딱 만들어질까? 그것도 ‘마을’이라면 주민들의 일상이 깃든 곳인데, 그곳에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을 하나 짓는다고 해서 그걸 에너지 자립마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에너지자립마을은 주민들의 생활과 에너지 생산이 유기적으로 결합해야만 한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민들의 참여가 중요하고, 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의 에너지자립마을 추진의 모델이 된 독일의 ‘윤데마을’도 에너지자립까지 7년의 세월이 걸렸고, 그 대부분의 시간은 바이오가스 플랜트 건설에 든 시간이라기보다는 주민들이 참여를 결정하고, 돈을 마련하고, 계획하고,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이었다. 정부계획대로 2년 만에 에너지 자립마을을 만들려고 하면 당장 어디에 어떤 재생가능에너지 생산 시설을 설치할까를 결정하고, 시설 공사하기에 바쁠 것이다. 이제는 ‘저탄소 녹색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에 집중하기 보다는 어떻게 ‘저탄소 녹색마을’을 디자인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일본의 에너지 자립마을을 찾아 그들의 경험을 한수 배워 왔다.

구와바라씨의 꿈 “주민이 운영하는 바이오가스 플랜트”
사이타마현 중부에 위치한 오가와마찌는 도쿄에서 전철로 2시간 정도 걸린다. 약 1천3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통 한지가 유명한 곳이고, 마을 곳곳에 작은 실개천이 흐르는 농촌마을이다. 일본의 다양한 에너지자립 마을 중에서 오가와마찌를 찾은 것은 이곳에 주민이 설계하고, 짓고, 운영하는 바이오가스 플랜트1)가 있기 때문이다.
낡은 야구모자에 장화, 인상 좋아 보이는 시골 농부 구와바라씨가 오가와마찌의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만든 사람이다. 구와바라씨는 유기농사를 짓는다. 그는 질 좋은 액상비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생각해냈다. 가축분뇨와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면서, 에너지도 얻고, 액비도 얻는, 한 번에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구와바라씨는 바이오가스에 관심 있는 전 세계 20여 개국 농부들의 바이오가스 기술연구 모임인 ‘바이오가스 카라반(1988~1998년)’에 참여했다. 그때 충청남도 홍성 풀무학교에서 바이오가스 탱크를 설치하는 일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풀무학교의 전 교장선생님인 홍순명 선생님을 기억하고, 또 존경한다고 말했다. 바이오가스 플랜트 공부에 빠져들면서 그의 논밭은 무성한 수풀로 변해갔지만, 바이오가스 플랜트 설계도를 계속 그려나갔다.
1996년 그는 ‘바이오가스 카라반’을 다니는 중에 유기농가와 에너지 전문가가 참여하는 오가와마찌자연에너지연구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2002년 7월에는 NPO 법인을 취득해 오가와마치풍토활용센터를 만들고 자신이 대표가 되었다. 오가와마치풍토활용센터를 통해 바이오가스 플랜트 설립이 본격화되었다. 우선 돈을 만들어야 했다. 구와바라씨가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만들 때 800만 엔(약 10억원)이 들었는데, 절반은 주민 출자를 받고, 절반은 AP뱅크에서 연 1% 이자로 융자를 받았다. 농촌마을에서 주민출자로 5억을 만든 것도 대단하지만 예술가들의 힘(Artists’ Power) 또는 대안에너지(Alternative Power)를 뜻하는 AP뱅크2)도 특이하다. 일본의 유명팝스타들이 공연기금의 일부로 재생가능에너지와 환경관련 프로젝트에만 융자를 해주는 NGO를 설립해서 운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구와바라씨의 주도 하에 주민들이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짓기 시작했다.

바이오가스 플랜트에 대한 사회적 디자인
구와바라씨가 바이오가스 플랜트 건설보다 더 심혈을 기울인 것은 주민들과 바이오가스 플랜트의 인연을 맺어주는 사회적인 관계망을 만드는 것이었다. 우선 연료를 무엇으로 할까 하다가 음식물 쓰레기를 모으기로 했다. 처음에는 16가구가 참여하다가 100가구까지 늘어났고, 오가와마찌의 모든 학교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서 바이오가스 플랜트까지 운반해주는 일은 행정에서 담당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플랜트에 투입하는 작업은 오가와마치풍토활용센터 회원들이 당번을 정해서 일한다. 이 플랜트에서는 연간 3,600㎥의 바이오가스를 생산하는데, 혼다기술공업과 메탄가스로 가정용 발전과 급탕설비를 활용하는 방법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일종의 가정용 소형열병합발전 시설인 셈이다.
구와바라씨는 지역사회에서 바이오가스 플랜트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오가와마찌 지방정부를 찾아갔다. 오가와마찌에서 음식물쓰레기 소각해서 처리하는 비용은 연간 5천만 엔이 든다. 음식물쓰레기 1kg 당 40엔이 든다. 에너지도 낭비하고, 자원도 버리는 일이다. 구와바라씨는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활용하면 1kg당 20엔만 있으면 처리할 수 있다고 설득했고, 행정이 동의하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를 대행하는 대가로 연간 100만 엔의 운영위탁금을 받기로 했다.
더불어 바이오가스 플랜트에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서 보내주는 가정에 어떤 혜택을 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음식물쓰레기를 모으기 위해 각 가정은 일주일에 두 번 수거용 양동이에 수분을 제거한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해서 저장하고, 세정하고, 관리하는 수고를 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보통 가정은 1년에 150kg의 음식물쓰레기를 배출한다. 그래서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사용하면서 한 가족이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비용에서 20엔씩 절약되기 때문에 약 3,000엔이 절감이 된다. 구와바라씨는 이 돈을 로컬머니로 각 가정에 돌려주자고 제안했다. 한 가정 당 3,000엔씩 절감되는 이 돈은 주민과 행정, NPO가 함께 만든 가치이기 때문에 지역에 다시 돌려줘야 한다고 설득한 것이다. 지역과 공유하는 방법은 바로 지역농산물을 구입하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로칼머니 3,000엔을 1년에 두 번 열리는 지역 농부시장(파머스 마켓)을 통해 농산물을 구입하는데 쓸 수 있다. 파머스 마켓은 지역 축제의 장이자 바이오가스 플랜트의 가치가 지역으로 환원되면서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는 현장이 된다.

지역의,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 ‘바이오가스 플랜트’
오가와마찌에는 가축분뇨, 두부 만들고 남은 찌꺼기, 음식물 쓰레기 등을 활용해 지역주민이 운영하는 소규모 바이오가스 플랜트가 6개나 된다. 보통 바이오가스 플랜트에서는 가스를 생산하고 남은 액비가 처치곤란인데 여기서는 액비도 ‘보물’이다. 구와바라씨가 운영하는 바이오가스 플랜트에는 ‘아주 소중한’ 노트가 한권 있다. 바이오가스를 생산하고 남는 액비를 인근 농부들이 가져간 이를테면 ‘액비 출납부’ 같은 것이다. 농부들은 구와바라씨가 없을 때에도 액비를 가져가면서 얼마를 가져가고 어디에 쓸 것인지를 꼼꼼히 기록해 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나오는 액비는 사이타마현에서 인증을 받은 것이고, 이 액비의 효능이 지역사회에서 입증되었기 때문에 모두 믿고 사용하는 것이다. 액비를 가져간 농부들은 연말에 톤당 2,000엔을 지불하는데, 이곳 바이오가스 플랜트에서는 전기를 팔아서 얻는 수익보다 액비를 팔아서 얻는 수입이 더 크다고 한다.
구와바라씨는 바이오가스 플랜트에서 액비를 처리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이오가스로 생산한 에너지 못지않게 액비를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바이오가스를 둘러싼 ‘사회적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만드는 것은 삽시간이었지만 이 바이오가스에 사람들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를 고민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고 말한다. 오가와마찌에서 바이오가스 플랜트는 에너지 생산시설이라기 보다는 지역의 자원을 순환시키는 자원순환 공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가와마찌에서 배운 것은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하는 에너지양보다 중요한 것이 ‘지역사회 에너지 디자인’이라는 점이다. 에너지는 결국 사람이 쓰는 것이다. 같은 에너지양이라도 누가 어떻게 생산하는가와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량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누가’ 즉, 생산자와 사용자를 어떻게 에너지와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 핵심은 지역의 자원이 지역에서 돌게 하는 것이다. 재료도 지역에서 구하고, 이윤도 지역에서 나눠가진다. 구와바라씨가 바이오가스 플랜트 건축 재료를 가능한 지역에서 조달하고, 바이오가스를 운영해서 얻는 경제적 이득도 지역통화를 통해 파머스 마켓에서 나누는 것도 바로 그 정신 때문이다.
구와바라씨는 정부가 실패가 두려워 과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것을 농부가 시작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면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고 보면 오가와마찌의 바이오가스발전소는 자금조달, 건설, 기업과의 기술제휴, 운영 등 이 모든 것이 주민들의 힘으로 진행하고 있다. 보조금도 없었고, 기업이 뚝딱 지은 것도 아니다. 지역주민들이 지역의 자원, 지역의 자금, 지역의 기술로 이뤄낸 성과이다. 부럽다. 저탄소 녹색마을을 600개를 만들겠다는 우리 정부 공무원들이 구와바라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면 정부 계획에 무엇이 빠져 있는지를 찾아 낼 수 있지 않을까.

이이다시의 햇님펀드와 햇님발전소
도시에서는 에너지자립도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일본 나가노현 이이다시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이이다시의 절전소와 시민태양광 발전소는 발전차액지원제도가 없는 일본에서 어떻게 하면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에 시민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을 한 결과 만들어진 것이다.
2004년 지역 NGO 활동가 하라 아키히로씨는 태양광과 에너지효율개선 사업을 하는 지역에너지기업을 만들기로 결심을 한다. 그래서 “에너지 지산지소”를 목표로 하는 NPO법인을 만들고, 환경성 보조금(총비용의 3분의 2)과 시민출자를 받아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하는 방법을 만들었다. 그렇게 시민출자로 이이다시에서 처음으로 ‘햇님 발전소’가 설치된 곳은 명성유치원이다. 아이들은 유치원 교실에 붙어있는 발전량 계량기를 직접 보면서 자신들이 사용하는 전기가 태양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게 되고, 태양광발전을 상징하는 캐릭터 ‘싼뽀짱’을 통해 재생가능에너지 교육을 받는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같은 해 12월  <햇님진보에너지회사>를 만들고, 태양광발전기에서 생산한 전기를 이이다시에 팔아 수익을 얻고, 그 수익을 출자한 시민들에게 1년에 한번씩(수익률 1.1%~2%) 돌려주기 시작했다. 이이다시에서는 공공건물의 지붕임대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20년간 <햇님진보에너지회사>에서 생산한 전기를 구매하기로 약속한다. <햇님진보에너지회사>는 시민들로부터 출자를 받고,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하고 운영해 수익을 만들고, 그 수익을 출자자에게 배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회사는 2005년 2월부터 5월까지 태양광 발전과 에너지 효율개선 사업에 대해 “미나미신슈 햇님펀드”를 통해 시민출자를 받았다. 약 460명의 시민들이 무려 2억150만 엔(260억)을 출자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돈으로 이이다 시내 38 곳의 유치원과 공공시설에 총 208KW의 태양광 발전 설치를 설치하고, 상점과 사업장을 대상으로 ESCO사업3)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햇님진보에너지회사>가 시민출자를 통해 이이다시에 설치한 태양광발전소는 162곳에 달한다.

태양보다 돈이 되는 이이다시의 절전소
이이다시 한 중간에 자리 잡은 작은 동물원 앞에는 커다란 간판이 서있다. 태양광발전소를 짓는 데 출자한 사람들의 이름과 태양광 발전소와 절전소가 설치된 건물이 지도로 표시되어 있다. 지역사회 전체가 태양광발전소와 절전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회사의 주요 수익은 절전소, 즉 ESCO사업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절전소는 ‘절전’과 ‘발전소’를 합한 신조어이다. 내가 1kWh를 안 쓰면 누군가 대신 쓸 수 있는 에너지를 생산해낸 것과 같다는 것이다. 햇님진보에너지회사는 주로 전등 교체와 보일러 교체를 통해 에너지 효율이 개선되면, 평소에 지출하던 에너지 비용에서 차감한 수익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이다시 예술 박물관은 에어컨 효율개선, 에너지절약 공조기 도입, 전자식 형광등 안정기와 고효율 전구를 도입을 통해 전력 에너지를 30%나 줄였다. 이이다시는 햇님진보에너지회사를 통해 에너지 절약과 효율향상, 태양광발전이 세바퀴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보다 지속가능한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하라 아키히로씨는 지역사회에서 회사의 존재이유를 3S로 표현한다.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해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단순성(Simple), 축적과 공유(Stock)에 대한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산지소’, 에너지를 지역에서 생산해 지역에서 소비하는 것을 실현하는 데 있어 지역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매년 모집하는 햇님펀드는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각각의 개별 회사로 독립시켜 운영 하는데, 하라씨의 목표는 이 회사들을 “햇님 그룹”으로 발전시켜 자신이 사는 고장을 자원순환형 사회로 만든다는데 있다.
“햇님펀드 2009는 지역 시민이 만든 에너지 회사가 자연 에너지 사업에 자금을 모집하는 펀드입니다.
여러분 출자한 자금은 태양광 발전소 설치를 중심으로 한 자연 에너지 사업에 직접 투자됩니다.
여러분의 참여를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구 11만 명의 이이다시는 1996년부터 환경문화도시를 표방하면서 2010년까지 지역에서 쓰는 전력에너지의 30%를 태양광에서 얻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고 있고, 이미 일본 평균의 25배에 가까운 보급률을 자랑하고 있다. 이이다시는 시와 지역에너지회사가 시민들과 함께 태양을 수확하는 그야말로 모두가 함께 만드는 ‘태양도시’이다.

히라츠카 “우리 동네 에너지 카페로 놀러 오셔요”
일본의 에너지 자립마을을 돌아보면서 오가와마찌도 이이다시도 기본은 에너지 절약과 시민들의 의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절약이 그렇게 쉬울까? 대기전력만 차단한다고 절약하는 소임을 다한 것일까?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 기후변화나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갖는 시민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시민들이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해 뭔가 실천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어디에서부터 시작할지 모를 때가 많다. 간단한 전기절약 방법은 나와 있지만 좀 더 체계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에너지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를 함께 토론하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지역주민들이 갖는 다양한 에너지와 기후변화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에너지카페’가 생기고 있다. 요코하마역에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히라츠카에는 에너지 카페 ‘미깡야’가 있다. 인터넷 ‘카페’ 가 아니고 정말 차를 마시는 카페이다. ‘미깡야’는 지역특산물인 귤을 말한다. 동네사람들은 ‘에너지카페’를 통해 에너지 진단도 받고, 자신에게 꼭 필요한 맞춤형 에너지 절약 정보를 얻는다. 카페 한편에는 가나가와현에서 진행하는 에너지 절약 프로그램과 안내 책자가 배치되어 있고, 매달 에너지강좌가 열리고, 히라츠카환경팬클럽 모임도 여기서 열린다.
2007년 8월 문을 연 이 카페는 건물 자체가 에너지 절약의 모범답안이다. 단열공사를 제대로 하고, 2중창을 설치해 냉·난방에너지가 허투루 소비되지 않도록 했다. 지금은 건물벽면 녹화를 준비하고 있다. 건물 안의 가전제품과 전등은 에너지고효율제품으로 되어 있고, 에너나비(스마트 계량기)와 에코와트가 설치되어 있다. 에너나비는 에너지와 네비게이션의 합친 말이다. 스마트 계량기인데, 실시간으로 가게에서 사용하는 전력량과 이산화탄소발생량을 보여준다. 지자체에서 에너나비를 보급하는데, 에너지카페가 중간에서 대여하고 주민들에게 사용법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카페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이 시민들에게 전달되는 플랫폼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카페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나가노현 이이다시 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하는 그린전력을 구매한 것이다. 실제 사용하는 것은 일반 전기이지만 그린전력인증서를 받고, 자발적으로 보다 높은 전기 가격을 지불함으로써 이이다시의 태양광발전소 운영을 돕는 것이다. 히라츠카 에너지 카페와 이이다시의 ‘햇님진보에너지회사’가 이렇게 인연을 맺고 있을 줄 몰랐다.  
이 카페의 주인장은 누구일까? 이 카페는 지역 풀뿌리 단체인 히라츠카 지역에너지 협의회가 ‘시민 에너지 비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자는 뜻으로 생겼다. 결국 주인장은 지역주민이 참여한 시민단체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총에너지의 22.5%가 건물에서 사용된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면 집과 빌딩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소비량을 줄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 정부나 지자체, 시민단체에서는 에너지 절약을 홍보하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그 형식과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우리도 히라츠카 에너지카페처럼, 지역사회에 시민들이 친근하게 찾아갈 수 있고, 맞춤형 에너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간, 그 곳에서 자연스럽게 기후변화나 환경에 대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보자. 카페도 좋고, 아파트 관리사무소도 좋고, 주민복지센터도 좋겠다.

지역에너지디자인과 에너지사회적기업의 만남
세계 곳곳에서 에너지가 시민들의 곁으로 한발 다가서고 있다. 달리 말하면 시민들이 에너지문제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의 시작점은 지역이고, 에너지문제도 ‘지산지소’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도 지역형과 분산형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에너지 공급 방식이 분산형으로 되면 지역을 중심으로 재생가능 에너지를 생산하고, 관리하고, 또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창출 할 수 있다. 에너지를 지역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이 환경적으로도 바람직하고, 민주적이고, 또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면 우리 사회에서도 ‘지역에너지체제’로의 전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
일본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것은 ‘지역에너지 디자인’의 중요성이다. 지역의 재생가능에너지 생산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민이 참여하는 적극적인 형태로 ‘사회적 기업’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역주민이 출자해서 법인을 만들거나 유한회사를 만들고, 작게는 카페를 운영하는 형태의 경제적인 창출 모델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함께일하는재단’은 태백에서 바이오펠렛 사업단을 꾸리고 있다. ‘생명의숲’은 산촌마을 사람들과 에너지를, 에너지팜은 쉐플러태양열조리기를, 녹색연합은 녹색에너지디자인을 고민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에너지 분야 사회적 기업들이 제대로 우리 속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저탄소 녹색마을’에는 ‘지역’과 ‘주민’이 빠져있다. 에너지자립마을의 성공조건은 제대로 ‘지역’에 뿌리는 두는 것과 ‘대화와 워크숍’에 있다. 이번 일본 답사에서 우연히 만난 덴마크 삼쇠섬을 재생가능에너지 100%의 섬으로 이끈 쇠렌 허만슨(Soren Hermansen)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서, 또는 처음부터 에너지 자립섬을 만들기 위해서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삼쇠섬은 섬이기 때문에 에너지 문제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고, 주민들이 불안하지 않고, 행복하기 위해 뭔가 다른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저절로 된 결과였다.” “지역사회가 함께 토론에 토론 워크숍에 워크숍을 거듭하다 나온 대안이 풍력발전이었다. 사실 이 일을 하는데, 가장 많이 든 비용은 커피 값이었다.”
우리가 기후변화와 에너지에 대한 대안을 찾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에너지양이 아니라 지역주민들과 에너지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다. 그 일을 하는데, 지역 NGO들과 지역의 에너지 사회적 기업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제대로 된 에너지 자립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지역주민, 전문가, 기술자, 행정이 모두 모여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며, 아이디어를 모으고 서로의 역할을 논의해 나가야 한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고, 갈등이 생기더라도, 커피 값이 많이 들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아이디어를 모아서 제대로 된 에너지 자립마을 모델을 만드는 것, 그 일을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 <끝>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 국장)
환경과 생명 2009년 겨울호 기고 글입니다.

——————————————————————————–
1) 축분이나 음식물쓰레기를 혐기소화해 메탄을 발생시키고 메탄을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
2) AP은행은 일본의 음악 프로듀서의 타케시 고바야시, 카즈토시 사쿠라이, 료이치 사카모토가 사재를 출연해서 만든 은행으로 재생가능에너지 시설투자와 환경 프로젝트에 저리로 융자를 하는 일을 한다.
3) ESCO(Energy Service Company)는 우리말로 ‘에너지절약전문기업’을 뜻한다. ESCO사업은 전기·조명·냉난방 등 ESCO로 지정받은 에너지 전문업체가 특정건물이나 시설에서 에너지 절약시설을 도입할 때 해당기관으로부터 돈을 받지 않은 채 비용 전액을 ESCO 업체가 투자하고, 시설투자 후 여기서 얻어지는 에너지절감예산(전기요금 절약분)에서 투자비를 일정 기간 분할 상환받도록 하는 사업방식을 말한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