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G] 비밀은 위험하다

2017.03.13 | 유해화학물질

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뉴스 링크와 함께 분노의 톡을 보내온다. 육아 필수품으로 애용하던 아기 기저귀에서 발암물질 다이옥신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에 대한 충격이 담겨 있다.

친구는 잔뜩 쟁여놓은 그 기저귀를 환불 받으려고 피앤지(P&G) 소비자 상담실에 전화를 했지만, 다이옥신은 제품 공정과정에서 사용되는 성분도 아니며 극소량이 검출된 거라 인체에 무해하기 때문에 환불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소관부처에서 샘플 조사에 착수했지만, 그 결과가 어떻든 찜찜함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위해우려제품ⓒ환경부

위해우려제품ⓒ환경부

다이옥신이니 프탈레이트, 트리클로산 같은 물질들에 대해 일상에서 친구와 이야기하는 날이 올 줄 예전에는 몰랐다. 먹을거리나 생활용품을 제조­유통하는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나오더라도 어쩌다 한 번 발생한 사건이라 여겼다. 슈퍼마켓과 대형마트,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구입하는 생활용품이 사람을 위협할 거라 의심하지 않았던 건,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으리라. 기업 윤리라든가, 정부가 최소한의 안전 관리 프로그램을 작동시켰을 거라는 통상적인 믿음 말이다. 평상시에 길을 걸으며 땅이 무너질까봐 걱정하지 않듯, 우리는 세상이 내놓은 메뉴판의 물건들을 의심하지 않고 구입했을 뿐이다. 땅은 무너졌고, 그제야 땅의 견고함에 대한 우리의 믿음도 함께 무너졌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기업의 탐욕과 정부의 무능이 빚어낸 대형 참사였다. 사건이 알려진 것은 2011년이지만, 제품을 판매한 1998년 기준으로 대략 20년이 지났고 그동안 이 제품은 아무 통제 없이 사용되었다. 환경단체에서는 기간과 구매 이력에 근거해 잠재적 피해자를 약 30만에서 200만 명까지 추산한다.

→ 2016년 말 기준 환경부 피해 접수인원 5,431명(이중 사망자 1,112명). 현재 4차 피해신고 접수 중. 정부의 폐 손상 판정 기준에 의해 인정된 피해자 276명(이중 사망자 116명)

ⓒ최규석

ⓒ최규석

“저희 회사는 프랑스 회사고,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최규석의 웹툰 ‘송곳’에 나오는 대사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대표적인 가해 기업 옥시 레킷벤키저에도 이 대사를 적용할 수 있다. 영국 기업인 레킷벤키저가 영국에서도 이런 제품을 팔았을까? 그렇지 않았다. 기업과실치사법이 있는 영국에서는 엄격한 안전 기준을, 안전 규제가 미비한 한국에서는 그에 맞춘 이중기준을 적용했다.

옥시는 2000년 초 독일 전문가로부터 살균제 원료성분의 ‘흡입독성’을 경고하는 이메일을 받고도 이를 묵살했으며, 2011년 가습기 살균제에 유해한 성분이 있다는 정부 발표 이후 RB코리아로 회사 이름을 바꾸었다. 작년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피해자 문제를 축소­은폐하려는 옥시의 행태뿐만 아니라 그에 공모한 국립대 교수, 국내 최대로펌 등 ‘내부자들’이 밝혀졌다.

우리동네 위험지도 2.0

 
다시는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겪지 않기 위해,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 우리의 믿음을 복원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항균, 탈취 기능이 강조된 제품들은 인체에도 해로운 경우가 많으니 사용을 자제하라는 전문가 조언이 있다. 천연물질로 세제와 화장품을 만들어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하루 평균 200종 이상의 화학물질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그러니 무엇보다 생활 속 화학물질 위험정보를 찾아 꼼꼼히 체크하는 게 필요하다. 어떤 제품을 믿고 쓸 수 있을지, 나의 주거·업무 공간 주변에 위험한 화학물질을 다루는 곳은 없는지 일단 알아야 한다.

ⓒ일과건강

ⓒ일과건강

생활 속 대부분의 화학물질 위험정보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무료 앱이 있다. 전국 27개 노동·환경·여성·소비자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알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사무국 ‘일과건강’에서 제작한 ‘우리동네 위험지도2.0’은 어린이 제품, 어린이집, 생활화학제품, 개인의료로 인한 방사능 피폭량, 전국 사업장 유해물질 취급량 등 5가지의 우리주변 화학물질 위험정보를 제공한다. 어린이용품과 생활용품 600여 개에 납, 카드뮴, 프탈레이트, 향 알러젠 등의 발암물질이나 환경호르몬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 제품이미지와 함께 보여준다.

내가 서있는 곳을 중심으로 반경 500m, 2km, 5km 내 사업장의 연간 유해물질별 취급량과 물질 유해성 정보를 확인할 수도 있다. 2년 전 초기 앱에서는 전국 사업장 유해물질 정보의 20%만 확인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95%에 해당하는 정보가 제공된다. 구미 불산 누출사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겪으며 화학물질관리법이 개정되어 국민알권리가 확대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화학사고로 인해 커다란 희생을 치렀고, 시민들의 불안·분노·변화에 대한 열망이 관련 법제도를 조금씩 바꾸었듯, 사회 공공성을 세우고 지키는 작업에 우리가 직접 나서야하지 않을까? 각종 유해물질에 대한 영업비밀이 사라지고, 안전성이 입증된 제품만 사회에 유통되는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 말이다.

작성: 신수연 (녹색연합 평화생태팀)
# 이 글은 빅이슈 151호 <플랜G>에 게재되었습니다.

우리동네 위험지도 2.0 소개 영상 https://youtu.be/34-9ZOVJLXg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