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샘물(생수)에 관한 불편한 진실

2010.08.02 | 폐기물/플라스틱

언젠가 모 방송국에서 먹는샘물(생수)에 관한 프로그램을 내보낸 적이 있습니다. 금강산에서 온 물, 산소가 함유된 물, 알프스에서 왔다는 물, 빙하를 녹였다는 물 등등 이름도 가지각색, 출신도 각양각지, 가격도 천차만별입니다. 소중히 젖먹이 아기를 안고 있던 한 주부는 한 병에 무려 만 원이 넘는 ‘물 건너온’ 물을 분유 타는 용도로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아까워서 엄마는 아이 분유 타고 남은 것만 겨우 맛본다고 말하는 이 물은 과연 그렇게 특별한 물이었을까요? 방송에서는 얄밉게도 곧바로 성분조사에 들어갑니다. 결과는? 500원 정도에 판매되는 일반생수와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저런-아기엄마 헛웃음만 나오겠습니다. 실험결과는 산소를 넣은 물도, 알프스에서 온 물도, 금강산에서 온 물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미네랄이 많다 적다를 따지기도 하지만 실제 수질 차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먹는샘물, 우리가 흔히 생수라고 부르는 이것은, 지상표층까지 암반의 틈 사이로 솟아오르는 지하 원수(源水)를 먹기에 적합하도록 물리적 처리 등의 방법으로 제조한 물을 뜻합니다. 지하수를 뽑아 올리기 전에 원수 자체도 수질 검사를 거쳐 당국으로부터 샘물개발 허기를 받아야 하는데, 일반인들이 좋은 물로 생각하는 ‘약수’를 원수로 사용하는 업체는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약수는 철분 성분 등이 기준치를 초과하거나 특별한 성분이 많기 때문에 ‘먹는 물 수질기준’에 부적합한데다 취수량도 적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먹는샘물’로 팔리는 물은 ‘튀는 데가 없는 물’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건강을 위해 서너 배 비싼 먹는 샘물을 사 드시고 계시다면, 지갑을 닫으셔도 좋겠습니다.

참, ‘생수’란 표현은 판매하는 제품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온수, 약수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수’라는 표현을 쓰게 되면 수돗물 등 다른 물은 ‘죽은 물’이라는 오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생수가 수돗물보다 낫다구요?

나는 그냥 일반 먹는샘물 먹었으니 억울할 것 없다, 가슴을 쓸어내리셨나요? 억울함을 느끼게 할 내용이 하나 더 있습니다. 2001년 세계최대의 민간자연보호단체인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은 먹는샘물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판매되는 먹는샘물이 수돗물에 견줘 최고 1천 배나 비싸지만 수돗물보다 더 안전하거나 건강에 이로운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요지였지요. 당시 WWF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생수에 대한 검사 기준보다 수돗물에 대한 검사 기준이 더 엄격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상수도 요금은 정수한 물 1㎥당 전국 평균 516원입니다. 우리가 편의점에서 구입하는 500㎖ 생수와 비슷한 가격입니다. 그런데 수질검사 항목은 수돗물이 55개, 먹는샘물이 51개로 수돗물이 오히려 더 엄격합니다. 일반 먹는샘물이라 하더라도 비슷한 수질의 수돗물보다 몇 백 배나 비싸게 사 먹은 셈이지요.

환경운동가이자 미국 지구정책연구소장인 레스터 브라운은 <지구를 살리는 새로운 경제학 에코이코노미>란 책에서 “비록 생수 판매업자들이 약삭빠른 마케팅을 통해 생수가 건강에 더 좋다는 확신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주었음에도 이러한 확신의 정당한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며 생수를 사기보다 수돗물을 끓이거나 여과해 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이 이런대도 수돗물보다 생수가 더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03년 환경부가 설문조사 기관에 의뢰한 조사결과를 보면 “수돗물을 그대로 마신다”고 대답한 사람은 1%에 불과했습니다. 불신의 이유는 있습니다. 상수원유역의 만족스럽지 못한 환경 관리 실태라든지, 55개 기준을 모두 만족시킨 물이라 할지라도 낡은 상수도관으로 인해 생겨난 녹물 등은 선뜻 수돗물을 선택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수돗물의 미생물을 없애기 위해 쓰는 염소잔류성분의 냄새는 수돗물을 더 멀리하게 합니다. 사정이 이쯤 되니 특별히 좋을 건 없다지만 나쁠 것도 없고, 수돗물보단 비싸지만 그렇다고 부담될 만큼 비싼 것도 아닌 먹는샘물을 선택할 만도 합니다.

그렇다면 생수는 마냥 안심해도 될까요? 언젠가 페트병 생수에 대한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는 생수에서 환경호르몬이 일부 검출되었는데 이는 생수의 플라스틱 용기 및 뚜껑에서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었지요. 환경호르몬은 호르몬과 구조가 비슷해 사람이나 동물의 몸 안에 들어오면 호르몬을 ‘흉내’내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정확한 명칭은 내분비계교란물질. 호르몬 분비와 작용 같은 내분비계를 혼란시키는 물질입니다. 호르몬은 아주 적은 양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호르몬을 흉내 내는 화학물질은 다른 화학물질에 비해 더 위험해서 암이나 불임의 원인이 됩니다. 플라스틱에 수분이 닿으면 환경호르몬 성분이 녹아 나올 수 있는데, 우리가 사먹는 먹는샘물은 대부분 플라스틱 병에 담겨 유통됩니다. 환경호르몬도 그렇지만 늘어나는 생수 소비만큼 소비되고 버려지는 플라스틱 페트병의 문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워싱턴의 지구정책연구소 조사 결과에 따르면(중앙일보, 2007년 8월 14일) 미국인이 일 년 동안 사 마신 생수의 페트병에는 석유 150만 배럴이 원료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150만 배럴이면 자동차 10만대의 1년 유류 소비량과 맞먹는 양입니다. 그러나 페트병 재활용률은 매우 낮으며, 대부분이 쓰레기로 버려져서 지구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먹는샘물에 관한 불편한 진실

생명체는 공기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공공재여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사먹는 ‘먹는샘물’은 ‘상품화 된 물’입니다. 우리가 간단하게 가격을 치르는 행위는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물을 ‘상품’으로 인정해 주는 결과를 불러옵니다. 지구온난화와 인구증가로 전 세계 1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물부족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물은 상품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된다면, 물이 점점 부족해질 미래는 가난한 이들에게 더 가혹해질 것입니다.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하지만 지하수 고갈은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대고 있습니다. 도시의 상수도화는 100%에 육박하지만 농촌지역은 아직도 지하수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먹는샘물의 주 소비자는 도시사람입니다. 그리고 먹는샘물의 취수원은 대부분 농촌 지역의 지하수이지요. 지하수는 무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닐뿐더러 내 땅 밑을 팠다고 해서 내 땅 밑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은 주변 수원을 마르게 하고 있습니다. 한 지역의 지하수가 ‘먹는샘물’ 개발로 외부로 빠져나가면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은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고 물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수익은 고스라니 기업의 손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무엇을 선택할까?

앞서 소개한 레스터 브라운은 “생수 판매를 점차 축소시키면, 물을 운송하고 배분하는 트럭도 줄일 수 있을 것이며 그 결과 트럭 운행과 관련된 교통 혼잡, 대기 오염, 탄소 배출도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수돗물은 깨끗한 물을 공급받는 문제를 넘어 ‘물’이라는 거대한 환경이슈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먹는샘물은 가격을 치를 수 있는 사람만 사먹을 수 있는 ‘상품’이지만 수돗물은 누구나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공공재입니다. 그냥 마시기 꺼려지는 수돗물 특유의 냄새는 냉장고에 한동안 보관했다 마시면 없앨 수 있다고 합니다. 물맛이 가장 좋은 온도 수준은 4℃정도인데 수돗물 온도가 10~20℃수준이라 수돗물은 맛없다, 라고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니 냉장고에만 들어갔다 나와도 새로운 물이 됩니다.

또 받아 놓은 물에 활성탄주머니를 넣어 두면 그냥 받아 두는 것만으로는 제거할 수 없는 곰팡이 냄새라든가 잔류 염소 냄새 등이 대부분 사라집니다. 항아리나 큰 유리병에 맥반석과 볶은 소금을 함께 넣으면 칼륨, 칼슘과 각종 미네랄 성분이 물속에 스며들어 좋은 이온수가 된다고 하니 이런 자연정수 방법도 이용해볼만 합니다. 수돗물에 대한 신뢰가 여전히 미심쩍다 하다면 선택의 기준에 ‘물의 미래’를 또 하나 추가 해보시길 제안합니다. 어느 쪽으로 기우시나요?

(문은정, 녹색연합 시민참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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