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다회용 사회 구축③ 한살림부터 잇그린까지, 곳곳에서 진행중인 재사용 실험

2021.09.23 | 폐기물/플라스틱

▲  1960년대 유통되던 서울우유 유리병은 이제 추억소환과 재미를 주는 굿즈가 되었다. ⓒ 서울우유

지금처럼 플라스틱이 전방위적으로 유통되기 이전의 일이다. 우리의 일상은 원래 다회용이었다. 지금은 재미있는 추억 회상 상품이 되어 버렸지만 1960년에는 유리병에 담은 우유를 구독하고, 1987년에는 유리병에 담은 오렌지주스를 사먹고 깨끗이 씻어 재사용하는 것이 사람들의 당연한 일상이었다. 1989년 유리로 된 우유병이 사라지고, 1996년 본격적으로 대형마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그리고 2021년, 우리는 다시 다회용의 사례를 모으고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 녹색연합은 올해 3월부터 다회용 시스템 사례 조사를 통해 사내카페부터 영화관, 야구장, 골목까지, 다회용 컵 사용을 제도화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영역을 조금 더 확대해 보자. 1990년대 이전의 우리가 그렇게 살았듯 마트와 배달음식에도 다회용 시스템이 가능하지 않을까.

2009년부터 ‘병재사용운동’을 지속해온 ‘한살림’과 일터와 삶터가 밀집되어 있는 강남지역에서 배달용기의 다회용 전환을 위해 애쓰는 ‘잇그린’을 만나 다회용기의 사례와 가능성을 만나봤다.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다회용기 ‘병되살림운동’

▲ 한살림의 병재사용은 ‘되살림운동’의 일환이다.
한살림은 1990년부터 소비자와 생산-소비-분해(폐기) 과정에서 다양한 환경운동을 펼쳐오고 있으며 다회용병 말고도 우유갑, 멸균팩, 종이박스 되살림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 녹색연합

전국 77만 명(2021년 6월 말 기준)의 조합원 수를 보유한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은 2006년부터 ‘병되살림운동’을 통해 6가지 규격의 유리병을 재사용병으로 지정해 30여 품목의 빈병을 회수해 다회용병으로 사용해왔다. 지금처럼 다회용기를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이전부터 시작해 지금은 한살림의 대표 자원순환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한살림의 다회용병인 ‘재사용병’ 6종에는 쨈, 분말, 젓갈류, 장류를 담아 유통하고 있다. 조합원이 사용한 뒤 세척해 반납하면 포인트 50원을 적립해 주는 방식으로, 현재는 병의 규격과 품목을 재정비하여 70여 품목을 병재사용 대상으로 확대했다.

정부에서는 용기 값을 상품 전체가격에 포함시켜 용기를 반환할 때 돌려주는 ‘빈용기보증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쉽게 말해 편의점 등에 소주나 맥주 등의 공병을 돌려주면 돈을 돌려받는 제도다. 이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자체적으로 용기를 회수·세척·재사용하는 업체는 국내에서 한살림이 유일하다. 다회용 컵은 ‘뽀득’이나 ‘트래시버스터즈’처럼 보급하고 수거 세척하는 업체가 있지만 한살림은 안성 물류센터에 세척시설을 마련해 직접 개조한 식기세척기를 통해 세척해 재사용한다.

“친환경 과일주스를 생산하는 ‘청암농산’이라는 곳이 있어요. 거기서 2000년대 초반부터 주문제작한 유리병을 제작해 주스를 생산하고, 한살림에서 병을 회수하여 보내주면 직접 세척해 재사용해왔는데 그게 시작이었죠. 한살림에서 병을 회수해 가공식품 생산지로 보내주면 산지에서 직접 세척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다 2014년 한살림 안성물류센터에서 세척설비를 도입한 이후에 세척된 병을 산지로 보내주고 있어요. 세척 병을 까다롭게 검수하기 때문에 재사용병을 유통하며 식품사고가 발생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한살림은 자체 물류 배송체계가 있어 운송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매장에서 물품을 입고하는 배송차량을 매일 운행하는데, 이 배송차량을 통해 매장에 모아둔 병을 다시 물류센터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재사용병 운송을 위한 별도의 차량을 운행하지 않아 유류비와 탄소배출을 줄인다.

일본 생협처럼 ‘병재사용네트워크’ 구축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 한살림에서 자원순환업무를 담당하는 기후위기대응팀 이세준 차장
ⓒ 녹색연합

“일본은 생협 네 군데가 연합해서 ‘병재사용네트워크’를 구축해 공동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사업적으로 안정되어 있죠. 두레생협과 행복중심생협도 한살림 재사용병을 세척해서 함께 쓰고 싶어 하는데 기존 설비로는 한계가 있고, 병의 공동 규격화 등 과제도 있죠. 정부에서 내구성이 강하고 가벼운 유리병을 제작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세척 전문 업체를 지원하거나 육성한다면 재사용병이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있을 거예요.”

한살림 기후위기대응팀 이세준 차장은 병재사용네트워크의 큰 장점으로 ‘초경량화 병’을 꼽았다. 병재사용네트워크의 연구, 개발과 그에 맞는 설비를 도입해 만들어진 초경량화 병은 외부에 우레탄 코팅을 해 일반 유리병이 갖고 있는 무거운 무게를 보완했다. 또 초경량화 병은 파손되더라도 우레탄이 유리병을 녹이는 과정에서 분해되기 때문에 재활용도 가능하다. 이러한 초경량화 병을 전용용기로 개발한다면 국내 생협도 병재사용네트워크처럼 운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현재 한살림 병재사용 운영에 가장 어려운 점은 파손율이다. 그렇다면 내가 잘 씻어서 돌려준 병이 재사용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벨을 분리하고 헹군 뒤, 뚜껑을 분리배출하고 가져가는 것이다. 뚜껑의 녹이 입구에 달라붙어 위생의 문제로 시설에서 폐기하는 병의 개수가 의외로 많다. 누구나 병을 생산할 수 있는 공용병의 품질이 제각각인 점도 파손율을 높이는데 영향을 끼친다. 이 역시 규격화된 전용용기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 자원순환은 많이 모여야 경제성이 있는데, 현재 다회용 의지를 가진 생협 세 군데가 모여도 양이 많지 않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다. 한살림은 한국형 병재사용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설비를 마련해야 하는데 이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생협뿐 아니라 타 기업과도 협업해야 가능하다고 바라본다. 하지만 아직 국내 식품 생산·유통 기업에서 의지가 없다는 것도 한계점이다.

다양한 한계 속에서도 한살림은 연간 120만 개의 재사용병 제품을 공급하고 지난해에는 다회용 병 41만개의 재사용병을 수거했다. 한살림은 생협과 사회적 경제 주체들과 공동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연간 300만 병 이상을 세척해야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를 위해 내부 시스템을 정비하고 기존에 비닐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하던 품목을 대상으로 재사용병 적용품목을 확대할 계획이다.

지속가능한 다회용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스타트업의 시도

배달앱이 성장할수록 일회용 쓰레기가 늘어나는 시대에 ‘제로웨이스트 배달음식’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스타트업이 등장했다. 스테인리스 소재의 다회용기를 보급하고, 수거·세척하는 기업 ‘잇그린’이다. 잇그린은 기업에 점심 도시락을 배달하는 F&B업체들과 협업하는 ‘리턴잇 비즈니스’를 통해 기업과도 협업하고 있다.

▲ 리턴잇 비즈니스 서비스는 잘 차려진 도시락을 대접받는 경험을 제공하며 다회용 도시락 이용자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잇그린

“기업에 점심을 배달하는 업체들이 기존에 일회용기에 배달했을 때에는 쓰레기를 음식물과 함께 버렸기 때문에 99% 불법 폐기를 해왔다고 볼 수 있어요. 저희는 기업들에게 다회용기 도시락 제공을 ‘탄소배출 제로’로 묶어서 ESG 책임에 대응하기 위한 실행 기반을 제공하는 것으로 설득하고 있죠.”

잇그린은 올해 7월 12일부터 30일까지 리턴잇 비즈니스를 이용한 5개 회사를 대상으로 한식 도시락과 샐러드 메뉴를 다회용 도시락에 담아 제공했다. 3주간 도시락 이용자수는 2134명으로, 해당 서비스를 이용한 5사의 150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만족도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7%가 ‘다회용 도시락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84%가 ‘용기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했으며, 회수함을 통한 반납방식에 대해서도 81%가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 리턴잇 비즈니스를 이용한 회사에 설치된 다회용 도시락통 수거함ⓒ 잇그린

최근 코로나19로 많은 회사들이 근무환경을 재택으로 전환하고, 사무실 근무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회사에 출근하더라도 외부 접촉 최소화를 위해 도시락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많다. 대부분의 도시락은 일회용기에 담겨 있어 ‘식사 후 음식물 처리와 일회용기 처리에 불편함과 죄책감을 느낀다’는 의견이 많은 가운데 ‘잘 차려진 다회용 도시락’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잇그린은 다회용 도시락을 홍보하기 위해 고객업체 사내 메인 홀에서 위생관리 영상을 시청할 수 있도록 홍보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으며, 기업에 ‘탄소배출 제로’를 셀링 포인트로 내세운 만큼 도시락을 수거할 때도 전기오토바이와 전기차를 이용한다.

“다회용기 사용자 인터뷰를 해보면 일회용기보다 음식이 잘 포장되어 가니까 좋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에요. 실질적인 서비스로 보여야 사람들이 다회용에 갖고 있는 거부감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잘 해야 다회용기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홍보하거나 확장하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품질관리에 신경 쓰고 있어요.”

이준형 대표가 음식점 점주, 라이더, 세척 직원의 의견을 반영해 6번 수정을 거쳐 제작한 배달가방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냄새가 배지 않고 빨리 마르는 잠수복 재질로 만들었고, 라이더가 운반하기 좋도록 디자인했다.

▲ 이준형 대표가 음식점 점주, 라이더, 세척 직원의 의견을 반영해 6번 수정을 거쳐 제작한 배달가방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냄새가 배지 않고 빨리 마르는 잠수복 재질로 만들었고, 라이더가 운반하기 좋도록 디자인했다.ⓒ 녹색연합

“B2B(기업이 기업을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는 한번 바꾸면 대량 수요가 많아져 자리를 잡았는데 그에 반해 B2C는 수익이 나지 않아요. 하지만 결국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곳은 B2C(기업이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라 그쪽에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 강남은 생활 물류가 평균 16건 움직이는 생활권역이에요. 밀집 지역이라 임대료는 높지만 물류는 다운되죠. 이 물류를 활용하는 것으로 풀어본 것이 리턴잇 딜리버리예요. 소상공인에게 크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물류비용을 더 받으면 운영이 되는데, 이 비용을 소비자한테 과금해야 하는데 ‘친환경이니까 돈을 더 내라’는 건 설득력이 없으니 서비스 비용을 받는 것으로요.”

잇그린이 준비중인 B2C 서비스인 ‘리턴잇 딜리버리’는 배달앱을 통해 주문하고 분리수거 없이 집 앞에 편리하게 내놓는 것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목표다. 리턴잇은 비닐봉지와 일회용품 최소화를 위해 6개 식당을 선정해 두 달간 다회용기 서비스를 실험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점주와 배달 라이더, 세척 직원과 협업해 다회용 배달가방을 만들었고, 각각 협업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제작했다. 앞으로 시스템을 보완한 뒤 제휴 식당수를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싱가폴의 배달앱 ‘푸드판다’에서는 ‘리유저블’ 버튼을 누르면 다회용기를 쓰고 있는 식당이 뜬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리턴잇 같이 다회용 용기를 제공하고 수거하는 배달 서비스는 배달앱 추가 메뉴에서 이용할 수 있을 뿐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직 없다.

언제까지 ‘용기내’ 챌린지를 해야만 할까

▲ 마하키친 팝업식당에서 판매하는 다회용기 도시락(좌)과 사내 도시락 배달 서비스(우) 마하키친은 다회용기를 사용하기 위해 식단을 물기가 없는 요리로 구성했고, 또르띠아, 연잎, 양배추, 식품용 면보 등으로 음식을 포장했다.ⓒ 마하키친

우리나라에서는 작년 ‘용기내’ 캠페인을 시작으로 다회용기를 쓰는 상점을 시민들이 직접 맵핑하기도 했고, 쌓이는 일회용 쓰레기에 불편함을 느낀 소상공인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여 다회용기 사용을 시도하고 있다. 도시형 장터 마르쉐에서 농민과 제철농산물을 직거래해 만든 도시락을 판매하는 팝업식당 ‘마하키친’의 신소영 대표는 직접 제작한 다회용기에 음식을 담아 판매하고 용기를 돌려받을 경우에는 용기 값을 환불해준다.

“수분이 많은 음식을 포장하기에 한계가 있지만 행사 후 돌아오는 도시락을 보면 뿌듯해요. 다회용기도 한 번 만드는데 환경에 부담이 있어 최대한 많이 돌려쓸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제작하고 있습니다.”

마하키친은 사내 도시락 서비스를 할 때에도 다회용기에 담아 제공한 뒤 직접 수거해 세척해 재사용하고 있다. 현재 다회용기로는 국, 스프처럼 물기가 있는 요리를 포장하기에 무리가 있어 물기 없는 식단으로 구성했고, 요리를 또르띠아, 연잎, 양배추, 식품용 면보 등으로 포장하고 있다. 고민 끝에 수저와 포크를 사용하지 않도록 핑거푸드 위주로 구성하기도 했다.

▲ 우리밥상공동체 짓다에서 사용하는 다회용기 도시락
ⓒ 우리밥상공동체 짓다

서울시 강북구와 도봉구에서 반찬배달을 하는 ‘우리밥상공동체 짓다’는 반찬배달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도시락을 대량 구매해 다회용 가방에 배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1년 이상 이어오고 있다.

시민들과 소상공인의 사례는 다회용기의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언제까지 소수의 시민과 소상공인에게만 다회용기 사용을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다회용기에 대한 솔루션이 등장하고 요구가 이어지는 지금, 다회용 사회로 가기 위한 더 섬세하고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용기내 챌린지의 이후는 다회용 시스템이 구축된 사회다.

작성자: 이아롬(녹색연합 회원)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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