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가 신·재생에너지가 되는 ‘창조경제’

2014.09.12 | 탈핵

[에정칼럼]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 분리하고 별도 법 마련해야

화석연료를 신·재생에너지로 지정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산업부는 지난 7월 21일 발전소 온배수를 신·재생에너지로 지정하기 위해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촉진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규칙안을 입법예고했다. 발전소 온배수가 신·재생에너지라면 화력발전소를 확대 가동할수록 신·재생에너지도 늘어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인 걸까.

발전소 온배수는 신에너지도 재생에너지도 아니다. 발전소 온배수는 석탄이나 가스 등 화석연료나 핵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열을 냉각하기 위해 사용하고 배출되는 물을 말한다. 태양에너지나 풍력, 지열 등과 같은 재생에너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를뿐더러 기존 화력발전소에서 다량 배출되는 온배수가 신에너지일리도 없다.

정부도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정의당 김제남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12년 11월 14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당시 조석 제2차관(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폐열 에너지를 신·재생에너지에 추가하는 것은 법적 정의나 철학에 맞지 않고 국제적으로도 인정되지 않는 점을 볼 때 신·재생에너지로 포함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조 차관은 “신·재생에너지 재원이 이 쪽(폐열)으로 남발될 우려까지도 있다. 폐열에 대한 과다 지원이 오히려 다른 신재생에너지의 육성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요소도 있다는 점을 고려, 정부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국제기구 및 주요국가별 재생에너지 분류2012년 기준 국내 총발전량 중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3.66%다. 그 중 폐기물이 60.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에 포함되나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재생에너지 분류에서 제외하는 비재생폐기물에너지(Non-Renewable Wastes)와 연료전지 등 신에너지를 제외할 경우 2012년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1.4%로 크게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지난해 반대 입장을 뒤집고, 주요 선진국과 국제기구가 신·재생에너지에서 제외하는 발전소 온배수를 이용한 폐열 에너지를 신·재생에너지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입장 번복에 대한 배경으로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이하 RPS) 의무이행량을 손쉽게 채우려는 발전사업자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2012년과 2013년 RPS 의무이행 실적 현황을 보면, 태양광을 제외한 비태양광 부문의 이행 실적은 각각 63.3%, 65.2%에 불과했다. 현재 발전사업자들은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을 지키지 못해 수억원에서 100억원 이상의 과징금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발전 사업자들이 온배수로 손쉽게 의무 이행량을 채울 수 있게 되면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이 드는 태양광·풍력 등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혼돈(混沌)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공자가 말한 정명(正名)이 우선되어야 한다.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정부와 국회 연구기관에서도 계속돼왔다. 발전소 온배수와 같은 문제도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가 같은 법률로 묶여 있는 한 계속 발생할 수 있다.

2013년 7월 법률개정을 통해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촉진법 제2조(정의)에서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구분해 서술하게 되었다. 이제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재생에너지 정의를 바탕으로 현황을 재정립하고 목표를 재설정해야 한다.

또한 이에 따른 정책을 재수립해야 하는데, 효율적인 정책 수립과 실행을 위해서는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분리해 별도의 법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녹색연합 에너지기후국 권승문

*레디앙 <에너지정치칼럼>에 게재됩니다.

http://www.redian.org/archive/77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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