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기본계획의 함정

2013.07.18 | 탈핵

“인간이 활동하는 근원이 되는 힘.”
사전에 나온 ‘에너지(energy)’의 정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스, 열, 전기 같은 구분보다는 훨씬 상위의 해석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에너지가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매우 적절하다. 산업혁명 이전의 사회와 현대문명을 구분하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에너지원의 변화다. 우리 시대는 화석연료와 전기 같은 현대적 에너지원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에너지계획이란 사회 전반의 흐름과 긴밀하게 연동된다.

올해 말이면 에너지기본계획(前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발표된다. 지난 2008년에 발표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원전 비중을 60퍼센트 가까이 늘리겠다는 내용이 중심이어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게다가 전체 내용을 전문가 중심의 밀실에서 작성한 뒤 있으나마나 한 공청회를 치르고 국무회의에서 최종 결정되었다.

2008년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기반으로 현재 십 수기의 원전이 지어지고 있거나 신규 건설이 추인되었다. 우리가 밀양에서, 삼척에서 그리고 또 어딘가에서 수십 배는 힘든 투쟁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에너지기본계획이라는 첫 단추를 잘못 꿴 결과이기도 하다

세부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정부가 내놓는 에너지기본계획의 가장 큰 함정은 현재 에너지 소비패턴을 기반으로 예측방식의 에너지 시나리오만을 내놓는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에너지 과소비와 이에 따른 기후변화 문제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탈핵을 염두에 둔 ‘규범적 방식(backcasting)’의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2030년경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량을 어떤 수준으로 줄일지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맞춰 달성 수단과 경로를 정하는 시나리오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회적인 논의와 협의가 가능하다.
지금처럼 전문가들이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계산식을 통해 소비량을 예측하는 방식으로는 탈핵도, 온실가스 저감도 불가능하다. 에너지기본계획은 구체적인 실행방법의 문제 이전에 철학의 문제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기본계획의 성격과 원칙을 재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의 기조는 값싸고 안정되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에너지 기후위기나 현대문명에 대한 사회적 성찰 같은 작금의 흐름을 고려한다면 기존 에너지 정책 기조는 시대에 뒤쳐져도 한참 뒤쳐진 것이다. 따라서 에너지 기본계획은 에너지의 모든 지점에 촘촘하게 연결되는 영향성을 고려하는 ‘포괄성’, 환경정책과의 갈등을 예방하는 ‘정합성’, 분산형 체계 구축과 탈핵을 포함하는 ‘지속가능성’, 장기 에너지 전환계획과 재생가능에너지의 경제성 확보 계획, 관계지역
주민들과 일반시민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보장하는 원칙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이런 내용과 철학이 담보되지 않은 에너지계획은 사실상 무의미하고, 다시 5년간 사회적 갈등만 증폭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현재 에너지기본계획은 이런 원칙도 없이 일부 전문가들을 비밀리에 임명하고 다시 숫자 놀음에 집중하고 있다.
시민들의 의견이 수렴될 수 없다면 이런 밀실 논의 구조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에너지기본계획은 정부와 전문가의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이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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