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쉬운 INC-5 폐막… 강력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 요구하는 기립박수 이어져
[기자말] 2024년 11월, 플라스틱 오염을 끝낼 수 있을지 전 세계의 관심이 부산에 집중된다. 지난 2022년 3월,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올해 말까지 성안하기로 결의(UNEA/RES/5/14)하고 4차례의 회의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협상과정에서 플라스틱 생산 규제 등에 대한 각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의미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과연 5차 회의에서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제플라스틱협약 성안을 위해 세계 각국은 어떤 입장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는지 INC-5 회의 과정을 기사로 발행한다. |
12월 1일 일요일,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성안하기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의INC-5)의 폐회가 24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금요일부터는 옵저버의 참관을 제한하여 협상의 결과를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회의가 3일째 이어져오고 있었다. 벡스코에 마련된 UNEP 미디어룸은 아침부터 북적였다. 국내외 16개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플뿌리연대가 기자간담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기자간담회에서 플뿌리연대는 INC-5 개최국인 한국 정부가 플라스틱 생산감축을 포함하는 협약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말했으면 행동으로 보여라
한국 정부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앞두고 이미 플라스틱 생산감축의 의지를 내보인 바 있다. 지난 11월 4일 기자간담회와 28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완섭 환경부장관은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에 있어 한국 정부 대표단이 플라스틱 생산을 감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25일 INC-5 개회식에 이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민영 외교부 기후환경과학외교국 심의관은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생산, 소비, 폐기물 관리를 포함한 플라스틱 전 생애주기를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과는 달리 협상 과정에서 플라스틱 생산감축에 대한 한국 정부의 행보를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 4월에 진행되었던 INC-4 후반에 발표된 ‘부산으로 가는 다리: 1차 플라스틱 폴리머에 대한 선언(Bridge to Busan: Declaration on Primary Plastic Polymers)’에 한국은 서명하지 않았다. ‘부산으로 가는 다리’ 선언문의 주요 골자는 1차 플라스틱 폴리머를 포함한 생산 감축을 촉구하는 것으로 전 세계 44개 국가가 서명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 INC-5에서 파나마와 91개국이 제출한 플라스틱 감축을 지지하는 제안서에 한국은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전체 175개 협상국의 과반이 넘는 100여 개국 이상 국가가 동의하였음에도 말이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은 생존을 위한 싸움이다
플뿌리연대의 기자간담회에 이어 파나마를 대표로 르완다, 멕시코, 유럽연합, 프랑스, 피지 등 플라스틱 생산감축을 지지하는 제안서에 의견을 모은 100개 국 이상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은 플라스틱은 편리한 것이 아니라 독(poison)이며, 제한 없이 생산되는 플라스틱 모든 조각 조각이 우리의 생명, 자연,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는 생존을 위한 싸움이기에 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협약을 추진할 수 있도록 마지막 몇시간 동안 가능한 모든 것을 다할 것이라 다짐하는 말도 덧붙였다. UNEP 미디어룸은 취재 열기로 뜨거웠다. 생산감축을 통해 플라스틱 오염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시민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도 함께였다.
약한 협약은 없느니만 못하다! (Weak Treaty is Worse than No Treaty!)
협상 회의가 종료되기까지 12시간 남짓 남은 오후 1시 쯤 INC 의장의 제5차 비문서가 발표되었다. 이를 본 시민사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협약의 목적을 규정하는 ‘제1조 목적’의 수위부터 낮아졌기 때문이다. 당초 유엔환경총회(UNEA) 5/14 결의안에서 합의한 바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 협약’으로 그 목적과 성격이 분명하다.
그러나 제5차 비문서에서 제안한 목적은 ‘[플라스틱 생애 주기를 다루는 포괄적인 접근 방식을 기반으로 해양 환경을 포함한] 플라스틱 오염으로부터 인간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플라스틱 생애 전 주기를 포괄적인 방식으로 다룬다는 부분을 괄호 안에 넣은 건 차치하더라도, ‘플라스틱 오염 종식’이 아닌 ‘플라스틱 오염으로부터 인간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는 것’으로 그 수위가 대폭 낮아진 진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플라스틱 생산 및 공급을 다루는 ‘제6조 공급’ 조항도 아예 없어지다시피 했다. 이전 제4차 의장 비문서는 해당 조항을 아예 삭제하자는 1번 선택지와, 5개 세부 조항이 담긴 2번 선택지 총 2가지 선택지를 제시했었다. 그러나 오늘 발표된 제5차 의장 비문서에서 제6조 2번 선택지 내 모든 세부 조항이 괄호 안에 담겨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1~5번 세부 조항이 모두 각각 괄호 안에 갇혔다는 것은 이 조항들이 모두 살아남을 수도,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밖에도 유해화학물질은 단어 자체가 없어지고, 재정 메커니즘 또한 수많은 괄호로 뒤덮였다.
정부간 협상위원회는 협약 본래의 목적을 잊지 말라
협상 회의의 마지막 날임에도 저녁 6시가 다 되어 갈 때까지 총회 일정에 대한 안내가 없었다가 돌연 7시 30분에 총회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옵저버의 참여가 철저히 배제된 채 진행된 비공개 협상의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이라 그런지 7시에 도착한 총회장소는 이미 만석에 가까웠다. 그런데 7시 30분에 예정된 총회는 9시가 가까워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만큼 마지막까지 협상이 치열했음을 보여주는 듯해 이를 바라보는 시민사회의 마음은 무거웠다.
총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장의 말 다음 각국 대표단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때 들려온 것 futher negotiation(추후 협상), coming negotiation(다가오는 협상), INC-5.2였다. 즉, 협상이 끝났지만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성안하지 못했고 다음 협상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플라스틱 생산감축, 유해화학물질, 재원 조달 등 협약에서의 주요한 쟁점들은 여전히 남은 채로 말이다.
비록 약속한 기한 내에 협약을 만들지 못했지만 우리 모두는 이번 INC-5를 통해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는 일은 플라스틱의 생산을 감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폐막 총회 중 르완다 대표단이 “야심 찬 협약을 위해 다 함께 일어섭시다. 협약을 마무리합시다! (Let’s stand up for ambition, let’s get it done)”라고 발언하자, 플라스틱 생산감축을 포함한 강력한 협약을 지지하는 국가의 대표단과 옵저버들이 일제히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향한 우리의 의지가 꺾이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을 더이상 지체해서는 안된다. 파나마 대표단의 말처럼 우리가 적당한 타협을 위해 주저하고 있는 사이 최소 2억 3000만 톤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유입될 것이고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해양 생물들이 죽어갈 것이다. 미세플라스틱은 물, 음식, 우리 신체에 계속 침투할 것이고 미래세대 아이들의 혈류에서는 플라스틱으로 인한 독이 흐를 것이다. 협상이 미뤄졌다고 해서 우리가 직면한 플라스틱 오염이 미뤄지지 않는다. 앞으로 다시 시작할 정부간 협상 회의에서는 플라스틱으로 인한 이 위기를 타개할 강력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성안해야 한다.
* 이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omn.kr/2b7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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