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부산 회의장 이모저모
[기자말] 2024년 11월, 플라스틱 오염을 끝낼 수 있을지 전 세계의 관심이 부산에 집중된다. 지난 2022년 3월,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올해 말까지 성안하기로 결의(UNEA/RES/5/14)하고 4차례의 회의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협상과정에서 플라스틱 생산 규제 등에 대한 각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의미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과연 5차 회의에서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제플라스틱협약 성안을 위해 세계 각국은 어떤 입장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는지 INC-5 회의 과정을 기사로 발행한다. |
드디어 국제 플라스틱 협약 마지막 협상 기간(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이하 INC-5) 첫 날(26일)이 밝았다. 개회가 채 한 시간도 남지 않은 아침, 협상단의 출근길이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했다. 하나 둘 회의장에 들어가는 정부 대표단과 이해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사람들은 “플라스틱 생산을 제한하라(CAP PLASTIC NOW)”는 광고가 1면에 실린 신문을 나눠주기도 하고, “플라스틱은 악마다”라며 악마 탈을 쓰고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플라스틱에 포함된 유해 화학물질이 인간 생식 능력 저하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며 플라스틱의 건강 유해성을 경고하는 이들도 있었다. 회의 장소가 한국임을 고려해 백설기 떡에 지난 40년간 감소한 정자 수 비율인 “50%”를 찍어 관련 내용이 담긴 전단과 함께 나눠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녹색연합도 여러 단위와 연대하며 목소리를 보탰다. 플뿌리연대 ⋅기후위기비상행동⋅부산플라스틱협약시민행동이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촉구하며 공동주최한 ‘스톱 플라스틱'(STOP PLASTIC) 기자회견에 플뿌리연대(플라스틱 문제를 뿌리뽑는 연대) 대표 발언자로 참여하여 1) 전 세계 국가가 지켜야 할 공동의 목표를 만들고, 2) 원료 추출 단계를 포함하여 생산 단계부터 플라스틱 생애 전 주기를 규제하며, 3) 재활용이 아닌 재사용 시스템을 우선 구축하고, 4) 오염자 부담 원칙을 따르며, 5) 제로웨이스트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노동자와 지역 사회를 보호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보장하는 협약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기자회견 발언에 더해, 회의장 입구에서 온몸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휘감은 채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과 생산 감축의 중요성을 알리는 피케팅을 진행하기도 했다.
어느새 개회 시간인 10시가 가까워져 서둘러 회의장에 입장했다. 보안 검색대를 지나 들어선 너른 회의장에서 첫 번째로 눈에 띈 건 테이블 위에 놓인 ‘일회용 컵’이었다. 회의 기간 중 ‘플라스틱 없는 부산’을 표방하며 일회용기 없는 회의장을 만들겠다던 환경부와 부산시의 포부가 무색했다.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안고 들어섰던 마음이 우려 쪽으로 좀 더 기우는 순간이었다.
INC 의장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의 개회사로 총회가 시작되었다. 의장은 정부 대표단에 “흔들리지 않는 헌신, 끊임없는 노력, 대담한 정치적 의지”를 보여달라고 주문하며 이번 회의에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 협약을 채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 잉거 안데르센은 오늘이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만들기로 한 유엔환경회의(UNEA) 결의안 5/14를 채택한 지 1,000일째를 맞는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여타 다자간 환경협약(MEA) 협상에 수십 년이 걸렸던 데에 비하면 협상이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케냐 어린이 마일스 카라우키가 “플라스틱 오염이 확산되면 우리는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물고기가 플라스틱을 먹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학비를 낼 돈이 없어질 거예요. 제발 도와주세요” 라고 적어 보낸 편지를 읽어주며, 플라스틱 오염이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잉거 안데르센은 불과 지난 달 “플라스틱 협약 내 생산 감축 논의가 ‘지성적이지 않다'”고 발언하여 시민 사회의 비판을 산 바 있어, 이번 발언에서 진정성을 느끼기 어려웠다.
환경부 장관 김완섭은 대한민국 정부 대표단으로서 연단에 올라 “플라스틱 오염이 우리를 끝내기 전에 우리가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야 한다”며 마지막 협상에 박차를 가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번 협상을 위해 모인 170개 유엔 회원국 대표단이 정말로 ‘생산 감축과 구속력 있는 국제 협약’을 만들어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염 문제 해결의 뜨거운 감자인 ‘생산 감축’을 바라보는 처지가 나라별로 다르고 그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 아라비아, 러시아, 쿠웨이트 등 산유국을 중심으로 협약 수위를 낮추는 데 골몰하는 이른바 유사입장그룹(Like-Minded Group; LMG)은 모든 결정을 만장일치로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협상이 4차례 진행되는 동안에도 만장일치 규칙을 줄기차게 요구하며 협상을 지연한 전적이 있다. 이들의 발언은 이번에도 협상 과정이 순탄치 않을 거라 예고하는 경고장처럼 들렸다.
또한 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INC 의장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가 17쪽으로 정리하여 개회 전에 회람한 협상 가이드라인(Non-Paper, 이른바 ‘비문서’)에 대한 의견도 엇갈렸다. 비문서는 77쪽에 달하는 데다 3,500여 개의 괄호로 선택지를 너무 많이 남겨둬 협약 초안으로는 논의가 어려울 거라고 예상하여 의장이 각국 의견을 수렴하여 만든 문서다. 의장은 자신이 제시한 문서는 결과물이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기초로 협상을 빠른 속도로 이어가자고 독려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대다수가 이에 동의했으나, 쿠웨이트, 바레인, 베트남 등의 국가는 원래의 초안 편집본이 협상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직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난 4차 협상 때까지 소극적이고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던 한국 정부가 생산 감축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많은 국가가 이번 협약에서 생산 단계부터 포함한 플라스틱 전 주기를 다뤄야 한다고 짚었다.
시민 84%는 생산 감축을 원하고, 또한 그 책임이 정부와 기업에 있다며 매우 간결하고 명확한 요구를 하고 있다. 플뿌리연대⋅플라스틱협약부산시민행동⋅BFFP가 지난 23일 공동 주최한 ‘1123 부산 플라스틱 행진’에 참여한 전 세계 시민 1,500명의 요구도 이와 같았다. 생산 감축 없이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할 길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제 막 시작한 국제 플라스틱 마지막 협상장에 모인 모든 정부 대표단이 이 점을 인식하고 플라스틱 문제를 뿌리 뽑기를 바란다.
* 이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omn.kr/2b51x
* 문의) 녹색사회팀 유새미 활동가 (070-7438-8513, jazzygreen@green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