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의 통제? 정보의 통제!

2011.04.10 | 탈핵

35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이 살 수 없는 체르노빌은 핵발전소 폭발사고의 피해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얼마나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되는지를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체르노빌의 교훈을 잊어버렸다. 아니 과학기술이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며 애써 외면했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은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가? 이번 후쿠시마 핵발전 폭발 사고는 과학기술이 위험을 통제할 수 없음을 다시금 입증했다. 아니, 우리는 이미 여러 사고를 접하며 과학기술이 위험을 통제할 수 없음을 안다. 작게는 자동차 급발진 사고에서 인도 보팔 참사, 컬럼비아호 폭발사고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이 위험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인간의 실수로 치부하거나 천재지변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현대사회가 과학 기술을 맹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대과학에서 불확실성 원리는 모든 주요 이론의 배경이 되는 핵심이론이다. 자연과학이 불확실성을 핵심이론으로 삼기에, 자연과학을 응용한 공학이나 기술에 불확실성은 반드시 존재한다! 이 불확실성을 낮추고자,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 시나리오에 따라 대응 방안을 세울 뿐이다. 이번 후쿠시마 핵발전 폭발사고는 대비책으로 세운 시나리오 역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핵발전소처럼 통제하기 어려운 위험 시설이 집중되었을 때 사고가 얼마나 더 악화되는지도 이번 사고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비상상황은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어 발생가능한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하게 하기보다, 눈앞에 벌어진 일을 처리하는데 급급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 폭발 이후, 2, 3, 4호기의 연쇄적 사고를 부른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할까?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 인근에 이미 5기의 핵발전소가 운전 중이며, 이후 5기의 핵발전소가 더 건설될 예정이다. 만약 고리에서 어떤 비상상황이 발생한다면, 후쿠시마처럼 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리고 그에 따른 혼란과 방사선 피폭 피해는 후쿠시마의 규모를 훨씬 초월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안전하다는 말만 고장난 녹음기처럼 되풀이한다. 무조건 안전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불신을 키워 불안을 증폭시키거나, 안전 불감증을 조장할 뿐이다. 문제는 언론의 보도 행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대형사고가 터지면 안전 불감증이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을 일삼는 언론이 비판적 시각으로 핵발전소가 갖는 위험을 꼼꼼하게 짚어내기보다, 앵무새처럼 정부의 말, 핵마피아의 말을 그대로 되뇌는 것은 매우 실망스런 일이다.

위험은 통제될 수 없다. 정부가 우리나라 핵발전소가 안전하다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안전하다는 말이다. 예측을 조금이라도 벗어난 순간, 우리나라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같은 대재앙에 직면할 수 있음을 정부도 전문가도 부인하지 않는다. 아니 부인할 수 없다. 위험을 통제할 수 없기에 위험에 대한 정보를 통제한다. 그것은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에 대해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정보를 어떻게 제공하는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일본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모든 국가의 행태이다. 위키리크스의 파급력이 이를 반증한다.

현대사회, 특히 한국 사회는 위험에 대해 경제적, 과학적 접근만을 시도한다. 이는 돈이 최고라는 천박한 가치관과 함께 과학에 대한 맹신이 가져온 한계이다. 위험을 과학적 논쟁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가치평가에도 부합해야 한다. 소비지상주의가 불러오는 위험이 현대사회를 어떤 공포로 몰아가는지, 그에 따라 인간의 삶은 어떻게 제한되는지를 돌아볼 시기다. 이번 사고를 통해 이웃 일본과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핵발전 위험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핵과 살아가야 하는 공포를 미래세대까지 떠넘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미디어오늘 지면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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