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수출, 박수만 칠 수 없다

2009.12.31 | 탈핵

정부는 한국전력컨소시엄이 1400만㎾급 한국형 원자력발전소 4기를 아랍에미리트연합에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방송은 뉴스 속보로 보도하는가 하면, 신문은 이명박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를 대서특필하고 있다. 언론은 이번 수출이 자동차 100만대 수출에 맞먹는 경제적 이득을 가져올 것이며, 원자력발전 수출의 청신호가 켜졌다고 전망하고 있다. 어느 때부터인가 언론의 날카로운 심층보도는 사라지고, 정부 발표를 그대로 전달하거나 영웅담을 생산하고 있다.

김영학 지식경제부 차관은 이번 수주의 성공은 ‘경제성’에 있었다고 했다. 한국형 원전(APR1400)은 ㎾당 건설단가가 2300달러인데, 프랑스(EPR)는 2900달러, 미국(AP1000)은 3582달러였다는 것이다. 정부는 기술력의 승리를 강조하지만 입찰을 따내기 위해 무리하게 낮은 가격을 제시한 것은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기술력으로 치면 아직 우리는 원전설계코드, 원자로냉각재펌프, 원전제어계측장치 등 핵심 원천기술이 없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원전 건설에 추가로 필요한 핵심부품은 미국에서 구매해 공급해야 한다.

원전은 국내든 국외든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아랍에미리트연합 같이 원자력 기술과 기반이 부족한 곳에 수출을 할 때는 안전성 문제를 더욱 철저히 따져야 한다. 만일의 상황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문제는 한국형 원전은 국내에서도 아직 건설 중이며, 운영해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다. 원자력 옹호자들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고, 안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기우일 뿐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원전 운영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고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에서도 1999년 도카이무라 임계사고로 40여명이 방사능에 노출되고, 2명이 사망한 바 있다.

더불어 원자력에너지로 가는 길이 올바른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의 핵심은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소 12기를 추가 건설하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고유가 위기의 답을 원자력에너지 확대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이 정말 ‘녹색’이 될 수 있는가? 자신을 평범한 주부라고 소개하는 한 분이 녹색연합에 전화를 걸어왔다. “최근 원자력이 청정에너지라는 광고가 많이 나오는데요. 그럼 원자력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건가요? 사고가 나도 사람들이 다치지 않거나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건가요?” 이 질문이 바로 핵심이다. 원자력에너지는 안전하지 않으며, 핵폐기물을 양산하고, 고갈되는 우라늄 자원에 의존한다. 게다가 원전 부지 선정과 대규모 송전탑 건설은 각종 사회·환경적 갈등을 낳는다.

한국의 원자력 수출이 걱정되는 것은 원자력 신화의 확산이다. 원자력에 대한 어떠한 비판적 관점도 수용하지 않은 채 양적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재생가능에너지산업’이다. 중앙집중식 대규모 원전과 재생가능에너지는 양립할 수 없다. 에너지 생산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부분이 커질수록 재생가능에너지는 원전을 꾸며주는 장식품으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 투자하고 생산을 확산하는 데 반해 우리는 원자력에너지로 퇴행하고 있다. 유독 한국에서만 확대 재생산되는 ‘원자력 르네상스’가 걱정스럽다.

이유진|녹색연합 에너지기후변화팀장

12월 30일 경향신문 기고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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