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6 녹색의 눈 1 – 아직도 끝나지 않은 매향리의 전쟁

2001.10.19 | 군기지

이유진 / 녹색연합 생태팀

매화꽃 향기 가득했었던 마을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버스로 두 시간, 경기도 화성군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매향리는 겉으론 평화로운 갯마을 같지만 한국의 여느 시골과는 달리 파도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아이들을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F4E, A-10, F16, OV-10, 공격용 헬기 등 이름도 낯선 미전투기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600회에서 700회 폭격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켓트 사격, 기관포 사격, 기총사격, 레이저포 사격. 매향리는 아직도 전쟁중입니다.

1952년 한국전쟁 중에 설치된 매향리 미군전용 사격장은 해안에서 1.6킬로미터 떨어진 해상 사격 표적물인 농섬을 중심으로 6백90만 평에 달하는 해상 사격장과 해안지역에 설치된 38만평 규모의 육지사격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을 중심으로 나즈막히 자리잡은 매향리에는 실제 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있어 해양폭격에서 가장 실전과 흡사한 훈련환경을 제공하는 곳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 때문인지 일본의 오키나와 공군기지, 태국 및 괌에 주둔하는 미공군 기지, 태평양함대 소속 항공모함에서 발진하는 전폭기도 포탄을 가득 싣고서 매향리를 향해 날아온다.
이 때문에 4천여 매향리 주민들은 반세기 동안 생활터전을 빼앗긴 채, 극심한 소음과 매캐한 화약연기, 빈번하게 발생하는 오폭 사고 속에서 하루하루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오폭과 불발탄으로 사망한 주민 수만 해도 12명.
국가 안보논리 속에서 지난 50년간 소수의 목소리로 묻혀 있었던 매향리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5월8일 미 공군소속 A-10전폭기 1대가 매향리 쿠니 사격장에 5백파운드 짜리 포탄 6발을 투하, 7명의 주민이 다치고 농가의 유리창이 파손되고 벽에 균열이 생긴 피해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부터 이다. 이에 시민단체와 학생들이 쿠니 사격장의 즉각 폐쇄를 요구했고, 사건조사를 나섰던 한미합동조사단이 ‘피해없음’을 발표하자 이에 격분한 전만규 주민대책위원장이 사격을 재개하는 사격장의 깃발을 찢다 구속되었다. 6월6일 현충일, 3천5백 명의 시민단체 회원과, 학생, 노동자들이 매향리에 집결했고, 발등이 불이 떨어진 국방부는 이주대책이다 사격장 구역조정이다 대책 내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녹색연합이 매향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98년 1회 녹색순례 때 매향리를 방문하면서 부터이다. 우선적으로 실시된 소음 조사에서 사격장 인근 지역의 평균 소음도는 90∼110 db, 이런 소음 지역은 주거불능지역으로 녹지대 등 완충지대를 조성해야 하는 지역에 속한다. 전폭기의 엔진 폭음만이 아니라 기관포사격 및 기총사격 등 사격이 행해지는 순간에는 굉음으로 인하여 텔레비전 시청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지난 5월18일, 이번 사건으로 일시 폭격이 중지된 농섬의 토양환경조사를 할 수 있었다. 썰물 때의 농섬은 갯벌을 통해 걸어서도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육안으로도 보기에도 농섬 주변의 갯벌은 검게 죽어가는 빛깔을 띠고 있었고, 녹조류와 갈조류가 죽어 갯벌 위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중금속띠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농섬과 함께 해양 표적으로 쓰이던 구비 섬은 폭격으로 뭉개져 사라져 버렸고, 소나무 숲이 무성했던 농섬 표적지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았다. 갯벌 곳곳에 꺼꾸로 쳐 박혀 있는 포탄과 표적으로 쓰이는 자동차에는 수천 발의 탄피가 지나간 흔적이 흉물스럽게 남아있었다.
농섬 표적지를 중심으로 10군데의 토양샘플을 채취했다. 한 지역에서 표피층(0∼10cm)과 50∼60cm 지점을 토양을 추출하는 것인데, 집중포화지역의 갯벌에는 수많은 탄피가 박혀있어, 토양채취봉이 30cm이상 들어가질 않았다. 말그대로 뻘 반 탄피 반이었다.
이번 토양 조사에서 오염도가 가장 높게 나타난 집중포화지역의 토양에서는 우리나라 토지 평균 비소함유량의 13배에 달하는 5.37mg/kg의 비소가 검출되었다. 이 밖에도 카드뮴(37배, 4.74mg/kg), 구리(13배, 62.1mg/kg), 납(145배, 845mg/kg) 등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물질이 기준치를 초과해 상당수 검출되었다. 이처럼 높은 토양내 중금속물질 오염도는 직간접적으로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6월 4,5일 매향리지역 답사와 역학조사 결과 발표한 조사보고에 의하면, 매향리 일대 지역주민들의 청력은 대조군인 주곡리 주민들에 비해 현저히 저하돼 있었다. 또한 중금속 농도 조사에서는 피해지역 주민의 혈중 납농도가 평균 3.42㎍/㎗에 달해 납을 다루는 근로자 평균치 2.03㎍/㎗의 1.7배인 것으로 조사됐다.
육지 사격장에서 농섬으로 이르는 갯벌은 뻘과 모래가 섞여있는 혼합갯벌로 동죽, 가무락, 맛, 백합이 많이 서식한다. 그러나 현재 오염에 민감한 백합은 이미 사라졌고, 맛은 거의 채취되지 않는다. 조개채취를 나온 마을 아주머니는 현재 이 마을 주민들이 가무락을 채취해 살아가고 있는데, 그 수가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채취한 가무락은 평판이 나빠 정상적으로 거래되지 못하고 중간상인을 통해 대도시의 음식점으로 팔려간다고 한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 가무락을 대상으로 중금속 오염도를 조사한 결과 납이 건조시료 1kg당 5.02mg이 함유되어 있어 미국의 패류식용기준치를 1.02mg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녹색연합은 이 지역에 대한 보다 정밀한 환경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함께 동행한 해양 갯벌팀의 김태호 간사는 농섬주변과 같은 혼합갯벌에는 칠게나 콩게, 방게가 서식하는데, 게들은 진동에 상당히 민감해 멀리서도 사람 발자국 소리에 도망가기 때문에 폭격의 진동이 이 지역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한다. 한 예로, 농섬 주변의 생태계는 상당히 단순화되어 있는데, 서식하는 게의 대부분이 칠게이고 그나마 개체수도 많지 않은 것으로 관찰되었다.
매향리에 폭격이 시작되면서, 그 속에서 삶의 영위하는 주민은 물론 생태계도 심각하게 파괴된 것이다. 특히 수십년동안 영향을 미칠 환경오염에 대해서 국방부, 한국정부, 미군 그 누구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주한 미군 주둔 지위협정(SOFA)를 살펴보면 미군이 이 땅에서 주둔하면서 일으키는 환경오염을 감시할 수 있는 직접적인 규정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미군이 공여된 시설과 구역을 반환하는 경우 원상회복의 의무가 없음을 명기해 오히려 미군측의 환경오염을 합법화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쾌적한 환경속에서 살길 원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파괴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지를 표출한다. 하물며 이웃집에서 소음을 낼 경우 민원을 제기하고, 일조권을 침범한 아파트 건설회사를 상대로 법정소송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매향리 주민들은 분단된 한국의 현실속에서 한국정부와 국방부, 또 미군을 대상으로 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현재 주민들은 50년만에 찾아온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매향리에서 만난 한 할머니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데…, 미군이 나가든지 내가 나가든지 해야 할껴. 근디, 집도 땅도 여기있는데, 내가 왜 나가”.
이제 더이상 우리는 매향리의 끝나지 않은 전쟁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순 없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