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대박? 완전 희박!

2010.01.13 | 탈핵

‘UAE 40조원 수주’ 호들갑 떨지만 원전 시장 규모는 줄어드는 중이고
세계적 대세는 가스 터빈으로 변화

한국전력 컨소시엄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따냈다. 정부는 물론 여러 언론도 일대 쾌거인 양 이 소식을 알렸다. ‘외화벌이’를 폄훼할 까닭은 없다. 하지만 정부가 홍보하거나 전망하는 대목 가운데 상당 부분은 세계적 인식과 거리가 있다. 그 격차는 가린 채 온전히 정부의 치적인 듯 분식하고 있기에 소란스럽고 혼란스럽다.
  


먼저 원자력의 미래 시장을 들여다보자. 정부가 원전 수주 직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세계적으로 2030년까지 추가 건설될 원전은 430기로 대략 1400조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된다. 그러나 이는 국제기구들의 객관적 전망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출처가 의심스러운 주장이다.

1400조 시장?
출처 불분명한 엉뚱한 정보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해온 세계에너지전망(WEO·2006~2007년)에 따르면, 2030년까지 세계 원전설비는 2006년 기준 368기가와트(GW)에서 416GW로 늘어날 전망이다. 원전 1기의 평균 용량인 1GW를 기준으로 계산할 때, 2030년까지 전세계적으로 새로 들어설 원전설비는 불과 40~50기에 머문다는 얘기다.

발전원별 전력 생산 비중을 기준으로 볼 때도, 원자력 비중은 현재 15%에서 2030년에는 9%로 떨어질 전망이다. 반면 가스터빈과 석탄화력의 발전량 비중은 현재 20%, 40%에서 2030년까지 23%, 45%로 각각 증가할 전망이다.

현재 중국과 인도가 세계 원전 시장의 83%를 차지한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이 두 국가가 2030년까지 각각 24GW, 14GW 규모의 원전을 건설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 경우에도 두 국가의 전체 발전설비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와 3% 수준에 머문다. 이 신규 원전 대부분도 웨스팅하우스(일본 도시바의 자회사) 몫이다. 이미 중국 싼먼과 양장 등에서 공사를 따냈고, 나머지는 프랑스의 아레바사에 넘어가면서 남은 시장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전력망 규모 적은 중동, 추가 도입 난망
한국 원전의 중국 수출 논의가 활발해진 건 사실 2001년 전후부터다. 하지만 한국형 원전의 라이선스 보유자인 웨스팅하우스가 경쟁자로 있는 이상 애초부터 성사 가능성이 희박한 논의였다. 지난 2005년 겨우 수주한 원자로의 경우, 2기 가운데 그나마 1기는 중국 쪽에서 제작하는 조건이었다. 이후 가속화된 중국 내 국산화로, 현지 시장에서 한국의 역할은 더 적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공식적으로 모두 6기를 건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사가 10~14년에 이르는 만성적 지연을 거듭하고 있어, 전망 자체가 불확실한 시장이다.

중국과 인도를 뺀 다른 시장은? 이번에 원전을 수주한 UAE을 포함한 중동 지역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사실 프랑스 정부와 아레바사는 지난 수년 동안 중동의 여러 국가를 순회하며 원전 수출계약에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한 건도 성사되지 않았다. 현재 프랑스 업체들이 핀란드에 건설하고 있는 올킬루토 원전이 계속 지연되는 등 저조한 실적이 문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중동 국가들의 전력망 규모가 원전을 도입하기에는 너무도 작다는 점이다. 원전은 일단 가동에 들어가면 자체 출력 조절이 어렵고 연료 교체 때 1개월 정도의 공백기가 있기 때문에, 상시 전력 수요가 있어야 하고 전력 공급 변화에 따른 균형 조절을 해줄 다른 발전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해당 원전이 멈출 때 등을 대비해 대신 전력을 생산·제공해줄 발전 용량이 비슷한 규모로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규모의 전력망 규모를 갖춘 중동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 정도다. 이 때문에 이들보다 3분의 1 규모인 UAE의 전력망에 원전을 도입하는 게 타당한지부터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어쨌건 UAE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나머지 중동 국가들 대부분이 UAE의 절반도 안 되는 전력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하기 어렵다. 실상 중동권에서 추가적인 원전 도입 논의는 무의미한 셈이다. 더욱이 제조업이 없는 이들 국가에서 미래에 전력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리란 전망도 어려운 상황이다. 대부분의 중동 국가에 적합하며 실제로 가장 많이 계약되는 발전설비는 어떤 규모에서나 수요 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가스터빈이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한국이 원전 시장에 숟가락을 들자마자 식사가 끝나버리는 상황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번 원전 수출 수주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면 오랫동안 국가 차원에서 육성한 다른 중화학공업과도 견줘야 한다. 원자력 역시 1970년대 이후 국가 차원의 중공업 육성정책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시작한 조선 산업과 철강 산업은 초기 4~5년간의 기술 이전 과정을 거친 뒤 줄곧 높은 수준의 수출 실적을 보여왔다. 그에 견주면 원자력은 점수를 낮게 받을 수밖에 없다. 사실상 1950년대부터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 투자가 시작됐고, 본격적인 설비투자가 1970년대 이뤄졌다. 하지만 저조한 실적으로 인해 급기야 1980년에는 한국중공업으로 국영화되었다.

그럼에도 이후 원자로 수출은 고사하고라도, 기술 국산화에만 20여 년이 더 걸렸다.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수출에 대한 제약을 받고 있다. 한국형 원전의 라이선스를 웨스팅하우스가 갖고 있어 로열티 부담 등이 뒤따른다. 정말 이번 원전 수주가 그토록 경사스럽고 위대한 일인가.

20년 앞선 미쓰비시가 돌아선 이유
지난 30년 동안 중화학공업을 필두로 한 한국 제조업의 눈부신 성장은 분명 국제사회의 표본으로 칭송받는다. 하지만 국내 원자력 산업은 그만한 수준의 실적을 보여주지 못해왔고 앞으로도 크게 개선될 전망은 희박하다.

이는 한국의 기술 수준이 열등해서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주어진 세계 발전설비 시장 구조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오래전부터 예측 가능했다는 점과, 지금에라도 냉정히 검토한다면 개선할 수 있는 문제를 미래에도 지속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말인즉 한국중공업에서 두산중공업으로 이어져오는 국내 발전설비 산업은 오래전부터 가라앉고 있는 국제 원전 시장에 집착하지 말고 대안 시장으로 전환해야 했고, 늦었지만 당장이라도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웃 일본의 미쓰비시 중공업은 두산중공업보다 훨씬 앞서 웨스팅하우스의 경수로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자유로운 위치에서 수출을 해본 경험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980년대 멕시코에 두 기의 원자로를 수출한 경우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1980년대 세계 원자력 설비 시장의 퇴조 추세에 대응해 제너럴일렉트릭(GE), 지멘스, 알스톰, ABB 등 세계 발전설비 메이저들끼리 경쟁하는 가스터빈 시장을 비집고 들어갔다. 결국 세계 가스터빈 시장에서 일정 지분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한마디로 두산보다 앞선 원자로 기술과 수출 경험이 있음에도 미쓰비시는 고효율 가스터빈을 주력 수출 품목으로 잡고 있다. 미쓰비시의 2009년 발전설비 매출액은 약 123억달러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고효율 가스터빈과 증기터빈이 차지한다. 현재까지 미쓰비시가 전세계적으로 수출한 가스터빈 규모는 약 52GW로, 원전 기수로 환산하자면 약 52기에 해당된다.

반면 두산중공업의 설비별 수출 실적을 보면, 원자력을 포함한 발전설비 실적은 저조한 반면 그동안 국가적으로 투자한 원자력과 무관한 해수 담수화 시설 수출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원자력 설비와 해수 담수화 설비에 의존해온 두산중공업에서도 최근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된다. 2009년 11월 이 회사는 미쓰비시 중공업과의 기술제휴를 통해 국내 최초로 가스터빈을 생산해 영월 가스복합화력발전소에 공급했다고 밝혔다. 국제 기준으로 볼 때 미쓰비시와 같은 후발주자들보다도 20년이나 늦은 출발이다. 그럼에도 원전에만 의존해오던 한국의 대표 발전설비 업체가 지금이라도 대안적인 기술로 다각화했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긍정적인 신호다.

가스터빈은 세계적으로 지난 20여 년간의 경험에 비춰보거나 향후 20년을 전망할 때 그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이다. 에너지 전환 효율 역시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더욱이 기술 진화의 궤적을 볼 때 머지않은 장래에 투입 연료로 기존의 천연가스 이외에 석탄이나 석유까지 사용 가능한, 다각화된 고효율 발전설비로 진화하리란 게 이 분야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최근에는 군용 항공기뿐만 아니라 군용 선박, 전차 등에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어, 군수 부문의 대외기술 종속 문제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더 본질적 측면을 얘기해보자. 원자력은 대안 에너지로서의 입지가 국제사회에서 급격히 줄고 있다. 현재까진 공식적인 국제 기후변화협의에서 원자력 발전이 온실가스 감축의 방법인 ‘청정개발체제’ 수단으로 선택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원자력을 통해 온실가스를 줄여도, 개발도상국에선 인센티브를 받지 못한다.

미래 전력 시장 이끌 기술 개발로 전환해야
세계 전력 시장의 현실을 보더라도 선진국에서는 핵폐기물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막대한 자본 투자에서 오는 위험부담으로 투자자들도 기피한다. 자본이 부족한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는 어울리지 않는 기술이다. 지난 수년간 국제기구들이 발표한 원자력 설비 전망이 비관적인 이유는 이런 현실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30여 년 동안 정부가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투자해온 원자력 부문에서 수출 계약이 이뤄진 점은 국가경제 측면에서 다행이다. 다만 ‘불행 중 다행’이다. 이미 짚었듯, 세계 원자력 시장의 침체는 이미 지난 1970년대 말 시작되었다. 세계 주요 원자력 관련 업체들은 원자력 시장에서 철수하고 새 기술 개발과 시장 개척을 통해 가스터빈으로 세계 발전설비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이미 뚜렷해진 상황이다.

따라서 한 번의 수주 체결에 들떠 원자력 분야에 대한 정부의 맹목적 지원을 되풀이하기보다는 냉정하게 해외 발전설비 시장의 현황을 재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가스터빈·풍력 등 미래 전력 시장을 지배할 기술의 개발과 수출을 위한 정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 이 글은 한계레21 제793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 : 석광훈 (녹색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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