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에 핵발전소 세울 수 있을까?

2011.08.03 | 탈핵

서울 인구 10,488,327명. 이 많은 시민들이 사용하는 전력의 99.98%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것이다. 당인리 화력발전소에서 겨우 0.02%를 생산한다. 그래서인지 서울 사람들은 전기를 생산하느라 타 지역에서 겪고 있는 구체적인 고통에 대해 잘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서울의 전력소비는 1990년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우리, 이렇게 둔감해도 되는 것일까?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핵에너지의 안전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구상에 체르노빌급 핵발전소 사고는 다시 안 일어날 줄 알았는데, 핵관련 안전기술 선진국인 일본에서 사고가 터졌다. 대기 중에 방출된 방사성 물질이 반감기를 거쳐 사라지기까지는 엄청난 세월이 걸린다. 플루토늄 반감기는 24,000년이다. 하늘, 땅, 바다는 물론, 먹을거리를 오염시켜, 결국 인간이 영향을 받는다. 체르노빌 사고도 25년이 지났지만 당시 소개당한 주민들은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후쿠시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사용 전력의 34%, 즉 3분의 1을 핵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 영광/고리/월성/울진핵발전소 21기에서 생산한 것이다. 정부는 2024년까지 13기를 더 지어 그 비중을 48%까지 높이겠다고 한다. 물론 추가해서 짓는 핵발전소가 서울에 들어서는 일은 없다. 일단 땅값이 비싸고, ‘핵발전소’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믿는 신념에 찬 정치인들도 1000만 표가 왔다 갔다 하는 서울에 ‘핵발전소’를 짓자는 무모한 제안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 시민들은 마음 놓고 있어도 될까? 그리고 서울 아닌 다른 지역에 짓는 것은 괜찮은가?

일본영화 <도쿄핵발전소>는, 도쿄 도지사가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핵발전소 유치 선언을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핵발전소 유치를 고집하는 도지사 대사 속에 역설적이게도 핵발전소 중심의 전력체계가 가진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핵발전소 도쿄 유치 이유는 “도시에서 전기를 많이 쓰기 때문에!”, “지방에 대형발전소를 지으면 자연을 파괴하고, 철탑으로 경관을 훼손하기 때문에!”,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등이다.

다 맞는 말이다. 실제 핵발전소로 인한 지역의 고통은 극심하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지역 어민들은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온배수 때문에 “돈 뜨러 가자”는 노래를 부르며 그물을 거뒀다는 칠산앞바다 황금어장이 망가져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경상남도 ‘밀양’주민들은 향후 수도권까지 연결될 대형송전탑 길목에 자리 잡아 3년째 대형철탑 반대 투쟁을 하고 있다. 한편, 정부 지원금의 달콤함 때문인지 경북도지사는 동해안에 ‘원자력 클러스터’를 조성해 수십 년간 먹고 살 거리를 만들겠다고 선포하고 나섰다. 2011년 6월 핵시설을 둘러싼 대한민국 자화상이다.

핵발전소가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남 일이라 생각하는가? 후쿠시마사고 이후 240km나 떨어진 도쿄의 수돗물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방사능은 병원 뢴트겐사진에 찍힐 정도이다. 이미 하수처리장 같은 곳에서 ‘고오염구역’이 발생하고 있다. 방사선에 직접 피폭되지는 않더라도, 물이나 식품을 통해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 땅에 핵발전소 1기라도 줄이는 게 우리가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이 늘어나면 결국 지역에 핵발전소를 1기씩 늘리는 구실을 준다. 주위를 둘러보자. 낭비되고 있는 전력이 있다면 지금 당장 스위치를 내리고 콘센트를 뽑는 일부터 해야 한다. 서울에서 전기 소비를 줄여야 핵발전소를 덜 짓는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서울 시민들이 에너지문제에 대한 정치의식을 갖는 것이다. 핵에너지중심 정책을 전환할 수 있도록 정치의제로 만드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은 2022년까지 핵발전소 운영을 멈추기로 했다. 독일은 1970년대 중반부터 시민사회의 끈질긴 반핵 운동, 1979년 녹색당 창립, 1983년 녹색당 의회 입성, 1998년 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립 정부 탄생에 이르기까지 정치세력화의 과정과 함께 했다. 그렇게 탈핵의 신념을 가진 정치인들이 1990년 ‘전력매입법’, 2000년 ‘재생에너지법’, 2008년 ‘재생열법’을 만들었고, 재생가능 에너지는 핵발전소가 멈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우리도 탈핵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

한국만큼 핵발전소 가까이서 밀집해 사는 나라도 없다. 이 좁은 땅에서 한번이라도 대형핵사고가 나면 한반도 어디든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강변은 물론, 이 땅 어디든 핵발전소가 더 생겨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나아가 “핵 없는 세상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탈핵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움직여야 한다. 핵발전소 지역뿐만 아니라 핵발전에 무심하게 의존하고 있는 서울 시민들이 함께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탈핵! 쉽지 않지만 우리가 반드시 가야할 길이다.

글 : 이유진 (녹색에너지디자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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