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하인버그의 <미래에서 온 편지>

2010.07.12 | 탈핵

책이나 영상매체를 통해 어떤 사람을 자주 접하다 보면 마치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겐 리처드 하인버그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인류가 직면한 에너지 위기를 경고하는 책과 다큐멘터리에 어김없이 등장해, 간결하고도 명확한 언변으로 ‘석유정점’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먼저 번역된 그의 책 <파티는 끝났다>는 석유의존을 끝내는 방법은 오로지 자발적이고 조직적으로 석유 생산과 수입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담배대신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번에 번역된 <미래에서 온 편지>는 에너지만이 아니라 문화, 기술, 언어, 농업 등 다양한 측면에서 석유정점 이후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에 대한 통찰력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원제는 굳이 번역하자면 ‘모든 것들의 정점(Peak Everything)’이라고 할 수 있다. 화석에너지 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이 정점이 다다랐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안은 한가지일수 없다.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기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회 시스템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11가지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2009년 제15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가 열린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수많은 NGO들이 외친 구호는 “기후를 바꾸지 말고, 시스템을 바꾸자(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였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바와 일맥상통한다.

현 세대의 어리석음, 미래세대의 분노

이 책의 백미는 첫 번째 이야기 “미래에서 온 편지”에 담겨있다. 2107년 미래를 사는 이가 2007년 현재로 보낸 편지. 2107년은 석유파티가 완전히 끝난 이후의 사회이고, ‘모든 것들의 정점’이 현실화된 사회에서 한 생존자가 보낸 것이다. 석유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는 첨단과학 기술로도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일단 화석에너지가 고갈되자 이미 석유에 중독된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무엇으로도 채워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극심한 에너지 부족은 경기침체와 통화쇼크를 가져왔고, 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되었다. 결국 사람들은 에너지 위기 이전에 만들어놓은 물건들을 끝없이 재사용해야 했고, 깨끗한 물과 식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 정도는 피크 오일 이후에 나타날 현상으로 지금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내용들이다. 충격적인 이야기는 다음 부분이다.

“내가 십 대 후반이 되자 젊은 사람들 사이에 눈에 띄는 감정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30~40세 이상 나이 든 사람들에 대한 경멸감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자원을 모두 써 버렸고 자식들을 위해 남겨 놓은 것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 어른들이 젊었을 때 그들은 그저 다른 사람들 하는 대로 했을 뿐이지요. (중략) 어떤 곳에서는 세대 간 싸움이 부글부글 끓는 원한으로 남아 있었고, 다른 곳에서는 나이 든 사람들을 함부로 공격했습니다. 또 어딘가 에선 조직적인 숙청도 벌어졌습니다. 말하기 부끄럽습니다만, 나는 나이 든 사람을 직접 공격한 적은 없어도 욕설을 퍼붓고 창피 주는 일에 가담한 적은 있습니다. (중략) 내가 살고 있는 2107년의 젊은이들을 화나게 하는 방법을 하나 알려드릴까요? 그들에게 예전엔 사람들이 잔디에다 수백만 갤런의 물을 계속 퍼부었다는 애기를 해 주면 됩니다. 내가 그들에게 수세식 변기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설명하면 그들은 분노를 참지 못합니다. 어떤 친구들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날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지금 물 문제는 심각합니다.”

자원을 모두 써버렸다는 이유로 경멸의 대상이 된 나이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섬뜩했다면 실은 우리가 지금껏 자연보전을 이야기할 때 단골로 ‘미래세대’를 언급해왔지만, 정말로 진지하게 그들의 권리와 그들이 써야 할 자원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이 박탈당하는 것은 단지 아름다운 자연이라고 생각했지, 파괴된 자연과 낭비한 자원으로 인해 미래 세대들의 생존을 좌지우지할 정도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이 대목에서 한반도에 살고 있는 현 세대들은 매우 긴장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라면 다음 세대들에게 세계 10위의 에너지 소비국에 철강, 선박, 석유화학중심의 에너지다소비형 산업구조를 유산으로 남기게 된다. 거기에 더해 계획된 대로라면 2022년까지 12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추가해 모두 32기의 원자력발전소를 넘겨주게 된다. 원자력발전소는 특히 미래 세대들에게 부담을 많이 지우는 에너지 생산 방식이다. 현 세대들은 전력생산으로 인한 이득을 취하지만 미래 세대들은 노후하고 고장이 잦은 원자력발전소와 고준위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에너지문제만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0년 5월 5일 어린이날. 10대들로 이뤄진 아이들이 서울행정법원에 미래세대가 향유할 갯벌을 파괴하는 새만금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새만금 간척사업 시행인가 취소 청구소송’을 냈다. 아이들이 갯벌을 잃은 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소송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가 적격하지 않다며 1년여 만에 소송을 각하했다. 10년이 지난 올해 4월 27일, 새만금방조제 준공식을 열렸고, 성인이 된 아이들은 33km의 방조제에 막힌 갯벌과 바다를 보며 원망과 분노의 탄식을 삼켜야했다. 며칠 전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100년 동안 한반도의 해안선이 약 4분의 1가량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1910년 7569㎞이었던 해안선 길이가 2010년 5620㎞로 1949㎞ 줄어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바다는 막고, 강은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고 있다. 4대강 사업이 이대로 진행되도록 방치한다면 우리는 미래 세대들에게 정말로 뭇매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세대가 한반도에서 자행하고 있는 환경파괴의 현장을 떠올리며, 100년 뒤 미래에서 어떤 편지가 날아올지를 생각하니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리처드 하인버그는 피크오일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 생애를 사는 도구들, 오천만의 농부, 포스트탄화수소 시대의 미학, 제대된 정의에 따라 실현하는 지속가능성, 앵무새와의 교감, 유린타운의 교훈이라고 이야기한다.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의 제목인데, 제목만으로도 지은이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독자적 생애를 가진 도구들

하인버그는 먼저 기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석유는 인간의 식량 획득 수단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육아에서 정치, 문화, 경제, 그리고 개인적 꿈까지 인간사회의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그렇기에 더욱 석유정점은 인간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줄 것이다. 우리 일상을 지배해온 기술과 기계들이 작동하지 않을 때 그 때 유일하게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에너지가 없어도 유용한 물 펌프, 농장도구와 목공 도구를 포함한 도구의 사용법과 수리법을 가능한 한 많이 익히고 배우는 것이다. 그 때 또 빛나는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독자적 생애를 가진 도구들이다. 도구가 독자적인 생애를 산다는 것은 그 도구를 만들고 또 도구를 작동하는데 에너지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제작하고 사용하는데 모두 외부의 에너지공급이 필요한 도구들로 가득 차 있다. 증기기관, 내연기관, 제트엔진, 핵원자로, 수력발전터빈 같은 것이다. 날로 발전한 과학기술은 인간의 삶을 넘어서 저기 우주 밖으로 향해있다. 나로호 발사는 위대한 것으로 칭송하지만 적정기술은 가난한 나라에서나 필요한 기술이라며 조소한다. 핸드폰은 돌아서면 새 제품이 나와 소비자를 바보로 만들고 있고, 텔레비전은 3D 입체영상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아이폰은 터치 하나로 전 세계를 연결하지만 정작 바로 옆에 있는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는 단절시킨다. 전자마트 쇼윈도에 비친 반짝이는 전자제품과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빨리 달리는 차는 석유나 에너지가 없으면 그냥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 요즘 세상은 이상하게도 독자적인 생애를 살고 있는 도구들에게도 전기에너지를 주입시킨다. 팔 힘으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도 전동칫솔과 비데로, 또 손수건이면 될 일도 핸드드라이기로 바꿔 놓았다. 기타도 전기가 있어야 연주할 수 있고, 헬스클럽에서 사람들은 에어컨을 틀어놓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전기로 작동하는 러닝머신 위를 달려 땀을 흘린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인간은 지금 에너지로 움직이는 기계를 섬기고 있다. 그렇게 우리가 신봉하는 기계들이, 에너지를 더 빨리 소모시키면서 우리는 더 빨리 정점으로 다가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의 자각을 통해 이 기계들의 전원 스위치를 끌 수 있을까?

생존의 기술, 농사

하인버그는 연료부족, 농부 부족, 깨끗한 물 부족, 기후변화 등으로 가까운 미래에 기아가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우리는 지금 석유로 농사를 짓는다. 그렇게 지은 농산물은 또 먼 거리를 이동한다. 현대 농업 문제를 다룬 책 중에서 잊히지 않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에서는 스페인과 독일을 잇는 고속도로에서 난 교통사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로 맞은편 도로에서 달려오던 두 대의 트럭이 정면충돌했다. 충돌의 충격에 싣고 있던 짐이 고속도로 바닥에 쏟아졌는데, 놀랍게도 두 트럭이 똑같이 토마토를 싣고 있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스페인과 독일 두 나라가 토마토를 생산할 수 있다면 굳이 국경을 넘나들 필요 없이 생산한 곳에서 소비하면 될 텐데 말이다. 바로 가격경쟁 때문이다. 10원이라도 싼 가격을 찾아 식품은 먼 거리를 여행한다. <로컬푸드>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살리나스밸리에서 자라 약 5,000㎞ 떨어진 워싱턴까지 대륙을 횡단하는 상추이야기도 나온다. GMO도 큰 문제이다. 캘리포니아 대학 소비자연구소 소장인 로버트 소머즈는 고속도로에서 갓 수확한 토마토를 몇 미터 높이로 적재한 18륜 트레일러 뒤를 따라 운전한 적이 있었다. “트레일러가 시속 90킬로미터로 모서리를 돌자 토마토 몇 개가 트럭 위에서 떨어졌는데, 도로에 맞고는 튀어 오르는 겁니다.” 그 기묘한 장면을 목격한 이후로 그는 자신의 농업연구 방향을 대안 농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초의 유전자 변형 먹을거리는 1994년 미국 칼진사가 저장 기간을 늘리기 위해 잘 무르지 않게 개발한 토마토였던 것이다.

하인버그는 쿠바의 사례를 들어 석유 공급이 끊겼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고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1990년대 초 소련 붕괴로 값싼 석유공급처를 잃은 쿠바는 지역화된 노동집약적 유기농법으로 바꿔서 식량위기를 벗어났다. 쿠바는 도시농업을 통해 도시에서 필요한 채소의 50~80%를 자급할 수 있게 되었고, 사회에서 농부는 중요한 직업으로 대접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똑같은 위기를 경험한 북한은 지금도 심각한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석유의존의 식량체제를 재조직할 수 있는 준비를 해온 쿠바와 그렇지 못한 북한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쿠바와 북한의 사례를 보면 지금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부터라도 농업을 지속가능한 영속농업과 생명집약농으로 전환해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농부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농사의 기술을 읽히고 농촌을 일궈야 하는 것이다. 귀농, 이것은 우리사회에서도 아주 오래된, 지속가능한 농업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화두이다. 우리들의 지혜로운 여성농민(여성농민회총연맹)들은 에너지위기 시대에 대안은 기계에 의존하지 않는 ‘소농’이며, 기후변화 시대 대안은 ‘토종 종자 지키기’라고 답을 한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생존의 농업을 위해 우리는 석유 없이 농사를 짓는 법, 스스로 자신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법, 씨앗과 땅을 돌보는 법을 익혀야 한다.

유린타운의 교훈 – 맬서스는 틀렸는가?

하인버그는 그가 본 뮤지컬 <유린타운>을 통해 어떤 정치적 신념을 가졌건 간에 ‘생태적 한계’를 인식하지 않으면 그 이념은 껍데기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줌마을`이란 뜻의 <유린타운>은 심한 물 부족 때문에 개인 화장실이 금지된 가상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정부는 <유린굿컴퍼니>라는 기업을 만들어 사람들이 돈을 내고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한다. 그러나 요금이 점점 오르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리현상인 용변을 보는데도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의협심 많은 청년 바비가 <유린굿컴퍼니>의 악덕기업주 클래드웰을 몰아내려고 주도하지만 그는 살해당하고 만다. 결국 바비와 연인 사이였던 클래드웰의 딸 호프가 아버지를 몰아내고, 사람들은 마음껏 배설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다면 보통 사람들이 폭압적인 기업을 물리친 정의로운 성공담이지만 결론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유린타운>의 생태학적 한계를 넘어선 오염으로 인해 죽고 만다. 호프는 “생태학적 한계 경고를 무시하고, 단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만을 원했다”는 것이다. 뮤지컬의 마지막 노래는 “맬서스 만세!”라는 외침으로 끝이 난다.

맬서스는 한계 없는 세상을 원하는 좌파와 우파 양쪽으로부터 배척당한 인기라고는 전혀 없는 경제학자이다. 그런데 우리가 맬서스로부터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은 ‘수용능력’에 관한 것이다. 맬서스는 《인구론》(1798)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말하고 “인구증가가 빈곤 ·악덕 등 사회악의 원인이 되므로 식량에 맞도록 인구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석유를 통한 ‘녹색혁명’을 이룩한 인류는 “맬서스는 틀렸다”라며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화석연료가 사라지고 난 이후에도 맬서스의 주장을 지금처럼 폄하 할 수 있을까? 하인버그가 유린타운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생태학적 한계에 대한 각성이 없는 인권, 나눔, 평등의 윤리는 재난의 무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든, 자유주의자든, 진보주의자든, 이제는 기본적으로 생태학적 한계를 바닥에 깔고 사상을 발전시켜야 한다. 하인버그는 우리가 맬서스가 경고하는 상황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평화, 민주주의, 인권을 유지하기 위한 생태학적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구를 안정적인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석유정점과 기후변화는 왜 어려운 문제인가?

인류는 지금 인간의 화폐 가치로는 값싸지만 남용의 대가는 너무나 큰 석유를 엄청나게 소비하고 있다. 석유정점과 기후변화의 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지만 여전히 사용량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리차드 하인버그는 석유정점과 기후변화의 심리학이라는 장에서 “왜 많은 사람들이 석유정점과 기후변화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묻고 답한다. 우선 인간은 당장 위험에 직면했을 때는 싸울 것인지 도망칠 것인지 즉각 판단하지만 직접 느끼기 어렵고 천천히 발전하는 문제에는 효과적으로 반응하지 못하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석유정점이나 기후변화에 대해 감지했을 때 인간이 가장 자주 나타나는 첫 번째 반응은 바로 ‘부정’이라고 한다. 재미있게도 하인버그 자신도 석유 고갈 문제를 연구하면서 부정, 분노, 타협과 우울을 경험한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마치 죽음을 앞둔 인간의 감정과도 비슷하다. 그래서 그는 환경철학자이며 불교학자인 조애나 매이시를 소개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인간과 지구의 파괴에 대해 느끼는 비애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부정하지 않고 창조적으로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수용’ 다음으로 ‘행동’을 제시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석유정점과 북극곰의 멸종, 빙하가 녹아내리는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식량 시스템, 자동차 협동조합,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해 활력과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만이 있다. 다가올 미래의 두려움에 절망할 것이냐 알고 난 후 행동할 것이냐.

그러나 ‘풍요’의 시대에 닥쳐올 미래를 대비해 ‘빈곤’을 선택하자고 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한 번은 기후변화 강의를 마치고 난 후에, 중년의 나이로 보이는 수강생이 이런 말을 한다. “어렸을 때는 무엇이든 부족했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무엇이든 아꼈지요. 그때는 아껴 쓸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에너지든 물건이든 쓸 수 있는 능력도 되고, 그걸 사용하면 훨씬 더 편하다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 스스로 줄이기는 쉽지가 않아요.” 나는 그 분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자발적 가난과 불편을 택하지 않으면, 지금 상황에서 파국을 피할 수 없지 않겠냐고, 저성장이나 마이너스 성장을 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 할 수밖에 없었다.

석유정점과 기후변화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문제는 정보만으로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동기를 부여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안 모델이 필요하다. 더불어 롭 홉킨스와 로버트 허시 같은 이들은 석유정점과 기후변화 문제에 맞서기 위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에 맞먹는 대규모 동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이 주제로 그런 동원이 가능한 것일까? 이 질문과 더불어 이 책의 아홉 번째 글인 석유정점과 기후변화 운동 사이의 마찰과 논쟁에 대한 글은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기후변화 말고는 석유정점에 대해 운동하는 그룹이 활발하게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두 그룹 사이의 세밀한 논쟁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 지방선거는 물론 어떤 정치선거에서도 석유정점과 기후변화 문제는 논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 우리만큼은 회의적인 건 아니지만 하인버그도 그 가능성을 매우 희박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그는 이야기한다. “우리가 살아서 숨 쉬고 있는 한 그 목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나는 “창의적인 농부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에는 참으로 맛깔 나는 조한혜정 교수의 ‘추천사’가 담겨있다. 그는 이 책을 “베이비 붐 세대인 할아버지들이 손자를 위해 읽어야 할 책”으로 소개한다. 그리고 이 책의 번역자가 건설세대인 아버지와 근대 절정기에 자란 딸에 의해 번역되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종종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며,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은 바뀔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무책임한 말이다. 지금 현재 경제적 부와 권력과 지혜를 가진 어른들이 바뀌지 않으면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줄 미래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석유로 쌓아 올린 우리 문명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에피메테우스. 미래를 예측해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형 프로메테우스에 가려져 역사 속에서 늘 후회하고 되돌아보는 이로만 기억되는 무능한 신. 하지만 ‘불’로 상징되는 ‘에너지’를 가진다는 것이 영원한 번영과 행복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은 “지금 필요한 건 앞을 내다보는 프로메테우스가 아니라 뒤를 돌아보는 에피메테우스의 지혜와 성찰이다!”라고 말한다.

농업 코뮨과 환대의 사상가로 불리는 피터 모린(Peter Maurin)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부유해지려고 하지 않으면 모두가 부유해질 것이다. 모두가 가난해지려고 하면 아무도 가난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더 쉽게 선해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사회 구조를 좀 더 쉽게 에너지를 덜 쓰고,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는 사회로 전환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한” 모두가 덜 가지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일이 꼭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미래에서 온 편지’에는 화석연료 고갈 이후 인류가 처한 고난을 이야기하면서도 얻은 것도 있다고 말한다. 지역공동체가 발전하고, 인간이 문명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영성을 존중하고 시간을 온전히 누릴 줄 아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바로 인간이 타자를 위한 존재임을 이타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존재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과학기술이 우주를 여행하는 시대를 열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과학으로 아직 무당벌레 하나, 나뭇잎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다. 생명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명이 가진 가능성을 믿고, 그 믿음위에 생명의 질서를 회복해 나가야 한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문화가 화석연료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를 일궈야 한다. 그렇게 사회를 전환해 가려면 이 시대의 시민은 역사가가 되고, 농부가 되고, 엔지니어가 되고, 시민운동가가 되어야 한다. 이건 조한혜정 교수의 말이기도 하다. 그는 또 우리 아이들이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지속가능한 인류의 삶을 위해 ‘농부의 삶’, ‘가난한 의사’와 ‘생활 속의 과학자’가 되도록 응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책을 덮고, 한번 생각해 본다. “시민운동가로는 살고 있고, 역사는 공부를 하고, 엔지니어는 조금 자신이 없고, 그렇다면 나는 창의적인 농부는 될 수 있을까?”

이유진 (녹색연합 정책위원)
서평 – 녹색평론 2010 7-8 1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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