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중금마을 이순자 할머니댁 ‘새단장’

2010.01.14 | 재생에너지

‘그린 스타트 운동’의 모범답안 임실중금마을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가장 중요한 이슈는 틀림없이 ‘기후변화’이다. 더워지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멀리 북극이나 남태평양 섬나라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도 변화시키고 있다.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으로는 농업과 어업에 영향을 미치고, 도시계획과 에너지 정책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다보니 중앙정부만 아니라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기후변화 관련 업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발 빠르게 대응하는 지자체에서는 기후변화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정책을 만들어내며, 업무 전담 부서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녹색성장이나 기후변화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된 공무원들로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현재 환경부가 지자체의 기후변화대응을 지원하고 있는데, 체계적으로 지원을 하기 보다는 주로 녹색생활 캠페인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그린스타트’ 운동은 행사개최 규모와 횟수, 또는 참여인원을 두고 성과를 측정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린스타트’ 운동의 핵심은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실천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에너지 부문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며,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러 가지 여건이 열악한 가운데서도 전라북도 임실 중금마을에서 ‘그린스타트’ 운동의 모범답안이 될 만한 활동들이 벌어지고 있다.

임실 중금마을은

임실치즈마을을 구성하는 세 개 마을 중 하나인 중금 마을에는 36가구에 85명이 살고 있다. 임실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았는데, 마을에 들어서면 치즈체험 교실 건물과 판매장이 눈에 띈다. 체험교실 뒤로 마을의 느티나무 숲길이 쭉 뻗어있다. 치즈마을의 성공 경험이 있는 곳이라 인근 마을 보다 청년들이 많고, 오래전부터 오리농법을 통해 유기농 농사를 짓는 곳이다.
마을의 첫인상은 단정하다는 것이다. 시골마을에서 흔히 굴러다니는 농약병이나 비닐하우스 조각 하나 찾아볼 수 없다. 2008년부터 마을 회의를 통해 쓰레기를 태우지 않는 마을, 쓰레기 없는 마을을 만들기로 하고, 재활용품을 12가지 항목으로 나눠 철저히 분리수거하기 때문이다. 분리수거를 해서 빈병이나 폐품을 판매한 수익으로는 마을회관 공동경비로 사용하거나 열심히 참여한 농가에 상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작은 생활 속의 실천이 마을에 가져다 준 변화는 놀라웠다. 마을이 눈에 띄게 깨끗해지고, 주민들도 “큰 장마에 농수로와 실개천에 농약병이 안 보이는 건 올해가 처음”이라며 뿌듯해하고 있다. 주민들은 환경을 위해 자신들이 기울인 노력이 성과로 나타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기후변화 대응 이야기 하면서 웬 분리수거 이야기를 하나 싶을 텐데, 주민들의 분리수거 경험이 에너지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에코홈닥터들의 대활약 “마을 에너지 진단”

평소에 에너지에 관심이 있던 김정흠 총무는 전북의제21 양준화 팀장과 오랜 논의 끝에 마을에 에너지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위원회를 통해 주민들은 어떻게 에너지절약을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해 함께 계획을 세웠다. 방법은 이렇다. 먼저 전북의제21이 ‘전북그린스타트 네트워크’에서 배출한 에코홈닥터들이 중금마을을 방문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에너지 교육도 하고, 에너지 진단도 하는 것이다. ‘에코홈닥터(ECO-home doctor)’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자연 생태 환경을 뜻하는 ‘생태(ecology)’와 ‘가정(home)’에서 에너지를 진단하고 ‘치유(doctor)’ 한다는 말을 합친 것인데, 풀어서 말하면 ‘가정에너지 진단과 절약 설계자’가 된다.
전북그린스타트에서 배출한 에코홈닥터는 집안 곳곳에서 낭비되는 에너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단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에너지 효율을 개선했을 때 줄일 수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대한 수치도 계산해낸다. 올해 전북의제를 통해 14명의 에코홈닥터가 배출되었는데, 이들은 주택에너지 효율화 사업을 위해 집 안의 에너지 진단과 단열 시공에 대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중금마을에서는 에코홈닥터가 각 가정을 방문해,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에너지 교육을 하고 에너지 효율개선 작업도 진행했다. 집안의 백열등을 고효율 전구로 바꾸고, 멀티탭 콘센트를 설치하고, 절수형 샤워꼭지를 달고, 단열과 방풍을 위해 문풍지와 방풍실리콘 처리를 했다. 양치컵을 쓰지 않는 가정에는 양치컵을 전달하기도 했다. 분리수거가 가지고 온 마을의 변화를 경험한 주민들은 에너지 절약 실천이 가지고 올 변화에 대해서도 내심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에너지 절약은 당장 농촌마을에서 지출하는 에너지비용을 줄여줄 것이다. 가장 깨끗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생산방식은 바로 “에너지 절약”이다.

이순자 할머니 댁 단열개선 집수리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겨울이 따뜻한 집”

여기까지는 어느 마을이나 할 수 있는 활동인데, 다음 단계가 중요하다. 개인적인 에너지 절약을 넘어서 조금 더 큰 규모의 에너지효율개선 사업을 진행했다. 바로 집수리이다. 농촌마을은 노후화된 주택 때문에 난방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단열개선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마을의 36가구 중에서 어느 집을 고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마을 주민들이 회의를 통해 ‘이순자’ 할머니의 집을 고치기로 함께 결정했다. 이순자 할머니의 집은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에 흙벽이고, 나무창살에 문풍지를 한 문이라 겨울에는 매서운 찬공기가 집안으로 그대로 스며든다.
지난해 6월, 마을 주민들이 모두 마을회관에 모였다. 이순자 할머니 집의 에너지 진단을 하기 전에 주민들에게 집수리 전과 후가 어떻게 다른지를 교육하는 기회를 가진 것이었다. 전북의제 21, 에코홈닥터, 한국에너지 복지센터, 전북주거복지센터, 임실군, 녹색연합 등 여러 단체가 함께했다. 한국에너지복지센터에서 집의 어디를 어떻게 고치면 단열이 개선될지를 설명했다. 공사는 전북주거복지센터가 맡았다.  꼼꼼한 에너지 진단을 통해 집의 출입문 2곳을 교체하고, 벽면에 단열 공사를 했다. 이렇게 이순자 할머니 집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마을 회관의 중앙현관문을 통해서도 에너지가 많이 새어나가기 때문에 단열을 개선하자는 의견이 나와서 마을회관의 문도 새 단장했다.
‘에너지효율개선 시범주택 만들기 사업’은 대성공이었다. 공사이후에 외풍이 50%이상 차단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 집수리가 끝나고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집들이도 했다. 집 앞에는 공사전과 공사후의 집의 모습을 한눈에 비교해 볼 수 있도록 ‘안내판’도 만들었다.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겨울이 따뜻한 집” 이라고 이름도 붙였다. 이순자 할머니도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게 되어 행복해하신다.  

중금마을을 “에너지 자립마을”로

중금마을에는 ‘에너지카페’가 있다. 바로 마을 총무 김정흠씨의 집이다. 산청 대안기술센터를 통해 풍력발전기와 자전거 발전기 제작 방법을 배워서 직접 집에 설치했다. 풍력발전기로 불을 밝히고, 자전거 발전기로 믹서를 돌려 주스를 만든다. 자전거 발전기엔 아예 라디오를 연결해 음악도 들려준다. 마을 주민들이 친숙하게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한 공간이다. 이제는 마을의 상징이 되었다.
고유가와 기후변화로 인해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화석에너지와 재생가능에너지를 단순 비교해서는 곤란하다. 현재 시장가격으로 재생가능에너지는 고가이면서도 바람이 불지 않거나 해가 나지 않는 날엔 생산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 애정을 갖고 그 한계 또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김정흠씨의 ‘에너지카페’는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임실의 치즈마을에서는 설치한 풍력발전기와 자전거 발전기는 교육용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점차 태양열 온수기와 태양광발전기 설치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임실 중금마을은 이렇게 에너지 절약, 효율개선, 재생가능에너지 설치라는 에너지 자립마을을 만들기 위한 기본원칙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천해나가고 있다.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농촌마을의 ‘모범 정답’과 같은 일이 중금 마을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 교육을 통해 양성된 에코홈닥터들이 실제 주민들에게 에너지 절약을 할 수 있도록 에너지 효율 개선 컨설팅 사업을 벌이고, 마을 주민들은 에너지를 절약하는 습관을 가져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한편으로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지방정부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든든하게 지원하고 있다. 임실군은 중금마을을 환경우수마을로 선정했고, 자원재생공사는 쓰레기 분리수거 부문에서 협력을 하고, 전라북도는 중금마을을 그린빌리지로 만들 것을 검토하고 있다.
중금마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미래상은 바로 자원순환마을이다. 친환경농업을 확대하고 생태계가 살아있어 살고 싶은 마을, 자연자원으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폐기물이 자원이 되는 자원순환마을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서로가 가진 정보와 기술을 나누고 품앗이를 하는 것이다. 중금마을의 이러한 에너지 절약 노력을 이산화탄소 감축량으로 환산하는 작업을 한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린 스타트 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주민들이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주민들의 자발성이 최대한 발휘 될 수 있도록 지역 NGO들의 역량을 지원하고, 지역 NGO와 협력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임실 중금마을 사례가 ‘그린 스타트’ 운동의 모범사례로 널리 퍼져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월간 「도시문제」1월호  
이유진 (녹색연합 정책위원)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